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 홍콩 2017 Un-conference 참가기 > 2017. 5. 6-7.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유쾌한 모임
“2017 홍콩 Un-conference”에 다녀와서
< Un-conference 포스터 >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게 한 기획과 진행
지난 주말(5월 6-7일)에 홍콩의 여성네트워크(Network for Women in Politics)에서 주최한 “반(反) 컨퍼런스(Un-conference)”에 다녀왔다. 회의 시작 30분 전부터 홍콩 창의력대학에는 홍콩, 대만, 중국, 마카오, 한국에서 온 130여명의 활동가, 학생, 시민들로 북적였다. 휠체어를 탄 네 분의 장애인을 비롯해 겉보기에도 열혈 운동가 모습의 여성단체 회원들, 학생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 것부터 이 회의에 기대를 더하게 했다. 회의의 공식 언어는 광둥어(cantonese)였고, 부분적으로 만다린어(Mandarin)와 영어 통역이 제공되었다.
주최 측에서는 기존의 가치, 체제에 반대하며 이 모임을 기획하였다면서 틀에 박힌 회의를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자는 개회사를 했다. 이어진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는 생일이 몇월인지? 자신의 속한 단체를 떠나본 적이 있거나 떠나고 싶은 적이 있었는지? 중국의 시진핑을 좋아하는지? 등의 질문에 예, 아니오로 답하며 매번 다른 그룹이 되어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역사적으로 누가 가장 평등권 향상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써서 연대기별로 붙이라고 주문한 후 몇 명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성평등, 남성의 육아휴직, 하우징, 섹슈얼리티 등의 주제가 봇물처럼 나왔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인간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우리는 슬로건이나 조직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변화를 위해 누구나 공헌할 수 있으며,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짧게 잘린 빨간색 끈을 모아 서로 잇는 퍼포먼스로 이 회의는 시작되었다.
< 서로의 '연결'을 다짐하며 짧은 끝들을 이어가는 포퍼먼스 >
재미있는 형식에서 나오는 의미있는 주제들
이 회의에서는 패널들의 발표와 함께 두 개의 특별한 세션이 진행되었는데 <휴먼 라이브러리>와 <긴급세션>이였다. 휴먼 라이브러리는 살아있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세 팀으로 나뉘어져 그룹토론을 하며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배웠다. 특히 중국에서 온 20대 후반의 활동가는 중국에서 성평등 이슈가 겉으로는 잘 되는 것 같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고, 타이완, 홍콩, 마카오, 한국도 마찬가지라는 현실을 나눴다. 왜 운동이 안보이는가? 왜 젠더관점이 점핑되는가? 가 모두의 화두였다. 그리고 성평등 이슈는 결코 독자적으로 논의할 수 없고 빈곤, 노동, 사회복지, 성소수자 권리 등 다양한 이슈들과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진 <긴급세션>에서는 지역운동,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세대간 갈등(운동의 지속가능성), 성소수자 권리 문제를 4명의 긴급 환자로 설정하여 문제를 제기한 후, 참여자들은 각자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서 1시간동안 조별 토론을 하고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만들어가는 이번 회의는 언어소통은 다소 어려웠지만 열정적인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신나고 진지했던 조별 토론 >
“여성운동” 대 “젠더정의 운동”의 개념논쟁
이번 Un-conference에서는 20~30명의 남성들이 함께했다. 그들이 어떤 계기로 참석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쉬는 시간에 Law Kwun Kit이라는 남성분과 짧은 인터뷰를 했다. 그는 홍콩의 대학에서 문화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은 대만으로 가서 젠더스터디를 공부를 계속하고자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전에 “Midnight blue”라는 남성 섹스워커 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한적이 있다는 그는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 뿐만 아니라, 군대내 성소수자 처벌 문제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 젠더스터디를 공부하고 싶다는 Law Kwun Kit - 이 분의 동의를 얻어 사진 올립니다^^ >
이렇듯 남성들의 참여가 높아서 인지 조별토론 시간에 “여성운동”과 “젠더정의 운동”의 개념 논쟁이 제기되었다. “여성운동”이라는 용어를 쓰는 운동가들은 옛 사람이라며 이 단어로 세대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여성운동이 우리 남성들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할 것이라며 성평등운동, 또는 젠더정의운동 등의 용어로 바꿔서 부르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운동, 페미니스트 운동, 젠더정의 운동은 같은 내용이며, 이것은 절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이슈를 다루지만, 남성에게도 관심이 있으며, 여성운동은 남성과 달리 여성이 제2의 존재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요즘은 여성과 남성이 말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매우 비대칭적임을 지적하며 아직은 ‘여성’이란 용어가 유용하다는 것이다. 관련해 팽팽한 논쟁이 이어졌고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우니 추후 더 논의하는 것으로 이야기 되었다.
각 국가에서 운동단체가 당면한 이슈, 이슈들
중국에서는 4명의 활동가들이 발표를 했는데, 여성운동이 매우 주춤해져가고 있음을 전했다. 그 이유는 바로 현 정부가 전반적으로 운동에 대한 탄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0년~9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높은 교육기회 등으로 여성들이 큰 힘을 가질 수 있었고, 법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했는데 실질적인 성평등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최근 30세 이전의 젊은 여성들은 광둥, 베이징 등에서 새로운 세대로 젠더운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모든 문제들이 성차별과 관련이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소셜미디어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슬림이나 아라비안 여성들의 차별문제 등에 대한 말하기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관해 국제적인 조직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발표에 대해서는 인터넷 운동과 법의 관계, 중국에서는 온라인 활동을 맘대로 못하는가?, 운동단체에서 대학이나 페미니스트 학자들과 어떤 관련 맺는가?, 세대간의 차이는 어떤가? 등등 10여명의 폭풍질문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현재 활동가들이 구속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성노동자 권익운동도 소리를 내고 있고, 성소수자 문제도 점차 부상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사회변화 운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들이 공개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보다는 지하방법을 하는 활동을 주로 하는데도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어 운동에 어려움 겪고 있음을 전했다. 특히 중국에서 인권변호사가 구속당하면 그제서야 부인은 남편이 밖에서 무슨일을 하는지 알게된다고 하며, 그가 심한 고문 등 혹독한 처벌을 받고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그로인한 후유증으로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전했다.
< 중국 참여자의 발표 >
타이완에서 온 환경운동가는 2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단체활동을 주되게 소개하였다. 타이완의 환경은 태풍의 영향으로 채소 등 식품이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고, 워터레벨이 높아지고, 기온상승으로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고 이것이 다시 기온상승으로 악순환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원인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감염되는 되는 현상을 짚었다. 이는 타이완만의 현상이 아님을 참석자 우리 모두는 알 수 있었다. 특히 발제자의 “우리는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쓰레기 생산자”라는 발언은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했다. 현재 대만에서는 GMO줄이기, 도시농경으로 사무실의 온도 낮추기, 마을단위로 에너지 소비 줄이기운동과 교육, 반핵운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린파워(green power)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 분의 타이완 발표자는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활동을 하다가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재는 정당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분으로 참여자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그는 타이완에서는 이미 성침해방지법(1997) 가정폭력방지법(1998), 성희롱방치법(2005)등 3대 폭력방지법이 제정되었고, 2014년 이후 국회의원의 여성비율이 30%를 넘어섰다고 했다. 대부분 전문적인 법규는 마련되어 있어 아시아 사회에서는 법규에 대한 제도는 괜찮은 편이지만, 사회적 인식,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함을 지적하며 동성결혼 인정 등의 새로운 법제정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만 내에서 동성결혼 찬성비율이 중년은 44%, 젊은 세대는 75%에 달한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에 성소수자 권리가 포함되는 것에 극렬한 반대를 하는 학부모모임 등이 있다고 한다.
마카오 발표자는 10년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움직임을 소개하고 법제정이 거의 임박해 있음을 공유했다. 마카오에서 매우 영양력 있는 신문인 마카오데일리의 2016. 10.5일자에 법률제정 지원하는 기사가 났고, 이제야 사회적으로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고 한다. 법제정을 위해 국제적 연대로 로비를 펼치고 있는데, 나이 드신 수녀님들이 UN앞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가정폭력방지법은 젠더문제와 깊이 연결되어있지 못함을 지적했다. 포루투칼의 식미지였던 마카오는 영국 식민지 역사를 갖고 있는 홍콩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 형태이다. 중국, 마카오, 타이완, 홍콩은 거의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홍콩에서는 이주여성의 권리운동 발표가 있었는데, 결혼 이주 시 7년을 홍콩에 거주를 해야 영주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정폭력이 일어나더라도 영주권 때문에 참는 것을 선택한다고 했다. 피해여성의 원 가정에서도 맞는 것을 참으라고 하는 현실이며, 쉼터가 있지만 한 엄마는 자녀를 여럿 데리고 올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일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큰 과제라는 지적은 우리나라의 이주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반성폭력운동이 지난 30여년간 어떤 철학을 갖고 활동해왔는지를 소개했다. 특히 피해생존자의 말하기(speak out)와 자기방어훈련, 집단상담 등의 역량강화(empowerment),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 및 정책제언활동, 언론홍보활동, 성문화를 바꿔가는 캠페인 등의 다양한 활동과 피해자화, 2차 피해, 거버넌스, 예방교육 등 직면한 과제들을 나눴다. 참가자들은 특히 어떻게 피해자들이 용기내어 대중 앞에서 말 할 수 있었는지에 관심이 많았고, ‘생존자말하기 대회’의 준비과정 자료 공유를 요청받았다. 한국발표 시간에는 교민인 황롯데님의 한국어.광둥어 순차통역을 해주셔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었다.
< 이틀동안 각자의 활동을 공유하고 함께 열띤 논의를 한 참여자들 >
새로운 상상력과 열정으로
그동안 각자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을 치열하게들 해왔지만 ‘과연 우리 사회는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는 긍정적 답변보다는 산적한 문제들을 더 보게 된다는 것이 참여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특히 젊은 활동가들은 빠른시간에 성과를 얻기를 바라고 있지만, 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세대별로 더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작은 현상에도 관심이 필요하고 각 국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다양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각자에 맞는 운동을 해 갈 것인가는 과제로 남겼다. 그리고 현재 각국에서 겪고 있는 젠더정의에 반하는 현상들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으로 좀 더 많은 토론을 끌어내고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며 해결해가자는 결의를 다졌다.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에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존재하는 간접적인 차별, 불평등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 눈앞의 것만 관심갖지말고 다른 것도 관심가져야함을 강조했다. 특히 젠더정의를 위해서는 성평등 문제 뿐만아니라 성소수자의 권리에 관심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 마무리로, 현대사회는 정보들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중생대의 백악기와 쥐라기에 번성했던 공룡을 소환하여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공룡는 포퍼먼스’가 있었다. 공룡은 엣날부터 살아왔던 생명체인데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다시 돌아오게 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믿었던 가부장제가 사실 인류 역사 중 잘못 된 한 과정이임을 상기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가자는 이야기로 이틀간의 여정을 마쳤다. 주최 측의 열정과 다양한 아이디어로 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와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회의였다. 초대해주신 주최측과 함께 참여한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