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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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과 여성의 시민권>> - 2002. 가을
<<성폭력과 여성의 시민권>> - 나눔터 42호(2002년 가을)
- 박정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
유사이래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공격이 있어왔지만, 여성들이 그것을 성폭력이라 이름 붙이고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에 불과하다. 이러한 실천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를 혐오하거나,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숨죽여 살거나,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심지어 죽음을 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서구에서 대중적인 여성운동이 부활하자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고통이 더 이상 개인의 잘못이나 불행이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들이 공유하는 경험임을 알게 되었다.
성폭력의 문제 설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였다. 가장 내밀한 것, 가장 사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폭력이 남성 지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그러한 지배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성폭력이 여성들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남성들이 포진해있는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이런 점에서 성폭력은 여성들이 투표권이나 임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등 형식적인 시민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근대사회의 평등하고 자율적인 구성원이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기제라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성폭력이 제기하는 여성의 시민권 문제에 주목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 운동을 고찰하였다. 100인위는 성폭력이 그것의 직접적인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의 "집단적인 생존권"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성폭력이 여성 활동가들이 '운동사회'의 적극적이고 평등한 구성원이 되는데 있어 중대한 장애일 뿐 아니라, 여성들을 '운동사회'로부터 배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인위는 이러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폭력의 가해자를 실명 공개하였다.
이러한 100인위의 활동은 80년대 이래로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인 정당성을 인정받아온 '운동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 '피해자의 관점'을 성폭력 판단의 일차적인 기준으로 제시했다는 점, '가해자 실명 공개'라는 초법적인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사회적인 관심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00인위가 구사하는 개념과 전술은 100인위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90년대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100인위의 태동 과정과 운동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90년대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여성단체들의 반성폭력 운동의 핵심은 법 제정 운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성단체들은 성폭력을 '정조에 대한 죄'가 아니라 여성의 신체와 인격에 대한 범죄, 곧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죄'로 정의하고 이를 법에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법체계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직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성희롱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운동을 개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 성폭력특별법, 남녀차별금지법 등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여성단체의 핵심적인 정의가 누락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판단 가능한지는 여전히 논쟁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여성단체의 반성폭력 운동에 힘입어 사회 전반에 성폭력의 문제 의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대학의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단체의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 위에서 이를 더욱 급진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일 뿐 아니라 여학생들의 포괄적인 시민권의 침해로 확장되었고, 성폭력 판단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관점이 가장 일차적인 준거로 대두되었다. 또한 성폭력 해결의 주요한 방식으로 가해자 실명 공개 사과가 채택되었는데, 이것은 대학 내 반성폭력 활동가들이 성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문제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폭력의 해결에 있어서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은 대학의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으로 이어진다.
'운동사회'는 직장과 학교에 이어 90년대 반성폭력 운동이 뒤늦게 도달한 곳이다. 가장 진보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여겨져 온 '운동사회'에서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사회적인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100인위는 '운동사회' 역시 성폭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운 공간이 아닐 뿐 아니라, 진보 진영의 단결 이데올로기와 지배 집단과의 도덕성 경쟁이 오히려 성폭력의 문제 제기를 가로막아왔다고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침묵하거나 '운동사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90년대 중반부터 여성학자와 여성 활동가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한 사회운동의 성맹성(sex-blindness)과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의 연속선 위에 서 있다.
100인위는 '운동사회'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의 개념과 전술을 활용하였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해자 실명 공개'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100인위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 성폭력의 개념과 기준은 한국 사회에서 법적, 제도적인 언어로 확고하게 정의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100인위가 가해자의 명단을 공개한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수많은 논점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100인위의 급진적인 성폭력 개념과 기준이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100인위 운동은 90년대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를 이어받고 있음과 동시에 그것의 한계에 의해 제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운동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여성의 온전한 시민권을 쟁취하고자 한 100인위의 의도는 성폭력의 개념과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으로 굴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인위 게시판은 현재 한국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다양한 담론의 경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으로서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게시판 논쟁 중에서 성폭력의 개념과 기준이 핵심적인 쟁점이라고 파악하고, 이를 중심으로 논쟁을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보이는 세 가지 담론을 추출하였는데, 담론의 역사성과 담론의 생산 주체를 고려하여 각각을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 성적 자유주의 담론, 여성주의 담론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담론이 제시하는 성폭력에 대한 관점과 성폭력 기준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 주체에 대해 서로 상이한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몇몇 가해자들과 가해자 소속 집단을 중심으로 전개된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은, 성폭력 문제의 제기를 '운동사회'를 정치적으로 음해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비판은 '운동사회' 전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되고, 가해자 개인은 '운동사회'와 동일시된다. 이에 비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은 '운동사회'의 외부에서 '운동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러한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은 피해 여성과 100인위를 정신적으로 취약한 존재이거나 지배 집단에 이용되는 존재, 곧 "프락치"라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은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을 '운동사회'의 평등한 구성원, 곧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젊은 남성 성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성적 자유주의 담론은, 현실의 권력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원자적이고 고립적인 개인을 상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자유 중에서 특히 성적인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은 동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성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남성만을 '운동사회'의 완전한 성원으로 인정하는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성적 자유주의 담론이 상정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은 사실은 남성의 경험과 이해에 입각해 있다. 이 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모든 개인들이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모두가 똑같은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별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성폭력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쾌락의 형태가 동일하지는 않다. 특히 성별적인 사회화의 경험이 다른 여성과 남성의 성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확연하게 다르다. 따라서 남성에게는 '자연스러운' 성적 욕망과 표현이라고 이해되는 것들이 여성에게는 폭력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 자유주의 담론은 성적인 차이와 권력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남성적 욕망을 수용하고 재생산하는 여성들만을 자유로운 '개인'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보수 소녀"나 "금치산자"로 비난한다. 이처럼 성적 자유주의 담론은 형식적으로는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동등하다고 가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의 성별 권력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을 근대적인 '개인'에 미달하는 존재로 여긴다. 따라서 100인위와 피해 여성은 근대적 시민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90년대 반성폭력 운동에 영향을 받은 '운동사회' 여성 활동가와 일부 남성 활동가 그리고 여성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한 여성주의 담론은 성폭력을 성별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여성들이 '운동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이 되는데 있어서 큰 장애가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 활동가들이 '운동사회'의 정당한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을 '운동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 지배 집단의 "프락치"로 이해하는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과 대조적이다.
여성주의 담론은 그러나, 여성이 '운동사회'의 시민권을 얻는 것은 단지 '남성과 똑같은' 존재로 인정되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폭력은 성별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자 남성과 '다른' 경험이므로, 이러한 여성의 경험이 말해지고 존중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여성을 고의적으로 침묵시키는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이 위력을 떨치는 한, '운동사회'에서 여성이 평등한 구성원이 되는 것은 요원하다. 또한 남성적인 합리성과 쾌락을 일방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여성의 경험과 성적 차이를 부정하는 성적 자유주의 담론의 "동일성의 정치" 역시 여성의 시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 여성은 남성이 모델이 된 '개인'에 미달하는 존재, 애매하고 모순적인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담론이 여성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성폭력 판단에 있어서 피해자의 관점, 곧 여성의 관점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성주의 담론은 성폭력을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이고 여성이 열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러한 입장이 성적 자유주의 담론이 주장하듯이 여성의 취약함을 본질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성별 권력 관계를 지적하는 것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생래적으로 열등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100인위 게시판의 '나의 경험 시리즈'가 보여주듯이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여성에 대한 억압을 발견하고, 이에 대항함으로써 공동체에서 평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피해자화(victimize)함으로써 사회적인 보호를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정치학이다.
따라서 100인위의 반성폭력 운동은 한 편으로는 성폭력을 해결함으로써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고자하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100인위의 일차적인 비판의 대상이 여성을 '운동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 사회운동 담론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된 100인위 게시판 논쟁은 여성이 진정한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남성적 개인 모델에 편입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주의적 개인 모델은 남성과 똑같은 존재만을 근대적인 '개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성적 자유주의 담론과 여성주의 담론이 대립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100인위 운동과 이후 전개된 게시판 논쟁은 여성이 근대사회의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관점과 경험이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100인위 운동과 게시판 논쟁은 시민권이 여성의 '다른' 경험에 입각해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쟁점을 던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논문-성폭력과 여성의 시민권: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 사례 분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논문, 2002. -을 토대로 쓰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