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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운동 전략찾기 간담회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친족성폭력 생존자가 쓰신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친족성폭력 생존자인 김영서(필명 은수연)님이 쓰신 비망록으로, 필명으로 2012년에 책을 쓰고 2020년의 실명을 넣어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 간의 세월 동안 저자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믿기 때문에 개정판을 새로 내셨습니다.
제목의 뜻은 어느 날 펑펑 울다가 눈물이 보고 싶어서 봤더니 눈물이 반짝이더래요.
-그런데 어느 날은 그냥 주저앉아 울었다. 편하게 울고 싶을 때까지, 눈물이 마를 때까지, 목이 쉴 때까지. 그때 오로지 자신을 위해 울고 위로하면서 조금씩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 무심한 달빛 아래, 친할머니 생일잔치에서 겪은 소름 돋던 밤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내 두 손으로 그때의 어린아이를 안아주는 것처럼 나를 꼭 안고 위로해줬다. 하루는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떨어지는 눈물을 봤다. 그 찰나의 순간, 눈물방울이 빛을 만나 반짝였다. 내 아픔을 담은 눈물이 반짝이며 떨어졌다.
<줄거리>
영서의 부모님은 어릴 때 이혼을 했지만, 12살 때 아빠가 외할머니집에 찾아와 재결합을 해 줄 때까지 엄마를 폭행해, 20살 집을 나간 여름방학까지 그 사람의 성폭력은 이어집니다. 그 사람은 집안밖의 영서를 통제하기 위해서 등하교길을 따라다니고, 정규 학업시간 외의 방과후 등 모든 학교 생활을 금지하며, 어린 영서의 일생을 통제하였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어린 영서는 초경이 시작하기도 전에 임신을 하여 낙태를 합니다. 목사인 그 사람은 언변을 통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아빠인 척, 걱정하는 척 거짓말을 늘어놓습니다. 가족들도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계속되는 폭력에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진 가족들은 그저 못본 척합니다.
영서는 집안일을 하다가 본 청소년쉼터의 전화번호를 보고 가출을 결심하고 집을 떠남도 잠시, 가족들은 영서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찾아와 끌고 갑니다. 끌려가는 동안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끌고 온 그 사람은 영서를 한적한 시골 여관에 데리고 갑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여관주인에게 납치 되었다고 신고를 하고, 길가로 달려다가 경찰서에 태워달라고 하며 타인의 차를 타고 경찰서에 가고, 자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형사와 여경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받고, 성폭력특별법이 실행된 (1994년) 첫해 치고는 휼륭하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무거운 형벌이 내려진 사례이며 영서는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감옥에 보내고도 영서는 트라우마로 많이 힘들어 했지만 고군분투 끝에 자신의 일상을 되찾은 후 그에게 편지를 씁니다.
책의 초반부는 가출할 계획을 세운 영서가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문이 닫힙니다.”
분명하게 들린다. 드디어 문이 닫혔다. 모든 칸의 문이 모두 닫혔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싶을 정도다. 문이 닫힌다. 천천히 지하철이 움직인다. 눈물이 흐른다.
‘자유다!’
지하철을 타고 쉼터로 가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자유를 꿈꾸나 싶었는데, 3일만에 그 사람과 엄마, 동생이 자신을 찾아 집으로 끌고 가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책의 말미에서도 영서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납니다. 떠난 여행 길에 비로소 자신을 치유할 수 있게 되며, 치유의 방법 중 하나로 가해자에게 편지도 쓰게 되는데요. 이때, 책에 초반부에서 지하철을 타고 밖으로 나갔던 자유로웠던 모습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해자에게 편지를 쓰고 ‘이제 정말 문을 열고 나간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초반부와, 후반부가 겹쳐 보입니다.
읽는 동안 무거운 숨을 삼켰었는데,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읽는 내내 참았던 무거운 숨을 뱉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책은 친족성폭력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집안일’이라며 쉬쉬거리는 것까지. 겨우 용기내서 말을 했는데 교수는 엄마한테 연락을 하고, 들어주는 사람은 없으며, 집에는 그 사람이 있습니다.
왜 잘못은 가해자가 했는데, 피해자가 모든 손해를 껴안아야 하는지. 하지만 온 가족이 피해자입니다. 가장 많이 맞은 엄마. 있는 듯 없는 듯 평생을 살아온 형제들. 폭군 아래에 폭언, 폭행, 방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너희 가족들은 네가 이렇게 당하는 거 알고도 가만 있었어? 엄마도? 좀 이해가 안 돼.” 자연스러운 질문이지만 그건 친족 성폭력이라는 문제의 특수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게 되는 오해라고 생각한다.
(아빠라는) 존재가 내게 성폭력이라는 짓을 할 때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했다. 그러나 엄마와 가족들도 알게 됐지만, 그때부터 나는 온 가족을 대신하는 희생양이 됐다. 그 사람의 폭력을 잠시 가라앉히는 도구로 이용도 됐다. 온 가족의 삶을 유지하려면 희생돼야 하는 그런 존재.
엄마라는 사람은 워낙 결혼 초부터 계속된 매질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 있었다. 왜 경찰을 부르지 않나 싶었지만, 그때는 부부싸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집안 문제’로 여기고 경찰이 집에 오지도 않았다. 가족 모두 목숨을 위협하는 아빠라는 사람과 살면서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 같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잃어버린 듯했다.
우리 사회는 친족성폭력이 현대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취급하거나, 굉장히 드문 것처럼 취급합니다.
고대 이집트 왕비 안케세나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녀가 처음 결혼한 상대는 10대 파라오 아케나톤인데, 그녀의 나이 12살 때였다고 합니다. 10대 파라오 아케나톤이 죽고, 11대 파라오도 요절하여, 그 유명한 투탕카멘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습니다. 그러나 투탕카멘도 죽자, 파라오를 이어갈 후사가 없었으며, 안케세나멘은 왕위계승권이 있었으므로 그녀와 결혼하는 자는 파라오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총리 아이가 파라오에 올랐으며 외손녀인 안케세나멘과 결혼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이 이 이야기를 접하면 어떻게 딸과 손녀에게 그럴 수 있냐고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친족성폭력과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피해자에게 침묵과 은폐를 강요하며, 알아서 치유해야 합니다. 가족간의 일이라고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피해자만 감내합니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이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만 조금 바뀐다면, 지금보다 자기가 겪은 일을 스스로 바라보는 시선이 편해질 수 있을 텐데 싶다.
성폭력은 분명 한 사람이 겪어내기에 무척 힘든 일이다. 정말 당시에는 그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원치 않고, 예상치 못했지만 갑자기 날아든 칼에 베인 깊은 상처와 같다. 그냥 치료가 필요한 상처로만 봐주면 좋겠다. 칼자국은 그저 상처일 뿐, 그 이상 다른 생각은 말아주시기를. 칼자국으로 키워낼 수 있는 다른 상상들도 멈춰주시기를.
-성의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좀더 마음 편하게 신고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의 과정을 걸어가는 길도 한결 편해질 것이다.
왜 사람들은 성폭력이라고 하면, ‘성’폭력이라고 읽을까요? 작가가 말했듯 성에만 집중에서 읽지 말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폭력의 문제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추가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친족성폭력 생존자 11명이 묶어서 쓰신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기도 하는 기록. 우리 사회도 이제 그 용기에 화답해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생존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의 안전한 하루를 위해서. 반짝이는 하루를 위해서. 사회의 편견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고통, 우울, 좌절… 이러한 감정을 티슈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이 나오는 티슈는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그러나 티슈는 끝이 있습니다.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아니다, 유궁유진하다. 그 고통의 시간과 벌인 전투는 반드시 끝이 날 것이기에.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솜이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댓글(1)
새롭게 하소서 에 방영된 사연~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시청했습니다 상처가 다 치유되긴 힘들겠지만 극복하시고 사시는모습이 감통이였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신앙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