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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보짱] '전광석화'같았던 제명, 한나라당 우선순위가 틀렸다 (오마이뉴스 2010. 07. 21)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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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21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논란에 대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어제 윤리위에서 강 의원에 대해 최고 징계조치인 제명결정을 내린 것은 국민의 도덕적 요구에 부응하는 게 책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남소연/ 오마이뉴스


한나라당이 강용석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에도 ‘여자는 쥐뿔도 모른다’, ‘여자는 후보 얼굴만 보고 투표한다’ 같은 막말퍼레이드로 여성유권자들의 빈축을 산지 한 달만에 터진 것이다. 박계동, 최연희, 정몽준 등 한나라당이 성희롱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느냐’, ‘(이명박대통령이) 옆의 사모님(대통령 부인 김윤옥씨)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는 대통령까지 겨냥한 위험발언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막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참신하게까지 느껴진다. 게다가 강용석 의원을 제명처리한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대구 밤문화’ 발언으로 유명한 주성영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박근혜, 칭찬할 것이 ‘섹시한 허리’ 밖에 없었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강용석 의원의 화려한 과거 ‘어록’들이 속속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단연 그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발언은 박근혜의 ‘섹시한 허리’ 발언이다. 강용석은 2005년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에게 ‘섹시한 아치형 허리’에 찬사를 보내며, ‘날씬한 몸매에 애도 없는 처녀’라고 거듭 추켜세웠다.

 예순을 바라보는 당대표인 정치인에게 과연 찬사를 보낼 것이 ‘섹시한 허리’밖에 없었단 말인가? 과연 박근혜가 여성이 아닌 남성 정치인이였다 해도 당대표에게 이런 식의 막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정치인에게 해야 할 칭찬이라는 것은 그의 정치철학이나 비전이지, 그의 섹시한 몸매나 처녀라는 점이 아니다. 나로서는 강용석 의원이 칭찬이랍시고 이런 막말을 버젓이 칼럼에 쓰는데도 한나라당의 그 누구 하나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울 지경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나라당의 수준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보도되는 내용은 강용석 의원이 박근혜 의원뿐만 아니라 나경원 의원, 전현희 의원까지 거론하면서 여성 국회의원들의 외모를 비교하고 품평했다는 것이다. 한 국가를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의 자리에까지 올랐음에도, 남성 국회의원들은 그의 정치철학이나 비전이 아니라 단지 ‘몸매’에만 관심있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의 수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절망하게 되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은 위신을 챙길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즉각 사과하라 

  한나라당 윤리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보도된 지 9시간 만에 제명결정을 내렸다.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주성영 부위원장은 국회 브리핑에서 당의 위신을 훼손한 경우 징계하도록 한 윤리위 규정에 따라 강 의원에 대해 제명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때문이 아니라 ‘당의 위신을 훼손한 것’을 문제삼아 징계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이 성희롱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조야한 인식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간 한나라당의 ‘성희롱발언사’를 봤을 때, 이번 사건으로 새롭게 떨어질 당의 위신이라는 게 있었는가를 차치하더라도, 이 문제는 분명하게 한나라당의 ‘당의 위신’이 아니라 피해자인 ‘여대생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관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동석한 술자리에서 사회생활의 조언을 듣기는커녕,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느냐’ 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듣게 된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여대생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국회의원이라는 작자가 자신의 오랜 꿈인 아나운서를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도 모자라서, 면전에서 여성인 자신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을까?  


  ▲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성적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오마이뉴스

한나라당은 당의 위신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피해자에게 즉각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강용석 의원이 피해자를 찾아가서 합의를 종용하거나 사태를 무마하는 2차 피해를 주지 않도록, 피해자 보호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둘러 사태 봉합한다고, 성폭력 사건이 해결되나?

 

얼마 전 한나라당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약물요법(일명 화학적 거세법)을 통과시켰다.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운동단체에서는 화학적 거세에 대한 충분한 실효성 및 안전성이 검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생색내기식으로 입법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성폭력은 단지 ‘생물학적 본능’이나 ‘호르몬’의 문제만이 아니며 ‘성차별적인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장서서 가해자 처벌을 주장하며 화학적 거세법을 통과시킨 한나라당이 가장 많은 성희롱 전력을 가진 국회의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진상조사를 벌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28 재보선 결과를 의식하여 즉각적인 제명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과연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두고 무엇을 사과할 것인지, 무엇을 반성할 것인지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은 채, 서둘러 사태를 봉합한다고 해서 성폭력 사건이 무마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땅에 떨어진 당의 위신’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며 성차별적인 여성관’이다. 한나라당이 근본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의 ‘성희롱 악몽’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