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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여성폭력 추방정책 수립과정의 문제점-2002. 겨울
  • 2005-09-16
  • 4050

여성폭력 추방정책 수립과정의 문제점 : 성폭력 추방정책을 중심으로

이미경(본 상담소 소장)

* 이 글은 "긴급토론회-여성폭력추방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에 실린 발제문입니다.
* 내용중 <표>는 첨부파일 참조.

1. 문제 제기

우리나라 여성폭력 추방정책은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보이지 않던 문제였던 '성폭력', '가정폭력'을 사회문제로 드러내어 '이름(naming)'을 주고, 피해자 상담과 지원, 일반인들의 인식전환을 위한 교육 등 여성폭력추방운동을 주도해 온 여성단체들에 의해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출발을 하였다. 그 이전에는 성폭력은 형법에서 "정조에 관한 죄"로 가해자 처벌을 규정하는 정도였고, 가정폭력은 우리나라 법과 제도 어디에도 그 개념조차 없었다. 1994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에관한법(이하 성폭력특별법)」과, 1997년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폭력을 여성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의 침해로 인식하고 이를 추방해야 한다는 UN을 비롯한 세계 각 국의 영향과 압력을 받기도 하였다. 법이 제정된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여성폭력추방 정책을 시행하여 오다가, 2001년 여성정책을 기획·종합하는 별도의 행정부처로 출범한 여성부에 그 업무가 이관되었다.
여성부에서는 '여성폭력방지 종합대책'(2001)을 마련하였고,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및 보호시설의 기능·역할 강화방안'(2002)을 구상하는 등 여성폭력 추방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성부의 여성폭력 추방을 위한 정책이 실제로 성폭력을 예방하여 여성들에게 안전한 삶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적합한지를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 글은 실제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정부의 여성폭력추방정책을 평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언 하고자 마련되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광범위한 여성폭력 추방정책 중 여성부의 성폭력 관련 정책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하였다. 또한 정책 전반에 관한 평가가 아니라 정책의 수립과정의 문제점만을 한정하여 살펴보았다. 분석의 틀로는 한국여성개발원(2000)에서 제시한 여성정책 평가틀을 참고로 하여 약간 수정해서 사용하였다. 이러한 평가틀을 이용한 것은 "여성정책의 실행을 지속적,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여성정책의 평가모형을 개발하여 평가기준, 평가지표, 평가척도를 구성해서 평가해야 한다(한국여성개발원, 2000:5)"는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주요 분석자료는 '여성부 권익증진 사업안내(2002)'와, 여성부 홈페이지 자료, 각종 회의와 세미나 자료, 간담회 회의록 등이다.

이 글은 우리나라 성폭력 추방정책의 수립과정에 관한 시론적 평가자료이다. 분석자료도 연구자가 입수할 수 있는 자료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내용이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 앞으로 현장의 경험과 이론적 자원들이 축적되고 좀 더 체계적인 정책평가가 이루어져, 여성폭력추방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실제적인 도움과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물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2. 성폭력 추방정책 수립과정의 문제점

(1) 정책 목표의 남녀평등 원칙 반영여부

① 정책 목표에 "폭력 없는 양성평등사회 실현"을 명시

여성부(2002-a:2)가 밝히고 있는 여성폭력 추방정책의 목표는 "폭력없는 양성평등사회 실현"이다. 구체적으로 남녀가 화합하는 평등사회 실현과 여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 강화를 표방하고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예방 및 근절을 위해 여성폭력 지원서비스 확충과 여성폭력지원서비스 연계체계강화, 여성폭력실무자 대응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폭력 추방정책은 정부의 제2차 여성정책기본계획의 10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서 우리나라 여성정책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정책은 "여성의 기본적인 인권과 남녀동권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현 제도를 비판적으로 분석, 조명하면서 성차이가 차별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는 기준과 대안적 가치체계를 법, 제도, 정치과정에서 실현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진 정책"이다(장필화, 1990:1). 즉, 첫째, 여성의 인권과 남녀평등을 기본적인 가치로 지향하는 정책이고 둘째, 현존하는 규범과 제도들이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의 실현을 억제하도록 구조화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며 셋째, 여성문제를 개인적, 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집합적 개입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여성폭력 추방정책이 이러한 여성정책의 기본방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정책평가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본다.

여성부의 여성폭력 추방정책은 목표에서 양성평등사회 실현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녀평등의 원칙을 반영했다고 보여진다. 또한 "보건복지부에서는 가정폭력, 성폭력 문제에 대해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둔 시책을 펼쳐왔으나, 여성부로 이관된 후에는 가정폭력·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이자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뿐만 아니라 사전예방을 위한 정책 또한 적극적으로 개발·추진(여성부, 한국인구보건연구원, 2002-b:98-99)"하고자 하는 의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② 성폭력의 개념을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로 보는 시각 결여

그러나 실제 정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폭력없는 양성평등사회'라는 정책목표에 상충되는 성폭력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정책의 목적과 내용, 방향설정에 가장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성폭력의 개념은 여성부가 제시하고 있는 정책 목표를 실행하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과 정책에서 공식적으로 성폭력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성폭력 특별법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서는 성폭력을 따로 개념정의하지는 않은 채, 기존의 각 법안에서 해당하는 죄를 열거하며 이를 성폭력범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법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구체적인 범죄행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성폭력의 개념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는 좀 더 폭 넓은 차원에서의 접근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즉, 현행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의 개념은 아직도 여성의 정조보호의 측면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비판이 대상이 되었던 형법 제32장의 제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1995년 형법 개정시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칭이 되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정조를 대신하는 어떠한 보호 법익도 제시하지 않은 채 세부 항목의 편의적 조합으로 장 제목을 삼는 식의 법 개정에 그치고 있다(신상숙,2001:22). 왜냐하면 아직도 피해여성들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이전 성경험 유무, 직업 등에 대해 진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지침에는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해 이러한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지만,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실제 받고 있고, 그 곤혹스러움이 두 번 세 번 강간당하는 듯 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 안에서 성폭력은 한 남성이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하게 될 여성의 정조를 침해하는 행위, 즉 남성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보는 남성 중심적 관점이 반영되고 있다. 따라서 피해를 당하고도 피해자 스스로가 이러한 순결 이데올로기 속에서 숨은 피해자가 된다. 그 중에 용기를 내어 고소를 결심한 극소수의 피해자들마저 경찰과 검찰, 재판부에서 제2, 제3의 피해를 당하는 현실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의 법과 사회적 인식이 성폭력을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로 보기보다는 순결상실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의 기조가 되는 개념의 규정에는 좀 더 비중있는 철학적인 고민과 합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사회에서 성폭력을 성관계가 아닌 폭력으로, 하나의 범죄행위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매우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 앞선 개념을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즉, 이제야 겨우 폭력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여성의 성적 권리 차원에서의 논의를 전개해 가는 것은 오히려 혼란과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염려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성폭력의 개념부터 새롭게 규정하는 논의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부는 정부조직이므로 기존 법에서 정하는 개념을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성정책이 양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목표를 갖고 있다면, 문제가 되는 성폭력의 개념을 바꿔가는데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한다.

(2) 정책형성의 적절성

정책 형성의 적절성은 이 정책이 성폭력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누가, 왜 문제를 제기하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정책목표 설정을 정확하게 하였는지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한국여성개발원, 2000:127). 1990년대에는 관련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마련하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현재의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지난 10여간 성폭력 추방정책이 시행되면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과연 성폭력 범죄는 줄어들었는지를 평가하고, 새로운 문제점이 무엇인지 등이 분석된 기반에서 세워진 정책인지를 봐야 할 것이다.

① 현황 파악을 위한 기초통계, 조사연구의 부족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현황 파악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성폭력이 한 해에 몇 건이나 발생하는지도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고소율에 대해서는 2.2%~6.1%로 추산하는 연구(한국형사정책연구원, 1990, 1998)가 있지만, 전국적 규모로 조사연구 한 자료가 아닐 뿐만 아니라 5년 전의 연구이다. 그리고 이러한 낮은 신고율의 요인으로 지적되는 성폭력피해자들이 수사·재판과정에서 겪는 2차 피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고소취하율이나 그 요인, 그리고 불기소 요인 등의 수사·재판과정의 중요한 통계들도 없다. 단지 매년 경찰에 신고되는 건수나 기소율 정도만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법적으로 신고조차 못하는 대다수 피해자들이 겪는 문제들이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력가해자들의 무고나 명예훼손 역고소 문제에도 성폭력 추방정책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왜 '운동사회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가 조직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안에서 피해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등이 현행 성폭력 추방정책에는 전혀 반영이 안되고 있다. 여성발전기본법(제13조)에도 여성관련문제에 관한 기초조사 및 여론조사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효율적인 정책마련을 위해서는 이러한 기초조사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②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정책의 부족 : 여성부가 포괄적인 청사진 마련해야

성폭력을 추방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지원은 기본적인 것이고,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행 여성부의 성폭력 추방정책은 성폭력피해상담소와 피해자보호시설, 그리고 여성위기전화 1366 등 피해자 지원에 치우쳐있다. 그러나 성폭력특별법 제3조에서 ①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성폭력범죄를 예방하고 그 피해자를 보호하며 유해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여야 할 책무와, ②청소년을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하여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및 성폭력예방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사회 문화적으로 좀 더 광범위한 접근이 요구된다. 현재 학교내의 성교육과 성희롱 예방교육은 교육부에서 하고있고 직장내 성희롱 문제는 노동부와 여성부가, 가해자의 처벌은 법무부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본 정책에서는 직장내 성희롱 관련 정책, 대학내 성폭력예방 관련 정책은 제외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나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에서 규정하는 직장내 성희롱 관련법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성폭력의 한 범주이다. 이 두 법안은 성폭력특별법안에 속해있지 않고, 독립된 법안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여성부의 여성폭력 추방정책에는 성희롱은 다루지 않고 있다. 여성부내에서도 성폭력 관련정책은 권익증진국에서, 성희롱은 차별개선국에서 각기 맡고 있다. 이처럼 현행 성폭력 추방정책은 성폭력의 예방과 대처를 총괄하여 전체의 틀 안에서 문제를 점검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앞으로 여성부에서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전반적인 청사진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2002. 11.9) 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에 국무총리 소속하에 여성정책조정회의를 두게 되어있다. 신설되는 여성정책조정회의는 국무총리가 의장을, 각 부처 장관이 위원을 맡아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여성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하도록 되어있다. 여기에 여성폭력 분과를 마련하여 성폭력 관련 대책을 교육부, 법무부, 문화부, 청소년보호위원회, 경찰청 등 각 부처간에 상호협조 관계에서 기획하고 수행해가야 하리라고 본다. 특히 모든 중앙부처에 1~3급 상당의 '여성정책책임관'을 두고 소관 정책에 대한 '성인지적 사전분석'을 하게 되어있으므로 성폭력 추방정책에도 새로운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3) 정책 세부목표의 구체성

여성폭력 추방정책의 "폭력없는 양성평등사회 실현"이라는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정부가 어떠한 구체적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가를 보면 정부의 실행의지를 알 수 있다. 여성부의 권익증진사업안내(2002)를 보면 주요사업 15개 항목 중 성폭력 추방정책은 여성긴급전화 1366운영, 지역협의체 구성·운영, 긴급피난처 지정·운영, 성폭력상담소 운영,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운영, 성폭력피해자 치료보호, 여성폭력긴급의료지원센터 위촉·운영,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관련시설 직무능력향상교육, 여성주간 운영 등 9개 항목에 연관되어있다.

① 세부목표의 장·단기 계획, 월별, 분기별 실행계획 부족

성폭력 추방정책으로 명시된 세부 사업들은 연도별로 세부목표가 계량화되어 있거나, 장·단기 계획의 수립이 미흡하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어 2001년에 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을 중심으로 성폭력피해자 의료지원체계개선추진단(여성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민간전문가, 민간단체대표 등)을 구성하여 새롭게 만든 "여성폭력긴급의료지원센터"의 경우, 2001년 12. 31일 기준으로 7개소의 의료기관을 위촉하였다. 그리고 각 시·도시사에게 관내에 1~2개 정도의 의료기관을 여성부에서 "여성폭력긴급의료지원센터"로 위촉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를 요청하는 위촉확대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1년후, 5년후에는 전국에 몇 개의 의료기관을 위촉하여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안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실제 상담사례 중 진료와 진단서 발급거부로 인해 동네산부인과, 종합병원, 경찰병원으로 2~3차례 병원을 옮겨다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피해자의 진료과정에서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의료지원센터 확장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즉, 성폭력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진료를 받고 증거채취, 진단서 발급, 성폭력상담소나 경찰 연계 등이 전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서울과 일부 지역만이 아닌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따라서 각 사업별로 좀 더 세부적으로 장·단기 계획이 수립되어져야 할 것이다.

② 예산의 열악함과 배정기준의 미흡

2001년 여성폭력 추방 관련예산은 6,820백만원이고, 2002년 예산은 11,107백만원이다. 이처럼 성폭력 추방정책에 대한 예산은 늘어가고 있지만, 필요로 되어지는 피해자 지원이나 성폭력 예방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여성정책에 투입된 예산의 비율이 전체 예산 중에서 매우 적은 것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2001년 중앙정부의 여성정책예산은 일반회계 예산 94조 1,246억원의 0.28%인 2,595억원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여성정책 예산의 확보가 시급한 문제이다. 동시에 성폭력 추방정책 예산중 사업별 배정이나 각 상담소 지원금 보조의 원칙 등은 적절한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표1>의 2001년 여성부 예산을 보면 여성폭력방지 사업에 여성부 전체 예산의 17.8%정도가 책정되어있다. 그리고 <표2>의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사업 예산안을 보면 대체로 2001년에 비해 2002년도 예산은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2002년 예산에서 58%정도는 상담소 지원에 사용되고 있고, 피해자 치료비와 피해자 진단서 발급비가 따로 책정되어 있다. 특히 피해자 1인당 치료비 296,000원과 100,000원의 진단서 발급비 지원은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 지원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각 상담소의 상담건수와 상관없이 똑같은 금액을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피해자 지원에 관련한 예산이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사업이 전체 예산의 15%선에 머물고 있음은 성폭력 추방정책이 그만큼 예방사업에 주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표1 > 2001년 여성부 예산
< 표2 > 여성부의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사업 예산안


(4) 정책대상 선택의 적절성 : 피해여성지원에 중점

성폭력 추방정책에서 주요대상은 성폭력피해여성과 성폭력상담소, 보호시설이다. 관련 예산도 85%가 여기에 편중되어 있다(<표2>참조). 물론 아직도 피해자 지원을 위해 많은 정책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피해자가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심리적, 법적,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통합적 지원체계를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각급 학교별 체계적인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공익광고 등을 이용한 대국민 홍보 등을 적극 추진해가야 한다.

또한 가해자 교정교육도 매우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폭력범죄로 실형을 받은 가해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출소한 후에 다시 피해자를 협박하고 괴롭히는 경우가 최근 상담사례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렇듯 가해자에 대한 교정·교화 교육이 없이는 근본적으로 성폭력범죄가 줄어들 수가 없다고 본다. 다행히 최근에는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수강명령이나 사회봉사 명령이 함께 선고가 되어 그들에 대한 교육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마땅히 교육할 기관이나 교육 프로그램 등도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물론 이러한 가해자 관련 정책은 법무부 소관이지만, 여성부에서 부처간의 협력체계 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계진하여 추진을 독려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만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강간의 개념도 문제이다. 성폭력 범죄 중 강간(형법 제297조)범죄의 구성요건은 "상대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케 하는 폭행과 협박에 의한 부녀 간음"으로 들고 있어 남성은 강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경우, 법적으로는 남성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똑같은 강간 피해를 당했어도 성추행 피해자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로 대법원 판례(김엘림, 1999:122)에서는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는 임신이란 무거운 짐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남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논의는 비합리적이다.

(5) 정책 수립절차의 민주성

정책 수립절차의 민주성은 정책 수립과정에서 정책대상의 요구와 의견을 수렴했는지, 의견 수렴의 방법은 무엇이었는지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즉, 의제형성 및 의사결정과정에서 문제 파락을 위한 노력 및 적극적인 의견 수렴을 위한 방법의 적법성, 공개성 등을 보는 것이다(한국여성개발원, 2000:129).

정부의 본격적인 성폭력추방정책은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에 시작되었지만, 성폭력 추방운동은 20여년의 역사성을 갖는다. 1984년 시위진압 전경에 의한 여자대학생 성추행사건공동대책위(민경자, 1999:26)를 시작으로, 1986년 부천서성고문사건공대위, 1991년 어린이성폭력피해자 김부남사건 공동대책위, 1992년 근친성폭력피해자 김보은·김진관사건공동대책위 등 각 사건별로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들이 있었다. 이 운동에서는 성폭력을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천명하고 우리사회의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와 남성중심적인 성문화를 바꿔가기 위해 인식의 전환과 정부의 제도적 장치마련을 촉구해왔다.

이러한 역사적 기반위에서 정부의 성폭력추방정책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폭력추방을 위한 여성운동단체의 요구가 제도화되어가면서 정부의 성폭력 추방정책의 방향은 기존의 성폭력 추방운동을 하는 운동단체들과 대치되는 측면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9월 전국성폭력상담소·보호시설협의회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성폭력 추방 운동이 여성운동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복지업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며 운동은 다른 파트에 눈을 돌려서 또 하라는 식의 정부 담당자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토론회 회의록 참고). 이는 성폭력특별법 제24조에 있는 성폭력상담소의 업무와도 위배된다. 성폭력특별법에 상담소는 ①성폭력피해를 신고 받거나 이에 관한 상담에 응하는 일, ②성폭력피해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정생활 및 사회생활이 어렵거나 기타 사정으로 긴급히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병원 또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로 데려다 주는 일, ③가해자에 대한 고소와 피해보상청구 등 사법처리절차에 관하여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법률구조공단등 관계기관에 필요한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는 일, ④성폭력 범죄의 예방 및 방지를 위한 홍보를 하는 일, ⑤기타 성폭력 범죄 및 성폭력 피해에 관하여 조사, 연구하는 일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여성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 및 보호시설의 기능·역할 강화방안"을 비롯한 일련의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이와같은 근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책 수립과정에서 정책대상의 요구와 의견을 수렴했는가 매우 중요한데, 간담회나 공청회를 개최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정책대상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여성부 권익증진국의 인권복지과에서 주관한 "가정폭력·성폭력 관련 시설강화 방안"에 대한 간담회에서는 각 상담소의 설치기준과 통합상담소의 설치기준, 상담원 자격기준, 상담원교육 강사 자격기준, 상담원 교육과정의 강화안을 다 마련한 상태에서 상담소 평수를 조금 늘이고 줄이는 등의 수정만 하는 식의 간담회였다. 정작 중요한 통합상담소로 왜 가야하는지, 그 방향은 어떠해야하는지 등의 논의에는 전혀 의견수렴의 절차가 없었고 형식적으로 진행된 이러한 간담회는 진정으로 의견수렴할 창구가 전혀 아니었고 따라서 민주적 정책수립절차라고 평가할 수 없다.

민·관의 협력체제, 파트너쉽이란 둘의 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였을 때에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성폭력 추방을 위해 각자의 노하우와 조직 등을 활용하여야 한다고 본다. 또한 중앙부처만이 아니라 일선 행정기관의 담당자들의 인식의 문제도 있다. 한 상담소에서는 시의회에서 상담일지를 조작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지를 의회로 가져오라고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고, 한 보호시설에서는 보호인원의 조작을 확인하기 위해 밤에 '불시점검'을 한다면,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받아가는 등 성폭력피해자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관주도의 행정을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3. 맺 음 말

여성부의 출범과 함께 여성폭력 관련 정책이 여성부로 이관될 때, 여성부는 기존의 관행에 머물지 않고, 진정으로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깊은 고민의 흔적들이 있는 정책마련을 하리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보건복지부에서 기존의 다른 여성복지 시설과의 연대라는 매우 중요한 측면을 보류하고라도 여성부에서 성폭력 추방정책을 총괄하게 된 데에 성폭력상담소나 관련 연구자들도 환영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부는 성폭력 추방정책을 기존의 범주에서 벗어나 성폭력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마련하는데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성폭력 추방운동을 시작하고 이끌어온 민간단체, 상담소 등과의 진정한 파트너쉽은 성폭력 추방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한편 성폭력추방운동을 주도해온 여성단체들이나 정부의 성폭력 추방정책에서 성폭력 위험성의 강조는 여성들의 성(sexuality)를 무서운 성으로 각인시키는 역효과가 있다는 조심스러운 지적들이 있다(조주현, 1997/ 고갑희, 1997/ 김은실, 1998을 인용한 변혜정, 1999:301). 즉, 성폭력 위험의 강조는 성폭력에 대한 예방과 대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반면에, 여성의 성을 수동적이고 보호해야하는 것으로 규정해왔다는 비판인 것이다. 이러한 지적이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이는 다른 분야의 문제제기나 운동, 정책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연구와 운동, 정책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피임운동이나, 낙태에서의 선택권 등의 구체적인 사안들이 성폭력 추방운동의 깊이와 넓이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해서 주눅드는 성이 아닌, 즐겁고 긍정적인 성의 강조도 필요하다. 성폭력 추방정책에서도 앞으로 긍정적인 성적권리 등과 연계한 정책마련도 함께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