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안대응
직장 내 성폭력에 13년 만에 내린 징계, 정직 1개월이 KBS의 최선인가?
13년 전 KBS 기자가 계약직 직원을 강제추행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사과 받지 못했고, 형사 고소를 하였다가 ‘직장’ 동료들의 만류로 취하했다. 피해자는 성폭력 말하기를 이어나갔고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SNS에 올렸지만, 가해자는 범행을 부정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2022년 2월 민사2심 선고를 통해 강제추행 피해와 가해자의 거짓됨을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이어서 2025년 1월, 명예훼손 형사 1심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가해자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이 모든 시간동안 KBS는 책임을 방기했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성폭력 말하기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성평등센터에 신고하면서 뒤늦게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대부분 징계시효가 지나 2차 피해 중 일부만을 인정 받을 수 있었다. KBS는 징계심의를 계속해서 미루었고, 절차 지연에 대한 피해자의 질의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피해자는 KBS의 답변을 받아내기 위해 또 다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긴 싸움의 끝에 지난 해 가을 ‘보완 절차가 진행 중이다’ 라는 텅 빈 답변을 받았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된 질의와 싸움을 이어갔다. 마침내 가해자의 정년퇴임 직전인 올해 2월, KBS는 가해자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정직 1개월이라는 징계 결정은 피해자의 오랜 투쟁이 이뤄낸 값진 결과이다. 피해자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부 고발과 법적 대응을 통해 정의를 외쳤다. KBS는 오랜 시간 이를 외면해 왔다. 이제라도 징계가 이루어진 것은 다행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긴 시간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피해생존자의 노력과 끈기에 존경을 표한다.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 전해져 다른 피해생존자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경미한 징계는 KBS가 여전히 성폭력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KBS는 2018년 국내 방송사 최초로 성평등센터를 개소하면서 의지를 피력했지만, 실제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는 오랜 시간 피해자를 외면하고 가해자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말을 일삼아 2차 피해를 지속했던 가해자에게 13년만에 내린 정직 1개월, 이것이 KBS의 최선인가? KBS가 진정으로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 방지를 하고자 한다면, 이 사건이 남긴 의의와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는 피해자 보호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조치를 다하고 가해자를 엄중이 징계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이자 언론사로서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KBS의 행보를 시민사회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2025년 2월 21일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