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6월 6일(목) 오후 2시경에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 16회차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퀴어영화제에 다녀왔어요~
[국내단편2: 퀴어한 삶들에게] 와 [커런트이슈3:정년 그분의 뜻인가요?] 중에서 고민하다가 전자를 골랐어요. 우리나라의 현실이 더욱 잘 반영된 영화를 보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앎, 지은, 시원, 푸른나비, 에버그린 총 5명이 참여했어요. 페미말대잔치에 초창기부터 참여해오신 롤라님도 우연히 영화관에서 마주쳤어요. 롤라님은 친구와의 선약 때문에 아쉽게도 이번 모임은 참여하지 못했지만, 함께 퀴어영화제를 즐긴다는 공감대를 나누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습니다.
사실 시간대가 맞는 영화 중에서 고른 것이라 [국내단편2: 퀴어한 삶들에게]에서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5편의 단편 영화 중에 성폭력을 중요한 소재로 다룬 영화도 있더라고요. 상영작과 GV를 본 후에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영화에 대한 각자의 소감을 나눴습니다.
※ 아래 감상평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이성민 감독의 <보다>는 현 애인인 은미와 데이트를 하던 상민이 우연히 전 애인인 동언과 마주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며 성적 지향을 숨기려고 노력했던 상민과 당당하게 애정표현을 하다가 결국 아웃팅을 당해 학교를 떠나야 했던 동언의 과거 이야기가 주된 서사였어요. 아무래도 남성 주인공 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이다 보니, 그동안 여성영화제 위주로 영화제를 다녔던 참여자들은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평이 있었어요. 여성 인물의 비중이 ‘왜 굳이 나왔지?’ 싶을 정도로 적었거든요. 게이 영화에서 여성 인물이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이야기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은미라는 인물은 상민과 동언을 만나게 해주는 장치로만 쓰였고, 그 과정이나 묘사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어요. 상민과 은미의 관계가 너무 피상적으로 묘사된 탓에 둘이 어떤 사이인지 알기 어려워서 혹시 상민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기 위해 은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 영화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 점은 좋았어요. 다음 영화는 제이 박 감독의 <고추>였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심해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까지 돌았던 1988년, 오로지 ‘고추’ 즉 아들만을 기대하는 집안에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는 사실 ‘소녀’의 영혼을 가졌지만 태어나기 전에 삼신할머니와 협상(?)해서 ‘고추’를 먹고 지정 성별 남성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이성애자 트랜스 여성으로 성장하게 되지요.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여성의 영혼을 가졌음에도 남성으로 태어나야만 했다’라는 상상력은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횡행했던 ‘여아낙태’ 문제도 생각났고요. 하지만 여성의 영혼이 ‘고추’를 먹고 아들로 태어난다는 설정은 성기 환원주의를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었고, 감독이 퀴어 및 여성주의 이슈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이해해서 이런 영화를 제작했는지 의혹이 남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영화는 변성빈 감독의 <손과 날개>라는 단편이었어요. 지체장애인이자 동성애자인 우성은 사랑하는 ‘형’을 떠올리며 자위를 합니다. 신음을 듣고 온 우성의 엄마는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우성의 성기를 자극하여 사정에 이르게 합니다. 엄마는 우성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마치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깨는 방법인 것처럼 강제로 우성의 사정을 유도합니다.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부각하는 주제는 인상적이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계속 마음에 걸리고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우성이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자위를) 도와준다’며 우성의 성기를 계속 자극하는 엄마의 모습은 제 눈에는 성폭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물어보니 다른 참여자들도 친족 성폭력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런 장면이 꽤 긴 분량 동안 적나라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상상하며 성적 흥분감에 빠져 있던 우성이, 엄마의 강제 자극으로 인해 사정을 하고 난 후 슬픈 듯 화난 듯 공허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았어요.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성욕’은 꼭 풀어줘야만 하는 어떤 것인지, 반드시 ‘사정’ 또는 ‘오르가즘’을 통해서만 해소되는 것인지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사정’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면 저는 우성이 혼자서도 충분히 자위를 즐기고 있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한 참여자는 ‘성매매를 옹호하는 논리 중에 남성 장애인의 성욕을 해결해주기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는 말이 흔하다. 그런데 여성 장애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얘기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여성 장애인은 무성적 존재로 여겨지고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성욕’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둘러싼 성별 권력 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네 번째 영화는 정인혁 감독의 <냉장고 속의 아빠>였습니다. 남성 캐릭터의 각성을 위해 여성 캐릭터가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소비되는 클리셰를 일컫는 용어 ‘냉장고 속의 여자’를 비꼬는 제목인데요. 어린 시절 친부에 의한 친족성폭력 피해를 겪은 레즈비언 ‘연’이 파트너 ‘대’를 지키기 위해 아빠 귀신과 맞서 싸우는 영화였어요. 여성의 희생으로 각성하는 남성의 서사가 아니라 여성 간의 연대로 각성하는 여성의 서사를 다룬 것이 제목과 잘 어울렸습니다. 두 주인공의 이름을 합치면 ‘연대’가 되는 등 깨알 같은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저주에 걸린 사람’으로 빗대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가해자를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묘사한 점은 아쉬웠어요. 극적 효과를 위한 설정임은 알지만, 그런 묘사가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성폭력 트라우마를 호러 영화로 연출하여 가해자인 아빠가 귀신으로 등장하여 주인공과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도 성폭력을 너무나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다루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GV 때 한 참여자는 ‘성폭력 생존자로서 너무 보기 힘들었다’라며 사전에 트리거 워닝(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소재를 내포함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 표시)을 해주지 않은 점을 문제제기하기도 했어요. 앞서 <손과 날개>도 친족성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만큼 관객들이 관람 여부를 선택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상영 전에 미리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영화는 나상진 감독의 <늦은 휴가>였어요. 주인공 선아와 결혼한 옛 애인 진향, 진향을 통해 소개받은 완규라는 세 등장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
상영작들을 보면서 ‘확실히 퀴어영화제와 여성영화제는 다르구나’라고 실감했어요. 단순히 여성 캐릭터의 비중 문제만은 아니었고, 전반적으로 관점이나 감수성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렇다고 안 좋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낯설고 신선했어요. 활동가가 된 이후로 제가 여성주의 문법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대중 또는 다른 인권운동과의 인식 괴리를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까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퀴어계, 장애계 이슈와 고유한 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 후기를 쓰는 내내 조심스러웠어요. 더 많은 연대와 소통,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녁 식사 후에 시간이 더 있는 분들은 카페로 가서 수다를 더 떨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다녀온 이야기, 파트너와 상의해서 정관수술을 받게 한 이야기 등 근황을 나누었어요.
다음 모임은 2019년 7월 7일(일)에 페미니즘 연극제를 함께 보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너에게>라는 공연을 보기로 했어요. 마침 제가 후원확인증이 있어서 50% 할인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동반 1인까지 20% 할인을 받을 수 있답니다! 다른 할인 혜택도 많으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세요~
(연극 <너에게> 소개 보기 :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9008565)
다음 모임에 만나요~
<이 글은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이 작성하였습니다>
◆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에 참여하고 싶다면?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메일 ksvrc@sisters.or.kr 로 다음과 같이 참여 신청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제목 : [페미말대잔치] 회원소모임 참여 신청 내용 : 이름/별칭, 연락처, 참여 동기 담당 활동가 앎이 연락처 및 참여의사 확인 후 오픈카톡 링크를 보내 초대해드립니다! 원하시는 경우 오픈카톡 링크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1회 시범 참여 하실 수 있는 찬스도 드려요~ ※장난 치거나 시비 걸려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픈카톡 링크를 부득이 비공개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메일 보내주시면 1주일 이내로 전화 연락 및 이메일 답장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