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라틴아메리카 공무원들과
반성폭력 법·정책·운동의 경험을 나누다
11월 19일 오후, 상담소에는 아주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멀리 과테멜라, 도미니카공화국,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등 라틴아메리카 공무원 14분이 코이카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상담소를 방문하신 거지요.
지하 1층의 이안젤라홀에서 모여 인사를 나누고, “한국의 반성폭력 법·정책·운동”을 주제로 한 이미경 상담소장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의는 스페인어 통역분이 수고를 해주셔 소통에 문제가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강의에서는 1990년대 한국 여성운동에서 성폭력상담소를 만들고, 성폭력특별법 제정(1994)을 비롯한 관련 법.정책마련의 역사와 과정, 그리고 우리 상담소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강의 중간중간에 참여하신 분들의 질문들이 쏟아져 자연스럽게 각 이슈별로 토론을 했습니다.
먼저, 대부분의 국가들이 반성폭력 법들은 마련한 상태이지만, 수사와 재판과정에서의 2차 피해 문제가 심각함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여성부 자체에 여성폭력에 대처하는 핫라인을 설치했고, 엘살바도르에서는 여성단체가 활발하게 캠페인을 벌여 2012년에 여성폭력방지법이 마련되었으나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아직 법이 여성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온두라스도 법은 있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고 하고,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수도에만 3개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2012년부터 도입하고 있는 피해자 국선 변호인 제도는 도미니카공화국은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고, 여성부에 등록된 변호사만해도 40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심리학자, 사회학자, 변호사 등 전문인력이 함께 노력하고 있는데 관련한 법규정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시각이 달라지고 있고 여성청 입장에서 협조를 하고 있답니다.
정부와 민간단체와의 거버넌스(governance) 문제도 함께 이야기했는데 엘살바도르는 최근 좌파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NGO단체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마침 오늘 참가자 중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서 오신 두 분의 여성부장관들은 특히 거버넌스에 큰 관심을 표시하고 한국의 경우를 궁금해 하셨습니다. 우리 상담소에서는 정부가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한다는 이유로 NGO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규제한다면 운동단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성폭력피해자의 인공임신중절 문제도 주요한 이슈로 함께 논의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형법에는 임신중절이 불법이나 모자보건법에 의해 시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간임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오신 공무원은 낙태는 불법이며 최근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하게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과테말라 역시 낙태는 불법이지만 성폭력의 경우에는 여성건강 정책의 일환으로 시술을 허용하고 있답니다. 온두라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는 불법이며 현재 형법에서 일부 낙태허용 문제를 검토하는 중이랍니다. 코스타리카도 낙태는 불법이어서 아주 특별한 경우 상담을 통해 진행을 하지만 주로 개인병원에서 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답니다. 엘살바도르 역시 낙태는 불법이며 특별한 경우에는 허용하도록 작업 중이지만 지금은 불법적으로 시술을 받다가 적발될 경우 감옥에 간다는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결국, 성폭력피해로 인한 낙태는 여성들에게 일반적인 낙태권이 허용되어야만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 이슈에 대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이어서 최근 우리나라의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연예기획사대표의 청소녀 성폭력사건에 모두가 공분하며 이후 대응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340여개 단체들이 모여 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활동할 계획이라는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형사합의가 가해자 처벌의 약화로 이어지는 문제 등을 논의하느라 약속한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강의와 토론을 아쉽게 마무리를 하고, 사무실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이 다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참여자 모두 각자 짧지만 재치 있게 자신을 소개하고 이어서 안선민 활동가의 소개로 각 층별 구경을 하였습니다. 연구소와 옥상정원, 그리고 1층 다목적실 등을 돌며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1층에 새겨진, 벽돌기금을 내주신 분들의 명단을 보고 많은 분이 함께 새 상담소를 만들었다는 점에 감동했다고들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우리 상담소의 활동을 응원하고 기대한다는 말씀들도 해주셨습니다.
이번 라틴아메리카 공무원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여성폭력에 대응하는 데 있어 세계는 하나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국의 법과 정책, 그리고 여성운동의 철학과 경험을 나누면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 이미경 (본 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