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10월 21일(목) 오후 7시 온라인 화상회의(ZOOM)으로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 10월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앎, 지은, 홍차, 다운 총 4명이 참여했습니다.
마침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는 첫 날이어서 그 소식을 알리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스토킹 처벌 조항 자체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정을 환영해야 하겠지만, 스토킹행위를 바로 처벌하지 않고 지속적·반복적일 때만 범죄로 처벌하는 점,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점 등 아쉬운 점도 많아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바로 전날 '2021년 10월 21일부터 스토킹처벌법 시행, 제정은 하였으나 갈 길이 멀다'라는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었죠.
늘 그렇듯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중에서도 미디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참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tvN 드라마 '마인'에서는 미/비혼모, 새엄마,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여성 연대를 다루었고, 네이버웹툰 '사랑의 헌옷수거함'에서는 그동안 남성하고만 연애를 해보았던 여성 등장인물이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여성임을 알게 된 후 처음에는 실망하지만, 부모님에게 '우린 네가 누굴 좋아하든 널 똑같이 사랑할 거야'라는 조언을 듣고 그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간직하며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한편, 유튜브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은 코미디언 김민경이 다양한 운동을 체험하는 모습을 통해 '뚱뚱한 여성은 건강하지 않고 운동을 못할 것이다'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주었습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체형,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이 나오는 미디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뮤지컬도 과거에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몇 없는 여성 등장인물은 대체로 '약혼녀' 아니면 '성매매 여성'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여성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 루시는 '런던의 클럽 무용수', 엠마는 '지킬의 약혼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에서는 메르세데스를 '에드몬드의 사랑하는 연인', 루이자를 '에드몬드를 도와주는 해적선 선장'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배우들의 화장과 의상, 서사 등을 잘 살펴보면 사실상 똑같은 '성녀 아니면 창녀' 이분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참여자는 과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크게 실망한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에스메랄다는 집시 여인으로 멸시 당하지만 시인 피에르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그와 결혼하기도 하고 자신을 납치하려고 했던 '꼽추' 콰지모도가 죄인 공시대에 묶여 대중의 비웃음과 야유를 받고 있을 때 물을 건네 주는 등 선량하고 주체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참여자가 본 뮤지컬에서는 원작에 없는 설정으로 에스메랄다의 아버지가 등장했고, 에스메랄다가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서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피에르와 결혼하고 콰지모도에게 물을 주는 것으로 연출되었다고 합니다. 뮤지컬 제작자들의 가부장적, 여성혐오적 관점이 반영된 결과겠죠.
이러한 과거와 비교한다면, 최근에는 뮤지컬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여성서사를 비중있게 다루는 뮤지컬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의 치유·회복과 우정을 다룬 소설 원작 뮤지컬 <유진과 유진>,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의 삶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소설로 쓰는 뮤지컬 <레드북>, 작가 메리 셸리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쓰기까지 과정을 그린 뮤지컬 <메리 셸리> 등. 이 얘기를 처음 꺼낸 참여자는 요즘 보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서 지갑에 잔고가 남아나질 않는다는 행복한 고민을 한다고 하네요.
한편, 뮤지컬은 일반적으로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을 통해 한 캐릭터당 배우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출연하는데, 요즘은 드물지만 '젠더프리' 캐스팅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성별의 배우를 동시에 캐스팅하여 똑같은 캐릭터를 어느 날은 남성 배우가, 어느 날은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것입니다. 젠더 이분법을 넘으려는 새로운 시도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실제로 그중 한 작품을 보고 온 참여자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배우만 젠더프리로 캐스팅하고 정작 연기와 연출은 젠더 이분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 배우는 남성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음역대가 맞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어색한 마초적 연기를 하고, 남성 배우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할 때 과장된 하이톤으로 희화화된 여성성을 재현한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에 한 참여자가 소개해준 배우 차지연님의 인터뷰 내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지연님은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일부러 목소리 톤을 낮추는 등 '남성적'인 연기를 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목소리와 연기를 통해 그 캐릭터를 '나답게' 표현하려고 했대요. 다음에 또 차지연님이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공연에 오르시면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별 고정관념에 연연하지 않고 배우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표현하는 젠더프리 시도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같이 새로운 형태의 월경컵을 주문하기도 하고, 이번 모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다음 모임에서 또 만나요!
<이 후기는 본 소모임 참여자 앎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다음 모임은 10월 21일(목) 오후 7시 온라인 화상회의(ZOOM)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 참여 안내에 따라 이메일로 참여 신청을 해주시면 담당자가 확인하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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