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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맞는 회원들과 진행한 소모임이나 회원놀이터 등 다양한 회원행사를 소개합니다.
[후기] 뜨거운 결의로 단결! 2024 한해보내기 후기 (주의: 담당자 하소연 많음)
  •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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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활동가의 하소연이 꽤나 깁니다. 한해보내기 행사의 후기가 궁금하신 분은 문단을 휙휙 건너뛰어 ‘~여기부터 진짜 한해보내기 후기~’부터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2월 3일 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틀 후 한해보내기를 앞두고 있던 담당자인 제 머릿속에는 혼란과 분노와 뒤엉켜 한 문장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행사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기는요. 싹 다 바꿔야지요. 아이고.


다음 날, 현 시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상담소 활동가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예정된 행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았습니다. 기존의 기획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으니, 윤석열 퇴진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획의 많은 부분을 축소하고, 행사가 끝난 후 바로 집회에 합류할 수 있도록 광화문 인근의 회의실을 대관했습니다. 한 시름 내려놓고 퇴근을 했더랬지요. “그래, 어찌저찌 할 수 있으면 된 거야! 긴 싸움 전에 함께 마음을 다잡고 결의할 시간을 만드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5일 저녁, 한창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제게 한 번 더 갑갑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산, 집회 장소가 바뀌었어요. 광화문이 아니라 국회 앞이에요”

또르르… 눈물이 흘러간다 또르르… 또르르르…💧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라 대관한 회의실은 전화를 받지 않고, 프로그램과 장소를 어떻게 해야할지 제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막막했어요. 이미 장소 변경 공지가 한 차례 나갔고 참여자분들께 전화를 돌렸는데, 다시 전화를 드리는 것도 죄송하고 혼란스러우실까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사 후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프로그램을 대폭 변경했는데 광화문에서 그대로 진행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복잡함을 뒤로 하고 일단 갖가지 준비물을 정리하다가 퇴근했습니다. 좀 우습지만, 이 때 저는 새삼 사회와 정세에 개인의 삶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래서 시민의 참여가 너무도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도요.


그리고 대망의 한해보내기 당일. 아침 일찍 다른 활동가의 의견을 물어 대관을 취소하고 첫 기획대로 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한해보내기를 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참여자분들께 다시 문자와 전화를 드릴 때는 여러 활동가가 도움을 주었어요(G, S, H, D, 모두 너무나 고마와요!!!). 감사하게도 참여자분들이 상황을 이해해주셨고, 응원을 남겨주시기도 했습니다. 그저 빛…✨

기획 프로그램은 한 번 더 수정했습니다. 합정에 위치한 상담소에서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있기에, 행사 진행 시간을 1시간 미만으로 확 줄여야만 했어요. 남겨둔 한 개의 게임마저 빼기로 하면서, 게임 결과에 따라 드리기로 한 선물은 세트를 해체해 참여하신 모두에게 나누어 드릴 수 있도록 수량을 맞추었습니다.

한 달 정도 준비한 기획이 너무도 아까웠어요. 준비한 선물을 모두 쪼개야 하는 것도 실은 싫었습니다. 애써 만든 PPT를 못 쓰게 된 것도 억울했어요. 하지만 사회인의 자아가 속삭였지요.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네.  남은 것은 최종 점검과 행사. 며칠을 보내며 이미 기운이 쪽 빠지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여기부터 진짜 한해보내기 후기~


12월 6일 저녁, 상담소 지하1층의 이안젤라홀에서 2024년도 한해보내기가 열렸습니다. 먼저 푸짐하고 맛있는 비건 도시락이 참여자분들을 맞이했어요. 식사를 하며 추운 겨울바람에 으슬했던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아는 얼굴, 낯선 얼굴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7시가 되자 우렁찬 두 활동가의 사회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 며칠 전의 비상 계엄으로 놀라고 화가 났을 마음들을 잠시 추스르고, 행사 후 함께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우선 202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주요 활동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하다보니 한해동안 주력했던 활동만 모아 짧은 영상으로 소개했습니다. 2분 40초 남짓한 영상에 총 6가지 주제로 핵심만 꾹꾹 담았답니다.

1. 피해자와 든든하게 함께 가기: 여성주의상담팀과 열림터의 다양한 피해자 지원활동, 제15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발화>

2. 성폭력 사건 두고 보지 않는다: 24년에 대두되었던 성폭력사안에 대한 대응 활동

3. 피해자를 위한 법정책 만들기: 성폭력 법제도와 관련한 각종 토론회, 로스쿨 실무수습

4. 성평등한 사회 요구하기: 3.8 한국여성대회 부스활동, 총선 대응을 위한 정치특강과 토크쇼, <폭주하는 남성성>을 들여다 본 활동,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 20주년 토론회

5. 더 넓게, 더 많이, 더 오래 연대하기: 기후정의행진, 체제전환운동, 서울퀴어퍼레이드 등 상담소가 참여하는 각종 연대활동

6.페미니스트들아, 여기 모여라!: 회원 대상 행사, 자원활동, 각종 소모임

영상을 준비하며 상담소 활동가인 저조차 깜빡 잊고 있던 활동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영상을 끝맺는 박수소리가 마치 우리 상담소 활동가들, 그리고 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회원님들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모든 분들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D활동가를 필두로 11월에 진행했던 훌라 소모임 <싸우는 여자가 훌라훌라> 참여자들의 연대공연이었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에는 ‘축하공연’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이 상황에서 진짜로 축하해야할 것은 우리가 무사히 여기 모였다는 것, 그리고 그 꿋꿋한 마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대공연’으로 정정했습니다. 마침 <싸우는 여자가 훌라훌라>에서 준비한 곡인 ‘Ka Pilina’는 연결, 관계를 뜻하는 하와이어로, 곡에서 묘사되는 여성과 새의 이미지가 사랑, 연대, 유대를 나타내기 때문에 ‘연대공연’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Eia aʻe ka wahine

Halihali ʻia mai e nā manu

여인이 여기 있네

새들이 그를 데려왔네


ʻO ka pilina ā kāua 

ʻO ka pilina ā kāua

이것이 우리의 연결

이것이 우리의 관계


훌라는 문자가 없었던 옛 하와이에서 민족의 역사와 기록을 전승하거나, 신에게 기도를 드릴 때 추었던 춤인데요. 때문에 모든 동작이 수어와 같이 가사를 표현합니다. 이 손동작을 ‘멜레’라고 하는데, 손끝까지 꼿꼿이 힘을 세우고 때로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전개되는 춤의 흐름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춤답게 연대공연 내내 마음이 평온함을 느꼈어요. 긴장된 호흡을 가라앉히며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별로 모여 집회에서 쓸 피켓과 퇴진 구호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용했던 이안젤라홀을 수런수런한 말소리가 가득 채웠습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 현 시국을 마주하는 심정을 토로하며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구호를 정하고 상자 위에 열심히 매직을 끄적이며 피켓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데, 여기 모인 우리가 모두 단단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서로가 있기에 만들어진다는 것도요.

제가 활동가가 아니었다면, 아마 무너졌을 것 같아요. 사회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 여성 혐오를 만연히 이용하는 현실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비상 계엄까지 선포되다니요. 폭력으로 점철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오랫동안 혼란스러워 했을겁니다. 시국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꺼내놓고 설명할 수 있는 언어조차 모른채 말이에요.

한해보내기로 한 자리에 모인 참여자분들이 상담소와 서로의 존재를 통해 마음 든든함을 가득 얻으시기를 바랐습니다.


“윤석열은 감옥으로!”

“계엄놀이 혼자해라!”

“우리가 주인이다! 윤석열 뜯어버리자!”

“어딜 감히! 우리는 네버 다이!”

“사랑과 연대의 이름으로 탄핵!”

“윤석열 저리 가! 우리는 연대해!”

하나같이 직접적이고 호전적이며 기개있고 호걸의 면모를 갖추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여성주의다(??)

제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구호는 두 가지가 있었어요. ‘계엄놀이 혼자해라!’와 ‘윤석열 저리 가! 우리는 연대해!’인데요. ‘계엄놀이 혼자해라!’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과 명확함에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 문장👏👏👏 ‘윤석열 저리 가! 우리는 연대해!’는 피켓에서 느껴지는 위트가 좋았어요. ‘연대’의 ㅇ을 꽃으로 표현했는데, 막막하고 암울한 상황을 시민의 연대로 바꿀 수 있다는 힘과 희망이 담긴 것만 같아 참 좋았습니다.

구호를 다 만들고 나서는 조별로 구호를 설명하고 함께 외쳤어요. 조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어떤 마음으로 혹은 바람으로 이 구호를 정했는지,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함께 구호를 외칠 때는 그 우렁참에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복식호흡이 모이면 장풍이 됩니다….


이 에너지를 그대로 국회의사당으로 가져갔어야 하는데, 한해보내기 행사가 끝난 7시 50분쯤 이미 집회가 막바지에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우리의 이 힘을 발산해야 하는데…! 상담소에서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하면 집회가 끝나 있겠다 싶었어요. 아쉬움에 다음날 토요일 집회에서 꼭 보자는 약속을 나누고, 각자 선물을 챙겨들고 헤어졌습니다.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너무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들 마음 속에 불씨를 하나씩 품고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여 목소리를 높인다면 못해낼 게 없겠구나, 그 든든함과 굳셈에 마음이 설레어 저는 그날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거든요.


<이 글은 회원홍보팀 산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