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안대응
성폭력 피해자가 장애인인 경우, 10대인 경우, 친족관계에 있는 경우는 각각 현행법(성폭력특별법)에서 다른 성폭력 범죄보다 무겁게 처벌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일반 상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늘 언론보도를 통해 이 3가지 경우에 동시에 해당하는 피해사건이 법원에 호소되었다는 사실과 그 가해자 4명 전원에게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화가 치밀다 못해 말문이 막힐 노릇인데 "어려운 경제적 형편에도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워왔고,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일부 피고인들이 고령과 지병으로 수형 생활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실제로 우리 상담소에서 친족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가해자들이 이렇게 ‘피해자를 키워왔고’, ‘고령과 지병으로 수형 생활을 감내하기 어렵다’며 풀려나는 사태를 여러 번 목격하였다. 피해자를 양육하는 사람이 그 힘을 남용해서 피해자의 생존권을 좌지우지 하면서 성폭행까지도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친족성폭력이 더욱 심각한 범죄라는 것을 법원은 정말 모른다는 걸까? 가해자가 가진 힘을 남용하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그 힘의 크기만큼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고, 그 힘의 크기만큼 피해자를 협박하여 입막음할 수 있고, 그 힘의 크기만큼 피해자에게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른다는 걸까? 교사가 학생에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어른이 어린이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폭력행동의 핵심이 바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인데, 양육을 했으니, 지도를 했으니, 사랑을 베풀었으니, 도움을 주었으니 참작 사유가 된다면 결국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는 그 죄에 합당한 처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성폭력 범죄를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재판부는 양육의 수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이라는 권력을 남용하여 성폭력이 발생했고 7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야 했다.
가해자가 친인척인 경우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해자와의 공간분리가 급선무이다. 이 때문에 우리 상담소에서도 열림터(성폭력피해생존자를 위한 쉼터)를 부설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피해자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가해자를 피하기 위해 학교 전학, 연락 단절 등 별의별 수단을 다 강구해야만 하고, 가해자가 수감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 편히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평화도 가해자가 출감하게 되면 곧 다시금 위협받게 된다.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법원의 선고 이유를 들으면서, 결국 피해자를 다시 가해자의 손에 내맡기는 상황에 대해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 이런 무책임한 사회환경에 대해 무어라고 더 소리를 내질러야 하는 건지 참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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