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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안대응

공론화가 진행 중인 개별사례의 구체적인 쟁점을 알리고 정의로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소개합니다.
이랜드에 보내는 까르푸(현 이랜드) 성희롱 사건 항소에 대한 공개질의서
  • 2006-11-08
  • 6194


<공 개 질 의 서>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까르푸뉴코아이랜드노동조합공동투쟁본부, 민주노총서비스연맹, 민주노총여성위원회, 민주노동당여성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연세대학생조직‘구공탄’으로 구성된 “까르푸(현 이랜드)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입니다. 이랜드는 지난 10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기각 결정에 대한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인 일부승 판결에 대해 가해자와 공동(피고의 보조참가)으로 항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공대위측은 유감의 뜻을 전하며 이랜드 회사에 공개질의서를 보내는 바입니다.

첫째, 이랜드가 이번 사건을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이랜드 측에서 성희롱을 인정한 판결에 불복하고 이번 항소를 제기했다는 것은, 이번 사건이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단 한번 사측 일방으로 조사를 강행한 것 이외에는 사건에 대한 어떠한 조사나 해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회사 측이 이 사건을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측은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 채, 인권위의 기각 결정에만 의존해 왔고 그것을 근거로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인권위가 항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한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의 판단을 근거로 성희롱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회사 측이 처음부터 무엇을 기준으로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였는가는 더욱 명백해집니다.
성희롱 사건에 대한 판단은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필요한 까닭은 사건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성희롱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가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 성희롱의 본질은 희석되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사측이 피해자들을 만나고 고통을 이해하고자 한 노력이 선행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성희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사건 초기부터 성희롱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의 결정이 나기 무섭게 “까르푸에는 성희롱이 없었다 … 피해자와 노조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전국 언론사에 배포, 피해자 근무지에 해당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피해자들을 압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사측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각으로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이랜드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둘째, 이랜드는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우선한다고 보는가

이랜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조가 주장하는 집단적 인권도 중요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가해자로 몰린 직원 개인의 인권도 중요하다”며 이번 항소 이유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이것은 사측에서 이번 성희롱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피해자들이 집단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 개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듯 설명 하였지만 피해자들이야말로 약자의 입장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은 개개인이며, 가해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성희롱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살펴보지 않은 채, 가해자가 혼자라서 약자가 되고 피해자들이 여러 명이어서 집단 권력이 된다면, 더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한 가해자일수록 약자가 된다는 것인지, 그러한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지 되묻고 싶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이면에는 사실상 성희롱 가해자를 옹호하겠다는 입장에 다름 아니며 여기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까지 숨겨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어떤 권력을 이용하여 성희롱을 하는지, 왜 피해자들끼리 힘을 뭉치지 않고서는 대항할 수 없는지, 그 대답은 바로 회사가 가해자 편에 섬으로써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이에 대해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이랜드는 성희롱 예방 및 근절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사업주 역시 노동자가 “안전한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하여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법에서 명시해놓고 있을 만큼 성희롱 예방은 이제 당연한 기업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랜드 역시 윤리경영을 선언하고 “임직원의 부조리, 비리, 회사 이미지 손상, 금품수수, 성희롱 등”과 같은 윤리강령 위반사항에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이랜드 홈페이지 참조). 특히 이랜드와 같은 유통업체의 여성 채용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구보다 앞장서 성희롱 예방 및 근절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홈에버의 전신인 까르푸에서는 피해자 보호나 가해자 문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기반 역시 마련되지 않았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랜드는 비록 전신이기는 하나 까르푸에서 발생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 부재 및 인식 부족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 것인가에 더 중점을 두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랜드가 가해자와 결탁하여 이번에 항소한 것은, 사측은 가해자 편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요, 앞으로 사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사건에 대한 함구령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랜드가 사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고 공정하게 해결할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이랜드의 답변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공개질의의 내용은 이상과 같습니다. 까르푸 성희롱 사건은 비단 해당 사건 하나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노동권에 해당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공대위는 이랜드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하며 사건의 추이와 이랜드의 행보에 주목하며 앞으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까르푸(현 이랜드)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까르푸뉴코아이랜드노동조합공동투쟁본부, 민주노총서비스연맹, 민주노총여성위원회, 민주노동당여성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연세대학생조직‘구공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