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4월 9일(목) 저녁 7시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35주년 맞이 통합자문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상담소에는 운영, 법정책, 성문화운동, 상담, 법률, 국제협력, 열림터(운영위원) 총 7개의 팀 및 분야에 자문위원님들이 계시는데요, 모든 자문위원들을 한 자리에 초대한 것입니다. 10년 만에 열린 통합자문위원회였어요. 각 팀에서 자문위원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활동가들이 고민이 생길 때 상시적으로 자문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팀 자문위원 분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고, 자문위원님들도 상담소 활동 전반에 대해 의견을 주실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활동가들에게도, 자문위원님들에게도 확장된 교류와 의견 나눔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장다혜, 김은아 두 이사님과 오매 활동가의 환영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모든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했어요. 이름과 소속, 최근에 내가 꽂힌 것(일, 취미 등등), 나에게 상담소란 00 이다 를 이야기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상담소는 출신지"
"나를 지탱해주는 코어"
"놀이터"
"페미니스트 공동체"
"버스 손잡이"
"방앗간"
"나에게 희망과 열정과 연구할 거리를 주는 곳"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직"
"애틋한 곳"
"온실"
"좋은 일터, 좋은 직장"

이어서 최란, 앎, 신아 활동가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주제1. 피해자들과 함께 만들어 온 법제도가 한계로 돌아올때, 법제도의 바깥에서 우리가 원하는 여성주의 사건 지원
앎 활동가는 상담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건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시도 보다는 법적 해결로 결국 수렴되는 상황을 짚었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고 법제도 해결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고 있지만 법제도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실, 공동체적 해결은 사라지고 가해자 변호 시장 뿐만 아니라 피해자 법률 조력 역시 시장화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 생존자들의 언어, 감정, 인식, 욕구, 정체성의 변화도 체감합니다. 피해자 상담이나 지원이 반성폭력 운동의 일환이라기 보다는 국가 서비스로 여겨지고, 피해자의 취약성을 강조하는 법적 사회적 통념이 강력한 상황에서 피해자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모든 것이 피해였다"는 해석만 남게 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통합자문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질문과도 닮았습니다. 법과 제도를 알고 활용하고 바꿔가되, 우리가 지향할 목표가 법제도로 치환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성주의 상담, 지원 시에도 법률상담이나 제도적 해결이 하나의 중요한 수단일 뿐, 이를 넘어선 대안과 목표도 피해자와 이야기 해보면 좋겠어요"
"피해자의 롤모델은 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렇고요. 여성주의와 함께 분투하며 건강히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생존자들에게 임파워먼트가 된다고 봅니다"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법과 제도만 남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상담소를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시도, 자립에 대한 실험 속에서 관계를 고민하는 것, 지금 하는 일 모두 법제도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만드는 시도입니다."
"성평등 인식 개선이나 성폭력 예방 교육이 대규모,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 방식에서 조직문화 점검, 문제 및 갈등 논의 교육으로 '조직'에 초점을 둔 내용과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폭력 로펌 파워링크 반대 운동!"

주제2. 성폭력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지금 상담소가 부딪쳐 넘어야 할 것과 그 전략
91년 상담소가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사회에 등장시켰다면, 2018년 이후 성폭력의 메커니즘과 이를 바꾸기 위한 핵심의제로 강간죄 개정을 핵심 의제로 제기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강간죄개정안이 발의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안티페미니즘과 극우화 경향, 성폭력 무고 및 역차별 담론은 정권과 시기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지속되고 있는 반성폭력운동의 장벽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문화는, 피해자가 더욱 법적으로 유죄를 판단받기 위한 사법적인 과정에 사력을 다하게 만드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통합자문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강간죄개정은 결국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존중'과 '동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치지 않고 나아갈 때!"
"동의 기준으로 강간죄 개정 그 이후를 준비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많은 '가해자'는 동의를 믿었다고 주장하고, 그런 주장은 때로 '진실'이며 재판부에서 수용됩니다. 동의를 구했다는 그들의 '신뢰'와 재판부의 '공감'에 대응이 필요해요"
"피해자가 사법 제도 아래 당사자로 설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해요"
"디지털성폭력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의 몸/성적 실천하는 여성에 대한 낙인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할 듯"
"무고/역차별이 왜 '허구'인지 실증하는 연구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러한 연구의 추진과 자원의 배분자체가 권력투쟁이지만요"

주제3. 격변하는 세상에서 기꺼이 페미단체로서 지키고 확산하고 싶은 것
AI가 보편적인 활용되어 가는 시대에, 인간의 일을 상담소도 고민합니다. 곁에 있고 영향을 주고받고 관계를 쌓아가는 일, 영향과 책임을 대해 고민하는 것, 판단과 지식의 경험의 주체로서 생존자와 함께 의미화를 도모하는 일은 상담소가 계속 해온, 무척 인간적인 일입니다. 특히 쉼터를 통해 상담소는 생존자의 일상회복과 자립을 '공동주거'의 형태로 함께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생활과 공동의 감각을 생존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고립과 단절, 우울과 불안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피해자 지원이 연결을 조직하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혐오와 차별, 극우화와 역차별에 맞서고 반성폭력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더욱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통합자문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피해자 지원 사업은 궁극적으로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자율성을 회복하는 주체적 존재로의 변화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도움을 받으면서, 미래의 변화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한손으로는 생존자를 밀면서 한 손으로는 넘어지지 않도록바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원이 아니라 돌봄? 처음 관계 맺을 때부터 같이 편해지고 놀고 상의하는 관계 지향은 불가능할까?"
"단절보다 대화가 극우 청소년 청년들을 더 많이 변화시켰다는 글을 보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고 싶은 존재이다. 내 옆에 다른(때로는 너무 많이 다른) 존재하고도 대화하고 초대해야 할까?"
"삶에서 신뢰할 수 있거나 자유롭게 대화할 이가 부재한 이들에게 AI는? 리터러시나 위험도 만큼 AI가 편리하고 신뢰 대상이 되는 삶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상담소가 20-30 여성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 '노인 여성'에 대해서도 관심 가지면 어떨까요?"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시간이 짧아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상담소 활동가들의 고민에 새로운 시선, 언어, 개념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활동이 잘 나아가고 있구나 확신을 갖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길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상담소의 곁을 확인하는 든든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민들은 잘 녹여내어 활동으로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열림터 신아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