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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상담소 소식

마음 맞는 회원들과 진행한 소모임이나 회원놀이터 등 다양한 회원행사를 소개합니다.
[후기] 내부 역량강화 교육 - 성과 재생산 권리보장 운동: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의 활동을 중심으로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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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7일, 상담소에서는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의 활동을 중심으로 재생산권 보장 운동의 방향과 최근 의제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생산권 운동은 상담소가 반성폭력 의제와 더불어 꾸준히 목소리 내는 분야인데요, 성문화운동팀 유랑 활동가의 강의를 통해 참석한 활동가 모두 의제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었습니다.


 강의는 지금은 효력이 상실된 형법 제27장 및 관련 법을 살펴보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낙태의 죄’를 규정하는 형법 조항, 모자보건법의 인공임신중절의 허용한계 조항과 ‘낙태죄’ 헌법불합치 의견을 교차해 살펴보았습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이 여성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 및 권리의 사회적 맥락을 설시한 부분을 읽고서, 여성과 태아의 안위를 가해-피해 관계와 같이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며 ‘낙태죄’의 적용 여부는 사실상 국가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언급한 판결의 의의를 짚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어 국회의 대안 입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낙태죄’ 폐지 이후의 운동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때 모임넷의 전신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시민설문조사, 온오프라인 캠페인 등 여러 활동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임신 24주 미만일 경우에만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정부의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낙태죄’는 전면 폐지되어야 하며, 임신중지 권리 인정 및 접근성 보장을 외쳤던 발자취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는 ‘낙태죄’ 조항이 법적 효력이 상실된 오늘날 임신중지 권리 보장에 관한 과제를 다루었습니다. 먼저 임신중지 인프라와 및 정보 및 의료인 교육 부족, 건강보험 및 유산유도제 미도입과 같이 잔존하는 문제와 더불어 올해 7월 시행되는 보호출산제의 문제점에 대해 재생산권 보장 운동의 관점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익명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태생에 대해 알 권리를 침해하며, 이주민의 배제,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재생산권에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정보와 수단, 또 차별과 폭력 없이 결정을 내릴 권리가 모두 포함되는 만큼 여성이 양육을 포기하는 여러 사회경제적 이유를 도외시한 채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만을 기반으로 정책을 도입한 것 역시 문제로 꼽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후기 임신중지 브이로그 역시 재생산권 보장의 관점에서는 해당 임신중지 사례가 살인인지의 여부보다 임신중지를 위한 체계와 정보의 부족으로 임신중지가 지연된 배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새로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모임넷의 7대 요구안을 함께 읽어본 뒤, 유산유도제(미프진) 도입과 관련한 쟁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유산유도제 도입 요구는 이른 임신중지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적은 부작용을 가지는 미페프리스톤(미프진)을 도입하고, 자연 유산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미소프로스톨을 임신중지에도 사용할 수 있게끔 허용하라는 주장인데요, 국회에서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개정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약물의 도입을 미루고만 있지만 실제로는 형법 개정 없이도 유산유도제를 도입할 수 있고, 모자보건법 역시 개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을 알리며 유산유도제 도입을 미루는 식약처와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기자회견, 공개 민원 제출, 국민감사 청구와 캠페인 등 여러 운동을 진행해 온 모임넷의 활동을 따라가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의의 마무리는 상담소의 반성폭력 운동과 임신중지 권리가 왜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전에도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중단은 허용되어 왔으나, 현행법상 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건 또는 관계에서의 임신은 피해사실 소명이 어려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폭력을 입증한 피해자의 경우에도 지원 기준이 길고 엄격할 뿐 아니라 병원을 찾는 어려움, 의료진의 인식 부족, 장애인・이주민의 접근성 문제 및 건강보험 보장 부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 권리보장에도 보편적 임신중단권이 선행되어야 하며, 반성폭력 운동과 재생산권 보장 운동이 지향하는 신체에 대한 자율권 실현은 서로 맞닿아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재생산권을 둘러싼 논의와 운동의 역사를 잘 정리한 강의 덕분에 오늘날의 과제는 무엇이 남았는지, 임신중지 관련 쟁점에서 필히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고자 하는 사회와 제도에 맞서나가는 재생산권 보장 운동과 반성폭력 운동이 함께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중요성을 체감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변과 공론장에서 여성주의적 언어로 보편적 임신중지를 비롯한 재생산권의 온전한 보장을 주장할 때의 논리를 어떻게 더 정교하게 다듬어갈지,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 지점이 어디이며 격차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와 같은 더 깊은 고민으로도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활동가 도희 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