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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안대응

공론화가 진행 중인 개별사례의 구체적인 쟁점을 알리고 정의로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소개합니다.
[논평]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를 피고인 반대심문권으로 인정한 사법부 판결 규탄.
  • 2005-09-16
  • 4126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 옹호하는 사법부를 규탄한다!

지난 6월 29일 서울남부지법(민사 34단독 윤태호 판사)은, 근친성폭력사건에 대한 심문과정에서 가해자측 변호사가 피해자의 성력 등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질문과 함께 피해에게 모욕적인 심문을 한 것과 관련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성폭력관련 공판심리의 문제점은 그 동안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던 문제이다. 가해자의 범행의도를 인정할만한 확실한 단서가 있는지, 범죄성립요건으로 폭행 및 협박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의 판단에 심리가 집중되면서, 그 ‘정도’를 피해자의 저항정도 및 구조요청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사건에 대한 책임소재가 피해자를 대상으로 판단되고, 공판상의 초점이 가해자의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행위 및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가 과연 진정으로 피해당사자인가’의 문제로 전이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2차 가해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본 사건 역시 이러한 현행 성폭력관련 공판심리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서, 본 단체는 이번 사건을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로 규정한다. 더불어 법원의 이번 손해배상 청구 기각결정은 사법부의 성편향성과 가해자중심주의적 공판을 스스로 인정하는 반인권적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1. 사법부는 성폭력 범죄 판단에 있어, 사법부의 성편향적 기준을 스스로 인정하고 주장하고 있다 !

성폭력피해자의 경우 공판과정에서 다른 범죄에서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감수하게 되며,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들 또한 매우 빈번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현행법 체계 및 판례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인격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사회일반에 존재하는 성별에 따른 권력차이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차별적 조건과 문제점이 존재함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적극 수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성폭력 범죄를 판단하는 부분에 있어서 남성중심적 시각을 함유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처럼 사법부의 ‘성편향적’ 기준은 그 차별적 조건이 가지는 문제점을 은폐시키고, 이로 인한 고통과 부담을 피해여성스스로에게 책임지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피해자의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피해자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현실을 발생시켜왔다.
본 사건에 있어서도 법원은, 증인심문의 과정에서 사건의 실체적 사실확인과 무관한 모욕적 심문을 강요당한 피해자의 권리회복주장을 가해자의 반대신문권을 이유로 기각하였다. 이때 기각 결정의 근거 중 하나로서 문제의 질문들이 ‘사건과 무관한 질문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바라본 입장은, 위와 같은 현행 성폭력관련 공판심리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며, 이를 사법부 스스로가 인정하는 태도라 할 것이다.

2. 사법부는 보호법익을 정조관념으로 바라보면서 성력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신뢰성을 판단하려는 문제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

성폭력범죄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으로, 형사법이 보호하려는 가치는 판례상 ‘성적자기결정권’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법원의 심리는 이전 판례의 해석에 의존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형법개정 이전, 관련조항의 제목이 ‘정조에 관한 죄’로 되어있던 50년대의 구 판례는 피해자의 주체적 인격과는 무관한 소위 ‘보호할 만한 정조’에 한하여 형법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법적용과 해석은 최근까지도 증인신문 내용으로 ‘보호할 만한 피해자’와 ‘그렇지 못한 피해자’‘를 구분 짓는 것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문제는 피해 진술인이 과연 신뢰할만한가를 판단하려는 문제와 더해지고, 신뢰성 판단의 기준으로서 피해자의 성력을 문제 삼는 태도를 가져오면서 끊임없이 비판받아 온 바 있다.
본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는 가해자측 변호인에 의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한 피해자의 이전 성력, 품행, 피해자 주변인의 정숙함 등에 관한 질문을 받았으며, 이로 인한 모욕감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음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러한 질문들이 사건의 사실 확인과 관련하여 무관한 질문이라 보기 어려우며 변호인의 변호권 영역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함으로써, 보호법익을 정조관념으로 바라보며 피해자의 이전 성력을 기준으로 진술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옹호, 지지하였다.

3. 사법부는 부당한 성적 폭력의 피해자에게 폭력의 책임을 추궁하는 문제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

현행 성폭력관련 공판심리에 있어 또 하나의 문제점은 ‘피해자가 피해를 유발하지 않았는지’에 관한 신문이다.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저항정도로 화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거나 피고인으로 하여금 오해하게 만든 부분이 있었는지 등이 검토되는 식으로, ‘가해당시의 가해자가 행한 폭력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아니라 역으로 ‘피해자의 반항 형태’로 폭행의 정도를 살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당시 행한 피해자의 구체적인 반응이나 행동들은 성폭력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남성중심적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평가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피해자는 ‘피해 혐의자’로서 책임을 신문받는 상황이 연출되어 왔다.
본 사건에 있어서도, 가해자측 변호인은 피해당시 피해자의 저항정도 및 정황에 대한 모욕적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할만큼 지나치게 세세한 질문을 던졌을 뿐만 아니라, 피해당시의 정황과도 전혀 무관한 사실들을 확인해가며 마치 피해의 책임이 피해자의 무지에 기인하는 것처럼 피해자를 윽박지르고, 이를 통해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이 있다는 것처럼 신문하였다. 그런데 이를 사법부가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은 질문이며, 변호인의 권리로서 인정하였다는 것은, 사법부 역시 피해자의 피해유발 혐의를 기준으로 성폭력범죄를 판단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4. 사법부는 성폭력피해자의 권리보호를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사법부의 기본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

소송과정에서의 피해자의 2차적 피해는 1차 성폭력 피해 못지않게 개인으로서의 존엄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결코 ‘소송진행 상 감수할만한 것’이거나 ‘가치 비교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소송의 과정이 진실발견과 처벌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범죄피해로부터의 회복과정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성폭력관련 증인신문 과정에서의 2차가해와 관련, 여성단체들과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그동안 제기해온 문제제기에 대해, 사법부의 일반적 태도는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피고인의 권리보장과의 형평성에 위배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보는 입장이었다.
물론 피고인과 피의자의 인권은 모두 보장되고 강화되는 방식으로 관련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나, 피고인의 인권보장이 피해자의 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거나 배제하는 정도에까지 인정되는 것은, 더 이상 형평이 아니라 차별이며 명백한 폭력이자 권리침해라 할 것이다.
본 사건에 있어서도, 법원은 “원고 입장에서 신문 내용이 불쾌할 수는 있겠지만 의뢰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입장이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불법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 밝힘으로써, 피해자의 기본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 주장을 피고인 및 피고인측 변호사의 방어권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는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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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으로, 미국의 경우 강간피해자보호법을 채택하여 피해자인 여성의 적절하고도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에도 형사소송법에 피해자에 대한 진술의 내용을 적절히 제한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부여하고 있어 완전하지는 않지만 피해자 보호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Rule 70’) 역시 성폭력사건의 경우에 장소나 환경, 피해자의 행위, 저항 정도 등을 근거로 동의여부를 추측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피해자나 증인의 기존의 행위를 근거로 하여 피해자나 증인의 성격이나 경향을 추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강간피해자보호법을 적극적으로 채용,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 제299조는 중복되거나 사건과 관계없는 질문에 대한 통제권을 재판장에게 부여하고 있고, 형사소송규칙 제74조 2항과 제77조는 제한되는 질문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러한 기준만으로는 성폭력사건에 있어서의 피해자 특히 여성들에 대해, 사건 외적인 사항을 질문함으로써 발생하는 2차적인 피해를 통제하기에는 매우 초보적인 미미한 수준이며 또한 그 적용에 있어서도 피고인 방어권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하겠다.
더불어 이번 판결은 이와 같은 공판심리과정에서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단지 몇몇 문제적인 법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의 기본적인 관점과 태도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고, 심각하다 할 것이다.
이는 최근 공판중심주의로의 형사소송법 개정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논의, 추진되고 있는 현 흐름과 함께 더욱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할 문제이다. 사법부의 기본 관점이 공판과정에서 피해자의 기본적 권리를 부차적인 것 혹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충돌하는 것으로 사고되는 현 상황에 더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장치 없이 피고인의 방어권만 더욱 강조되게 될 경우, 피해자의 진술 및 공판심리 과정에서의 2차 피해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권리보호 또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판과정에서 피해자권에 대한 주장이 과도한, 특권의 이익 주장으로서 다루어지는 것은 부당하다. 공판과정에서 모욕적 신문을 받지 않을 권리는 피해자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부분이며, 피고인의 방어권은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 신문 이외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구현될 수 있으므로, 이는 권리간의 충돌이 피고인측의 방어권 한계를 벗어난, 과도한 권리의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고인 방어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현 형사소송법 개정의 흐름에 대한 우려를 보다 현실화시키며, 피해자의 인권보호의 역할을 사법부 스스로가 방치하고, 오히려 피고인의 과도한 권리주장과 인권침해 행위를 옹호한 부당한 판결이라 비난받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 상담소는 성폭력피해자 증인신문과정에 대한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다음의 제도적, 사회적 조치를 주장하는 바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부당한 수사․재판의 전 과정에 걸쳐있는 문제이므로, 대안은 소송 전 과정의 개선점을 다루고자 한다.)

<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증인신문 제한 관련 >

1. 피해자의 성력, 사생활 등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는 신문사항을 제한하는 보호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2. 피해자에 대한 부당신문은 정신상 고통을 야기하는 불법행위로 인정되어야 한다.

3. 피해자에 대한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증인신문의 결과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써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한다.

4. 피해자의 증언거부권, 피해자의 변호인 선임권 등 피해자 보호 및 권리강화를 위한 절차가 수사, 공판 전과정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 수사, 공판 담당자의 인식 전환 및 2차피해 방지 지침 마련 및 실행 필요 >

1. 성폭력 수사, 공판 과정에서의 2차피해는 상당부분 형사, 사법 절차 담당자의 성 고정관념, 성폭력에 관한 통념에서 비롯된다. 이에, 관련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의 성인지 교육의 의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2. 수사기관과 법원을 비롯한 소송주체에 의한 2차가해에 대해, 제도적 제재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3. 경찰은 수사단계에서, 검찰은 수사와 공판단계 모두에서 2차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수사지침에서는 이미 원칙적인 측면에서 성폭력피해자 보호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현장에서 이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지침내용이 실효성 있게 활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침준수의 의무화와 동시에 실제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문내용의 구체적 예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4. 법관의 경우 재판의 독립성 및 재량행사의 기준으로서 부절적한 증인신문의 내용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재량을 가질 경우의 법관개인이 가지는 한계가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이 없도록, 사인으로서가 아니라 법관으로서 해당사건을 다룰 때 필요한 2차피해 관련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5. 변호사 윤리 차원에서도 2차피해에 대한 인식수준을 높일 것이 요구된다. 변호사협회 차원의 교육, 지침제시, 윤리규정, 징계조치 등 가능한 방안을 최대한 모색되어야 한다.

2005. 6. 30
(사)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