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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상담소 소식

마음 맞는 회원들과 진행한 소모임이나 회원놀이터 등 다양한 회원행사를 소개합니다.
[후기] 신입 활동가 부리의 연수일지 _ 『성폭력뒤집기』를 읽고
  • 2025-10-01
  • 155

성폭력 뒤집기 한국성폭력상담소 20년의 회고와 전망을 읽고

 

 
출근 첫 날 환영식에서 꽃다발을 받았다.💐


성폭력 뒤집기 한국성폭력상담소 20년의 회고와 전망을 읽고, 그리고 부리의 새 활동에 앞서 쬐만한 각오와 희망도 조금 덧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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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일 자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활동명으로, 다시금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사무국의 OT와 함께 성폭력 뒤집기, 보통의 경험, 여성주의 상담, 나침반을 찾아라중 한 권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외에도 과제가 두 개나 더 있었다!) 그중에서 성폭력 뒤집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조직과 구성원이 처음 만나게 되면 마치 일상적인 일대일 관계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잘 알아가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의 연대기와 역사를 궁금해하며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선택하게 됐다.

이 책은 2011,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0주년을 기념해서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현재 고민되는 지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아 발간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던 상담소의 시간을 다소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을 일부 발췌하는 방식으로 감상문을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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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담하는 여성주의

- 5. 상담에 관련된 쟁점들: 제도화의 빛과 그림자 (p.90, 91)

국가 차원의 대책이 없던 시절과 달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회복지 서비스의 하나로서 여성폭력 분야에 나선 시점에서, 상담이 운동이 아닌 단순 서비스로 변질되는 문제가 발생상담소는 피해자들이 이런 제도적 혜택을 ‘권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함께하기 전에 가장 오래 근무했던 기관 역시 여성운동단체의 부설 여성폭력피해자지원기관이었다. 위의 논의는 이전 근무 단체에서도 종종 이야기되는 것이었다. 스토킹, 데이트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이 젠더폭력들에 (보호법이 포함된) 특별법이 생긴 것, 그리고 그 중 보호법으로 제도권 안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이 들어온 것, 또한 국비 지원으로 기관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운동의 성과다. 젠더폭력이 단순히 개인 간에 일어난 일이 아닌 사회·제도적 문제임을 국가가 인정하고, 그것을 (미진하게나마)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여기에는 부작용이 있다. 예산을 지원받는 기관은 국가 혹은 지자체의 행정적 관여를 받게 된 것이다. 단순히 가벼운 감찰이나 예산 감사에 그치지 않고, 기관의 사업 방향이나 활동에 하나하나 딴지를 걸거나 트집을 잡는 경우도 생긴다. 집회·시위를 기획하여 업무시간 내에 진행하면, 그것을 문화제형식으로 보고해야 하거나, 아니면 아예 근태 보고에는 다른 내용으로 작성해야 하는 등의 일도 발생한다. 특히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일 때, 혹은 기관의 지향점과 다른 지향점을 가진 지자체장이 선출되었을 때는 이런 일이 더욱 심해진다. 특정 집회나 행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하니, 단체나 기관의 이름을 걸고 참여하면 생길 후사가 두려워 스스로 몸을 사리게 되기도 한다.

물론 피해자 지원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후원 상황이나 단체의 여력과 무관하게 정부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책에서 지적한 대로 피해자에 대한 개별 상담에 매몰되어 여성주의 상담과 활동이 아닌, “사례관리위주의 상담 서비스 업무만 진행하는 데에 머무를 수 있다. 우리의 업무가 이미 발생한 피해 사례만을 관리하는 것에 그친다면, 사례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여 의제화하거나 향후 유사한 피해 발생 방지를 위해 여러 활동과 운동에 힘을 쏟는 것이 가능할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연대하고 힘을 보태는 것이 가능할까? 제도화에 있어 항상 고민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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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의 객관성을 재구성하다

- 3. 법정책 운동은 무엇을 남겼나: 지향 여성주의 관점의 재확인과 새로운 상상력 (p.221)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한다는 인식은, 피해생존자를 보호할 대상또는 의심과 비난의 대상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사회의 시선에 대응할 근거를 열어줬다. (...) 나아가 성폭력이 성충동에 따른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힘(권력) 있는 사람이 그 힘을 이용해 저지르는 일이라는 사실은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특징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남자 어린이나 남성 피해자들의 문제도 이해하게 했다.


5. 성폭력 문화에 맞서다

- 3. 성폭력과 성문화의 관계를 비틀다: 성폭력 예방과 군기는 공존할 수 있을까 군대 내 성폭력 (p. 243~245)

상담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으로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성의식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 목격자들은 피해자의 외모나 태도가 여성스럽기 때문이거나(51.3%), 신체적으로 연약해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21.7%)이라고 답했다. 2001년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가 교도소 성폭력을 조사했을 때도 남성 간 성폭력의 주된 가해자는 이성애자이며, ‘여자 같은남성성을 이탈한 남성에 관한 혐오와 처벌의 의미에서 성폭력을 가한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보고했다. (...) 문제의 본질은 어느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아니라, 특정한 남성다움을 강요하면서 낙인과 배제, 폭력을 동원하는 군대의 유지 방식이라는 점(...)

 

4부와 5부의 일부 발췌 부분에서 동일 맥락을 발견하여 이를 엮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이성애자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재현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부장제에서 어떻게 주효한 남성성으로 해석되는지가 성폭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 남성의 욕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그 정도가 엄청나서 제대로 분출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성폭력이 발생한다.”라는 식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로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성애자 남성의 동성 대상 성폭력 혹은 욕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에 흔히 무성의 존재로 여겨지는 여러 층위의 존재들에 대한 성폭력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성폭력이 욕망에 관한 문제라면,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성폭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남성들 간의 연대에서 서로의 남자됨을 확인하는 도구로 성폭력이 쓰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책에서 말하는 군대 내 성폭력이 그렇다. 군대와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에서 어긋나는 이질적 존재에게 행하는 징벌로써 성폭력이 사용되고 용인되며, 그것은 남성성의 공간에서 극단의 배제를 보여주고자 하는 행위가 된다. 결국 여성 피해자가 겪는 성폭력이든, 여성이지만 사회적인 기준에서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성폭력이든, 그 밖의 존재이든, 혹은 남성 대상 성폭력이든 본질은 같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젠더폭력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질문도 이것으로 대답할 수 있다. 더불어 성폭력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성욕의 분출로만 볼 수 없다.”라는 것에 대한 근거도 이것으로 들 수 있다. 결국 성폭력의 핵심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구현되고 재현되는지를 들여다봐야만 한다.

성폭력을 단순히 개별 피해자가 겪은 사적인 문제로만 해석하고, 그것을 사례관리하는 방식의 지원만으로는 본질적인 해결이 어렵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의 종합적 맥락을 읽는 것도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서는 피해자/생존자/경험자들의 치유에도 근본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생존자/경험자가 본인이 겪은 경험을 사회적 언어로 구성하고, 이것을 발설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찾아 쏟아내야 한다. 또한 이것이 단순히 개인 간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며, 사회가 용인하고 승낙한 방식의 폭력임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이 용인된 폭력의 행간을 읽어낼 때 재해석이 가능해지고, 그 재해석이 바로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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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담-활동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부리가 되고 싶은 상담-활동가의 모습을 중심으로... 호호😎)

 

피해자가 피해 직후 겪는 혼란 속에서 감정을 읽어내고 다독이는 것은 상담원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그러나 상담원에 한정된 역할을 넘어서는 상담-활동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활동가는 개별 피해자가 겪은 일 속에서 폭력이 일어나고, 그것들이 용인된 순간들을 찾아내고, 그 각각의 순간들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도식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도식과 언어로 부표와 반짝이는 등대 신호를 만들어 폭력의 파도에 휩쓸리는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또한 이 뒤집힌 세상을 다시 한번 뒤집어 엎어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고, 혼란 속에서 우리의 평화를 써 내려갈 수 있다.

치유와 회복은 지난한 혼란과 소란 이후에 온다. 잔뜩 어지럽고 가득 난잡한 상태를 견디는 일은 어렵다. 어떤 위대한 구원자가 내려와서 이 모든 소란을 일시에 제거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난잡한 소란과 혼란 속에서 자신을 구출할 수 있는 도구는 우리 모두 스스로 가지고 있다. 없다면? 그러면 옆 사람에게 빌리면 돼! 그리고 나는 그 옆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오랜 시간 보부상처럼 가방에 모든 물건을 넣어 다녔는데, 누군가 가방의 크기는 불안감의 크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빌려서 조금 고쳐서 써보고 싶다. “가방의 크기는 꺼내 쓸 것이 많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의 크기이다! 비록 누군가의 불안정한 상태를 일시에 리셋해주는 위대한 구원자는 되지 못하겠지만 되고 싶지도 않다 그이가 회복을 위한 무엇을 찾을 때, 그 옆에서 들고 다니던 가방에서 적절한 것을 찾아 꺼내줄 수 있는 이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난한 혼란과 소란과 난잡한 상태도, 옆에 벗이 있다면 조금 더 견디기 쉬워지지 않을까? 혼란 속에서 다시 헤엄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잡고 있을 수 있는 부표가 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등대 신호도 함께 정비해 보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로 새로이 상담-활동가가 되는 여정을 시작해 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