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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안대응

공론화가 진행 중인 개별사례의 구체적인 쟁점을 알리고 정의로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소개합니다.
다리 촬영 무죄? 법원의 몰성적(gender-blind) 판결과 황색 언론 유죄!
  • 2008-03-25
  • 3620



[논평] 짧은 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 촬영 행위가 무죄? 법원의 몰성적(gender-blind) 판결과 황색 언론은 유죄!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의 다리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행위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기사화 된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하루 동안 수십통의 전화를 받으며 ‘여성계’의 입장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흡사 ‘여성의 다리도 성적일 수 있다’라는 여성계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형국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명쾌하게 ‘몸의 부위별로 성적/성적이지 않음’의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타인의 신체 부위는 어디인가? 그것은 개인에 따라 백이면 백 모두 다를 것이다. 겨울옷을 껴입은 인물을 촬영하고도 그 사진을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가장 잘 팔리는 포르노 영상을 보면서도 소 닭 보듯 성적(性的)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성적 욕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누군가가 판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차이로 무시될 수 없는 사실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 대한 이중적 시선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다보면 미니스커트를 입고 애써 핸드백이나 지갑으로 자신의 엉덩이 부분을 가리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렇게 가릴 거면서 미니스커트는 왜 입어?’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계단에서 자기 뒤에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에게 팬티가 훤히 보이는걸 알면서 계단을 성큼성큼 두 칸씩 올라가는 여자가 있다면 ‘품행이 방정하지 못 한 여자’로 욕을 먹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미니스커트의 ‘매력’이 된다. 성적 긴장(‘섹시함’)과 헤픈 여자 사이의 긴장을 넘나들며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신을 ‘선망’하는 수준을 넘어 ‘그렇게 벗고 다니니까 성폭력을 당하는거야’라는 식의 성폭력 가해의 정당한 이유가 되거나, ‘포르노그라피에서 유통되기 위해 촬영되는 몸’이 될 때 그 ‘기분 좋음’은 공포이거나 불쾌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짧은치마 밑 다리’가 타인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부위가 아니라고 판결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짧은치마 밑 다리가 아니라, 팬티 속 부위라면 이것은 ‘타인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부위’인가? 인간 몸의 각 부위에 선험적으로 ‘성적 욕망’과 관련 있는/없는 의미가 쓰여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가 일어난 시공간, 행위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역학관계, 그 행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구조 등이 함께 얽혀 성적인 의미를 만들기도 하고, 만들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다는 것은 그 공간이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존재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목격한 신고인이 상당한 불쾌함을 느껴 신고를 하게 된 동력을 짐작해보자면, 그것은 ‘공공 장소에서 여성들에게 조심스러움과 불편함을 야기하는 저 행위를 중단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여기에 피해자가 있다면 이는 ‘자신이 찍힌 사실’도 모르는 그 여성이 아니라, 신고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성의 다리를 몰래 촬영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치마입고 다니면 불안하겠다. 몸 조심해야지’라는 위축된 몸과 마음을 갖게 되는 다수의 여성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이는 ‘내가 사용하는 지하철이라는 공적 공간이 불편해지도록 만들고 있는 저 사람과, 이 상황에 대한 분노’를 가진 문제제기자라고 부를만하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면, 이는 일상을 지하철에서 보내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인가!

이런 짜증나는 일들이 다반사인 지하철에서, 상당수의 여성들은 불쾌해도 그냥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 후 진술해야 하고,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바쁘게 목적지로 이동하는 와중에 당황해서, 귀찮아서, 타인의 치마 밑에 핸드폰 카메라를 갖다대는 한심한 인생이 불쌍해서 무시하고 지나가는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 역시 여성들의 보행권을 제한하는 가해자들을 ‘무시하고’만 있을 것인가? 오히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지하철에서의 ‘촬영 행위’로 인해 지하철에서 자신의 행동 범위를 제한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사회적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는가.

‘카메라등이용촬영’이 ‘죄’가 된 이유의 의미를 재사유해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성폭력특별법) 14조의 2항인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범죄 구성 요건은 ‘카메라, 기타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 판매 임대, 전시, 상영한 자’이다. 이는 1994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의 이후 개정 과정에서 신설된 조항이다. 이 조항이 신설된 이유는 무엇인가?

휴대 가능한 카메라 소지가 대중화되면서 이로 인해 불쾌한 일들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으로 상업적 이익을 보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가 친고죄인 반면,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비친고죄인 이유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범죄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그것이 판매․배포되면서 가져올 사회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카메라등을 이용한 촬영이 ‘개인적 장난’이나 ‘사적인 취미’가 아니라 공적으로 환기해야할 ‘사회적 이슈’임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고소권자가 없고, 피해자 진술이나 증거 확보가 어려운 비친고죄인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유/무죄 판단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성폭력 특별법’상 ‘성별을 고려한’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가 어느 부분인지 문구 그대로의 해석에만 매몰됨으로써 행위가 일어난 시공간, 그 속에 있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통해 읽혀져야 할 행위의 맥락과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선언한 성폭력특별법의 입법취지를 놓치고 만 것이다.

판례는 판사들의 머리에 축적된 지식만을 기반으로 하여서는 안 된다. 판례는 그 판결을 내리는 사회 통념이나 법의 공익적 목적, 그리고 더 넓게는 그 판례를 통해 갖게 되는 사회적 파장까지를 포함한다. 이번 법원의 판례는 ‘짧은 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 사진촬영해도 무죄’라는 식의 카피로 변신하여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황색 언론들은 너나할 것 없이 여성들의 다리를 클로즈업한 사진을 기사에 게시하는 등, 관음증적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들 언론은 이번 사건을 새로울 것 없는 ‘성전쟁’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역시 이들 언론이 ‘여성단체’에 요구하는 입장은 ‘여성의 다리는 언제나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함부로 찍는 것은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성보수주의 입장일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체 ‘부위’ 가 아니라 그 행위의 의미를 만드는 시공간과 그 공간에 속한 사람,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만드는 문화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신체를 카메라로 촬영한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했다면, 그리고 그 문제제기가 법제화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얻었다면, 그 문제는 공동체가 풀어야할 몫이다. 그리고 법원의 판례는 그 공동체 안의 논쟁을 풍부히 할 계기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법원이나 황색 언론은 여전히 ‘다리가 성적이다/아니다’를 작위적으로 판단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2008. 3. 25
(사)한국성폭력상담소



댓글(1)

  • Drauma
    2008-03-28

    정말 공감합니다. 기사들과 오가는 말들을 들으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글을 읽으며 가려운 부분을 긁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언제 법원과 기사가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될지. 법조인들, 기자들,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네요.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