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안대응
지난 7월 5일 오후 2시 ZOOM을 통해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법적 대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그 의미와 이후 대응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지난 3월 31일에 열린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대법원 판결의 쟁점 및 문제점을 짚고 군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기존 제도의 한계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책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는데요, 많은 분들과 단체의 참여로 알찬 논의들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해군상관에의한성소수자여군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이하 해군공대위)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상담소의 여성주의상담팀 유랑 활동가님이 사회를 맡아주셨습니다! 발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여성인권위원회의 전다운 변호사님과 박한희 변호사님께서, 토론은 젊은여군포럼 김은경 대표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위원님, 군 성폭력상담소 김숙경 소장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분께서 당일 토론회에 참가하시며, 열띤 토론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이번 토론회의 중심 사건인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은 2010년, 해군 소속 피해자의 상관이었던 두 가해자가 피해자를 대상으로 지속적·반복적으로 강간, 강제추행 등의 성폭력을 자행한 사건입니다. 두 상관은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는데요, 2심 법원의 판결을 두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 여부를 두고 두 가해자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였습니다. 피해자를 강간하고 강제추행했던 A씨에게는 ‘A씨가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폭행하거나 협박해 추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기습추행으로도 볼 수 없’으며, ‘피해자의 진술이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에 배치되고, 강간의 수단이 되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반면 B씨에게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며, 피해자가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강제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유죄 취지로 2심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이 여전히 강간, 강제추행의 기준을 폭행·협박이라는 구성요건으로 판단하는 데에 매몰되어 있고, 사건 발생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진술의 어려움이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고 있어 성인지감수성이 부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A씨의 성폭력 사실을 B씨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성폭력을 당한 상황적 맥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달리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렇듯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전다운 변호사님께서 쟁점을 짚어주시고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요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먼저 이번 판결로 인한 군내 성폭력 사건과 성차별적인 문화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와 2차 가해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셨습니다. 전 변호사님께서는 이번 사건은 군이 성범죄 피해자가 2차 피해의 우려나 불이익 없이 피해를 호소할 수 없는 곳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나아가 최협의의 폭행성에 매몰되거나 성인지감수성 없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판단하는 법원의 태도는 향후 국내 성폭력 사건과 성차별적인 문화 개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역시 2017년도에 이르러야 고소를 제기했고 과정에서 조직 안팎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2차 가해를 견뎌야 했는데요, 피해자 진술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재판의 절차 관행에 의해 재판 절차 자체가 피해자에게 어려움으로 작용했고, 이 과정에서 법정에서의 2차 가해도 존재하였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법원이 피해자에게 ‘진술의 완전 무결성’을 요구하거나, 선량하고 친절한 피해자성에 기초한 판단을 토대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관행이 되는 오늘날의 사법적 현실이 군 내 성폭력 문제를 용인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후 이번 판결의 쟁점과 요지를 짚어주신 후, 판결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하였던 B씨의 경우 위법성이 더 가중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B씨의 경우 피해자가 A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도움을 요청하러 갔음에도 도리어 성폭력을 저지른 것, 이로 인해 피해자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피해자의 임신 중절 수술 이후 취약한 신체 상태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악의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권의 측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속 상관으로서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 지위를 이용하여 범행을 자행했다는 점, 조직 내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묵인·은폐가 아닌 보호·조치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은 점에서 노동권의 측면에서 위법성이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한편 변호사님께서는 A씨에 대해 내려진 무죄 선고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어주셨는데요. B씨와 상관으로서 피의자와의 관계나 지위가 비슷하고 강간 및 추행 당시 피의자를 제압한 유형력이 매우 유사함에도, B씨와 달리 A씨의 범죄는 업무상 위력에 불과할 뿐이고 폭행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판결한 것은, 폭행, 협박에 대한 규범적 해석에 혼란을 초래하여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에 따라 그 심리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 설명하셨습니다.
이어 박한희 변호사님께서 발제를 이어주셨습니다. 박한희 변호사님은 이번 성폭력 사건이 원고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는 점과 연관이 있음에도 이것이 2심 법원과 대법원에서 고려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시며 이 사건을 계기로 법적 판결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1심 판결에서는 성소수자라는 피해자의 성적 지향이 고려되며 가해자들에게 유죄를 선고된 반면 2심과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에 대해 고려되지 못한 채 행위의 위법성과 피해자의 진술신빙성을 판단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박 변호사님은 “가해 행위 자체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과 더불어 성소수자라는 피해자의 성적 지향을 이용했다는 점이 행위의 위법성만이 아니라 피해자가 겪은 경험과 그의 진술 신빙성 판단에서도 고려돼야 함에도, 그것이 고려되지 않은 점이 이번 판결의 문제”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소위 ‘교정 강간’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명백한 ‘혐오범죄’라는 점에 더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박 변호사님은 성소수자 성폭력을 다룰 때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지점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성소수자 성폭력 피해자가 사회의 동성애 혐오로 인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이 경우 더 강한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여 이후 진술신빙성이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법적판결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도 꼭 고려돼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번 사건과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성폭력이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비정상이라 여기는 ‘혐오범죄’의 속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함을 언급하셨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소위 ‘교정강간’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성폭력은 성적 지향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혐오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명백한 혐오범죄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 점에서 해당 행위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지향과 관련된 인격권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엄격하게 위법행위로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2심 판결과 대법원 판결에서 어떠한 판단과 명시된 부분 없이 무시됐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데요. 가해자가 피해자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었고 아웃팅에 관련한 협박을 자행했으며 ‘교정 강간’이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을 자행했음에도 이런 부분들이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판결을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박 변호사님께서는 이번 사건이 주는 사회적 시사점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군 내 성소수자 인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교정강간’과 같은 혐오범죄가 발생함에 대해 대처에 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에 “본 사건을 단순히 잘못된 하나의 판결로 치부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가 혐오범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충분히 논쟁돼야 할 것”이라 촉구하시며 발제를 마무리하셨습니다.
이후 토론에서는 젊은여군포럼 김은경 대표님께서 첫 토론을 맡아주셨습니다. 김은경 대표님은 “군 내 여군들의 성폭력 피해는 차별과 혐오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계급 구조 안에서 결국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이 성폭력, 성착취 또는 기타 등의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라며 “이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군대가 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토론을 시작하셨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군 내 성폭력, 인권침해 문제가 외부로 나오고, 국방부 역시 이에 관심을 가지며 제도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에 따르면, 지난 6월 고 이예람 중사의 죽음 이후,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73건의 제도 개선을 발표하며 성폭력 사건, 사법제도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도 개선안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김 대표님은 실제로 이러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즉 국방부가 아무리 사법시스템을 개선하고 성인지감수성을 교육하더라도 가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이러한 카르텔이 재판과 조사 절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이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위원님께서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신빙성 판단에 대한 연구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강은영 연구위원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에 대해 더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민간의 성폭력 사건들을 연구한 사례를 보면, 이번 판결문의 유사한 정도의 폭행, 협박 그리고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이 있는 경우에도 많은 판례에서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이 인정되었고, 이미 시간이 오래 경과된 경우에도 피해자의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또한, 강간, 강제추행과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설명될 경우, 나머지 사건과 관련된 정황에 대한 어떤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그 부분이 성폭력의 특수성으로 인해 충분히 이해되는 판결의 내용들이 수많은 판결문에 제시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협의의 폭행성에 매몰되었으며, 성인지감수성 없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판단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군 인권센터 내 군성폭력상담소 김숙경 소장님께서 토론을 맡아주셨습니다. 군 성폭력의 특수성과 상담 현황 실태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군 성폭력의 특수성으로 가해자의 신분, 조직의 폐쇄성, 계급을 기반으로 한 다층적 권력관계, 직장 내 성폭력 양상을 짚어주셨습니다. 김숙경 소장님은 군대 내 성폭력은 군이라는 조직의 폐쇄성으로 인해 ‘군인’이라는 가해자의 신분은 성폭력 문제 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하며, 계급에 의한 위력성과 성별 권력관계에 의한 위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조직이기에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다른 조직보다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또한 이러한 성폭력은 직장 내 성폭력으로서 특성을 가지며, 진급이나 생존권과 밀착돼, 피해자들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힘든 현실에 대해 언급해주셨습니다.
실제 상담 실태에서는 많은 경우 피해자는 하급자로서 선임이나 상급자에 의한 가해가 가장 많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피해자가 여군일 경우에, 동료, 후임, 하급자가 성폭력 가해자인 경우가 남군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실태는 군 성폭력에서 계급이라는 권력관계 못지않게 성별 권력관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김 소장님은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군 조직으로 이어지며, 여군들은 피해 사실에 대해 피해자성을 입증해야 하고 꼬리표처럼 소문을 달며 2차 피해에 노출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여군들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가해자가 이에 대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계속 침묵하거나 군 조직을 떠나거나, 죽음으로 호소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이에 김 소장님은 제도적인 정비와 더불어 군내 성평등 문화가 구축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며 “강군으로 가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여군이 안심하고 복무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 구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참가자분들의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시간이 지난 사건의 피해자진술신빙성의 판단,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임에 일절 고려하지 않은 재판부의 편향성, 군 내 2차 피해를 재재하고 막을 수 있는 절차나 제도 등에 대한 의견들이 활발히 오고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재판부 판단의 정당성에 대해 고민하고, 실질적으로 군대 내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김숙경 소장님께서 마지막으로 해주셨던 “군은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조직이기에 사회와 군이 같이 변화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요, 군 내 성차별 문화 해소와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군대 내 노력과 사회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해소하고 이를 답습하는 조직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저 역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가해자 B씨에 대한 파기환송심, 두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이 남아있는 만큼 한국성폭력상담소 역시 피해자 지원과 법적 대응에 힘쓸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이 후기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콘텐츠 기자단 틈의 은화 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