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안대응
[기자회견문]
정녕, 아무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을 것인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故) 장자연 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인륜적인 범죄, 은폐·조작 자행한 검찰을 규탄한다
지난 5월 20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고(故) 장자연 씨 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수사가 ‘미진’했으며, 조선일보의 외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증’에 대해 재수사를 권고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핵심 의혹인 ‘성범죄’, ‘부실·조작 수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완료됐다거나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사건의 진실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고 검찰 개혁을 이룰 것이라는 발족 취지가 무색하게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어떠한 진실도 규명하지 못했다. 더욱이 “진상조사단의 일부 검사들이 조사를 방해하고, 결과를 축소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진상조사단의 결과보고와 다르게 과거사 위원회가 결과를 축소하여 발표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과거사 위원회를 발족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검찰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활동 종료를 앞둔 지금, 검찰은 도대체 어떤 진정한 반성을 했으며, ‘검찰의 캐비닛’까지 들여다보며 검찰 개혁을 이루겠다는 선포는 어디로 갔는가.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가 애초부터 있기는 했는지 강한 의구심을 품게 하는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와 검찰의 작금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최종 결론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고(故) 장자연 씨 사건> 심의 결과와 검찰 과거사 위원회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봤을 때 각종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난 3월,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중간 결과를 보고하면서 ‘성폭력 범죄’는 제외하고, ‘뇌물죄’, ‘청와대 민정라인 외압 의혹’ 등에 대해서만 재수사 권고를 내렸으며, 당시 검찰 수사의 문제점과 검찰이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은폐·조작하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진상조사단이 성폭력 피해를 고소한 여성에 대해 “무고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가 비슷한 양상의 피해사실을 진술한 것을 당시 경찰과 검찰 수사 자료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도리어 피해자의 무고 혐의를 운운하는 것인가. “피해자 진술 의심”, “진짜, 가짜 피해자 가르기” 등 검찰의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반복하며 또다시 성폭력 범죄를 축소·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가운데 지난 5월 16일, 검찰 특수수사단의 수사에 의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지만, ‘성범죄 혐의’는 영장에서 제외되었다.
<고(故) 장자연 씨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모두 한국사회 권력층에 의해 여성들이 ‘도구화’되고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된 반인륜적인 범죄다. 피해자가 존재하고, 피해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당시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권 남용과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진실을 낱낱이 밝히겠다며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발족하고, 두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된 지 14개월이 지났다. 5월 말로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는 지금, 희망을 놓지 않고 조사에 열심히 임한 피해자들의 기대에, 사건에 대한 진실을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는 시민의 기대에 어떤 책임 있는 대답을 내놓았는가. 진상규명을 하겠다면서, 이 사건을 ‘정치적 쟁점’으로 취급하고 침해된 여성인권 문제는 외면한 채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하지는 않았는가. ‘공소시효’와 ‘증거부족’ 모두 과거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기인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유로 사건 해결의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수십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이 문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청원했다.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와 검찰 개혁에 대한 기대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엄정수사’를 지시했던 대통령,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 역시, 모두 이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 이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행동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에 오늘 1,042개 단체는 형식적인 조사와 수사 끝에 누구도 처벌되지 않고, 아무도 받을 사람 없는 책임 떠넘기기로 이들 문제를 끝내려는 모든 작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이제라도 두 사건의 본질이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폭력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의혹투성이인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해 끝까지 진상을 밝히고, 책임질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검찰 과거사 위원회를 넘어, 검찰, 법원, 정부, 국회의 앞으로의 행보 또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두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2019년 5월 22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故)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인륜적인 범죄, 은폐·조작 자행한 검찰을 규탄 기자회견
총1,042개 단체 참가자 일동
[발언문] 성폭력을 수사하는 공권력이냐, 성폭력을 은폐하는 공범이냐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를 그저께 5월 20일에 발표했습니다. 검찰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쓰여진 26장의 보도자료를 읽고 비통함과 분노가 터집니다.
검찰은 김종승을 방패삼았습니다. 고 장자연씨의 소속사 사장이자, 배우 협박 갈취하고, ‘성접대’ 강요 폭언 폭행의 가해자 김종승. 검찰은 김종승의 강요·강요미수, 협박, 강제추행 혐의를 수사했어야 함에도, 모욕, 폭행죄로만 축소 기소하여 최종 집행유예를 받게 했고, 2019년 과거사위 발표는 김종승의 위증죄를 겨우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대신 말해야겠습니다. 김종승, 당신은 성폭력 가해자입니다. 고 장자연씨에게 사죄하십시오.
검찰은 김종승을 수사, 기소하면서, 김종승을 존재하게 한 사회 고위층 가해자들 하나하나 수사, 기소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종승의 진술을 근거로 수사 대상자들을 하나하나 빼주었습니다. 2009년 KBS 입수본 고 장자연씨 문건에 세 번이나 등장하는 이름.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 ‘방사장님’, ‘조선일보 방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 이들이 누군지 김종승은 딴 사람인 양 거짓증언을 사주했고 들통났음에도 검찰은 그 말을 인용했습니다. 가해자가 고위층을 가해자로 초대/알선하고, 그 힘을 빌어 자신도 가해자로 지속되는 구조에, 검찰은 가해자로써 또 다른 가해자를 봐주는 구도로 화답한 것입니다. 검찰은 공범입니까 공권력입니까.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서도 검찰은 윤중천의 말을 핑계 삼았습니다. 최초의 가해자이며 김학의 등 고위층 가해자들을 불러들이고 영상 유포 협박 등으로 피해자들을 옥죄어온 윤중천. 그런데 수사기관 검찰은 윤중천 보다 한발짝도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윤중천이 입다물 땐 무혐의, 윤중천이 애매하게 흘릴 땐 기우뚱, 윤중천이 자료를 내면 구속영장을 구성했습니다. 윤중천의 말과 김학의 말이 바뀔 때마다 검찰은 졸졸 따라갔습니다. 검찰은 공범입니까 공권력입니까. 전현직 검사 및 고위권력층의 범죄는 이렇게 은폐해왔던 것입니까.
검찰은 피해자의 말을 10년동안 내내 듣지 않다가, 이제 와서 더 심한 피해는 없는지 찾습니다. 과거사위는 고 장자연씨의 ‘약물 성폭력’ 피해 ‘가능성’과 공소시효가 남았을 가능성을 툭 던지면서도 재수사는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김학의 사건은 집단 성폭력 여부를 피해자 말이 아니라 12-3년간 동영상 활용 협박범 윤중천의 말만 좇다가 어제에서야 트라우마 상해를 낳은 강간치상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검찰은 먼저 사죄하십시오. 10년간 수사, 기소할 수 있던 수많은 기회를 다 날리고, 은폐 조작하고, 이제 와서 무슨 면목으로, 무슨 양심으로 피해자에게 더 심한 피해, 더 큰 피해 없냐고 찾고 있습니까. 불기소 할 때도 피해자 탓, 검찰 부실수사 면책도 피해자 몫입니까?
대한민국 검찰은 책임져야 합니다. 국민들의 힘으로, 여성들의 힘으로, 피해자들의 용기로 겨우 겨우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확인한 건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도, 뭐든 안할 수도 있는 사회입니까? 가장 엄밀하고 과학적이기까지 할 줄 알았던 수사 영역이 가장 부실하고 말도 안 되는 권력자랑의 무대였다는 것입니까?
검찰은 사죄하십시오 부실수사 검사들을 징계. 파면하기 바랍니다. 성폭력 범죄자들을 반드시 기소하기 바랍니다. 끝까지 재판에서 처벌해내기 바랍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검찰이 저지른 잘못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사권의 분리와, 기소권을 갖춘 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은 과거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그것이 성평등 민주주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