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안대응
지난 9월 22일 15:30분에 열린 공개재판(서울중앙지법 1-3형사부)에 참석하여 보고 왔습니다. 해당 사건이 오래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사건 개요가 잘 기억나지 않으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아 먼저 기사 일부를 참고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피해자분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파이낸셜 뉴스에서 수습기자 생활을 하였는데, 회식 장소에서 잦은 성추행을 경험하여 이를 페이스북에 공론화하였습니다. 그러자 가해자인 조아무개 부장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하였고, 피해자분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로 조 부장을 고소하게 됩니다.
조 부장은 1심에서 이미 유죄를 선고 받았으나 가해 사실을 부정하며 항소했는데요. 피해자의 동료가 증언으로 출석한 이번 2심에서 몇 가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 피해자가 해당 근무 기간 동안 증인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였냐는 질문에, “피해자가 공론화 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다고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동기들 사이에서 조 부장 옆에 남자 동기를 앉히는 방식으로 방어하자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 피고인 측 변호사는, 추행 장소로 언급된 주점에 대해 “추행했다면 다른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자리 배치가 아니냐”고 질문했다.
▶ 피고인은 추행이 있었다고 한 날 자신은 회식에 참석하지 않고 증인에게 카드를 맡겼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증인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대답했다.
▶ 증인은 당시 신입 교육을 담당했던 조 부장이 “피해자를 유독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앞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참석을 요구하며 회식을 자주 소집했고, 사건 발생 뒤 남성 동기들이 순번을 짜 피고인의 옆에 앉았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동료 기자들의 사실확인서와 메신저 캡쳐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 피고인 변호사는 회식에서 식사와 음주가 모두 이뤄졌는지 지속적으로 질문했다.
피고인은 이미 1심에서 유죄로 사회봉사와 벌금을 선고 받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재판 전략으로써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또, 최근 증인에 대한 위증죄 역고소가 성행해 증언이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요. 성범죄는 그 특성상 피해자의 심증이나 주변인의 추측이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피고인의 태도와 이러한 추세가 우려스러웠습니다.
형사 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 그에 대한 배상액 등은 민사사건으로 결정하는데, 생각보다 길어지는 재판 과정에 중도에 그만두는 피해자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서적 혼란과 피로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사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증거의 일종으로 다루어지며 사건에 개입할 여지가 부족하고, ‘피해자다움’에 입각해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증언하는 피해자를 위증으로 보는 편견도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피해자는 자신의 실명이 거론되어도 좋다고 말할 만큼 공적인 정의를 위해 해당 사건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재판 끝 무렵,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는 발언을 통해, 이미 언론계를 떠난 자신은 피고인에게 개인적인 감정으로 해당 사건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나라 언론계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지금까지 끌어온 것이라고 피력했습니다. 피해자의 말씀처럼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응당 조직의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해당 사건의 경우, 단합력을 위해 필요하다며 회식과 술자리를 강요한 조직문화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신입 교육을 담당했다는 조 부장의 권한을 견제할 제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을 테고요. 피고인은 피해자의 미투 이후 2018년 3월,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을 뿐 현재까지도 파이낸셜뉴스 소속입니다. 피해자가 용기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파이낸셜 뉴스를 비롯한 언론계와 우리 사회도 이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콘텐츠기자단 '틈'의 원영님이 작성하고, 회원홍보팀 산 활동가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