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코로나19의 여파로 내반언 소모임은 1월 이후 4월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 있었다. 만나기 전 발열, 기침, 가래 등의 의심증상 자가체크부터 상담소 이안젤라홀 입장 전 다시 한번 꼼꼼히 체온 및 의심증상 여부를 확인했다. 모두 마스크 착용하고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드디어 4월 소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4월 리다였던 리나는 당일 개인 사정으로 소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함께 보려고 선택한 뮬란 추천 이유를 미리 전달해주었다. 리나의 추천사를 통해 본 디즈니 뮬란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미처 알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뮬란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게 해준 리나의 추천사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의 여성서사 1호(심지어 지금 봐도 요즘 나오는 여성서사 영화들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는!) 뮬란입니다.
이 영화는 여성서사로 읽히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 서사로 읽는 사람들도 있어요. (특히 90년대생 FTM 트랜스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보며 그렇게 감정이입을 했다는..은제 제 얘긴 아닙 쿨럭)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인어공주’와 함께 트랜스젠더 서사로도 자주 해석되는 영화 중 하나인데요. 여성서사이면서 또 다른 소수자가 이입할 수 있는 서사로도 해석된다는 점이 참 흥미로운 것 같아요!
다들 어렸을 때는 이 영화를 보며 누구에게 공감하고 이입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어떤 감상이 드는지 공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 : 제 감상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이건 넘나 트랜스 서사다!입니다)
다음으로 1998년 작품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여자는 좋은 가문에 시집을 가는 것만이 가문을 빛내고 명예를 가져다주는 일이었던 시대에 사는 주인공 뮬란은 사회가 규정한 완벽한 신붓감이 될 수가 없었다. 활기차고 총명한 뮬란은 얌전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았고, 급하게 스타일링을 받아 화장하고 행동교정에 한껏 치장한 채 매파와 만나지만 본의 아니게 소동을 일으켜 좋은 신붓감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일에 실패한다. 그 일로 가족들은 뮬란에게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극 중에서 뮬란은 혼자 고뇌하며 아무리 애써도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출 수 없고, 진정한 자신을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러던 중 훈족이 국경을 넘어 침략해오자, 나라에서는 모든 가문에서 남자 한 명씩은 반드시 전쟁에 참여하라는 징집 명령이 떨어진다. ‘파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었던 뮬란은 몸이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아버지의 갑옷을 몰래 입고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아버지를 대신해 ‘핑’이라는 이름으로 군대 신병교육에 합류해, 군인이 되기 위한 고난의 훈련을 통과하고 군인 ‘핑’으로 거듭나게 된다. 고생 끝에 전쟁터에서 지략으로 장군의 아들 ‘리샹’과 동료들을 살려내고 공로를 인정받지만, 부상으로 인해 ‘핑’이 ‘뮬란’임이 드러나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이 영화는 ‘핑’과 ‘뮬란’ 사이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한 편의 활극 로드무비로 더 자세한 이야기와 결말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내반언 멤버들과 영화를 보고 다양한 감상평을 나눴는데, 처음 나온 공통의 소감은 재미와 즐거움이었다. 22년 전 2D 애니메이션이지만 지금 봐도 손색없고 보는 시각에 따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적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 멤버들의 소중한 의견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해 아쉽다.
개인적으로 뮬란 영화를 트랜스젠더 서사로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변 하사와 모 대학 트랜스젠더 A씨 입학과도 연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였다. 영화에서 ‘핑’은 목욕을 하거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순간에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처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화장실, 병원 등에서 트랜스젠더가 시민으로서 안전하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매 순간 긴장도 높은 위험에 놓이는 현실을 대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있었다. ‘핑’이 '뮬란'이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 생명의 은인이라며 ‘핑’을 치켜세우던 장군의 아들인 ‘리샹’은 ‘뮬란’을 매몰차게 외면했다. 그 순간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며 ‘핑’의 말은 믿을 수 있고, '뮬란'의 말은 믿지 못하나요?”라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건 무리에서의 내쳐짐이었다. ‘핑’과 '뮬란'은 다른 존재인가? ‘핑’이기도 하고 ‘뮬란’일 수는 없는 걸까? 여러 질문이 남는다. 나의 존재를 수없이 설명하고 증명해야만 하고 진실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착잡하다. 나로서 나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고 인정받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전 세계가 코로나19 판데믹으로 봉쇄되어 어려운 현실에서도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서로의 끈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소모임 '내가반한언니' 회원 윤정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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