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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와 피해자권리
  • 2005-09-16
  • 3690


[법적과정에서의 피해자의 소외, 피해자의 권리]

법적과정을 밟고 있는 피해자들의 많은 경우가 수사,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와 법적과정으로부터의 소외감을 호소합니다.
본 상담소의 법정지원팀에서 진행한 이번 피해자 인터뷰는 현행 제도상에 명문화되어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는 피해자의 권리, 그리고 앞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 등을 제안하는 '여성인권을 찾는 시민감시단' 활동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나무님은 경찰, 검찰 수사단계와 1·2심 재판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직업과 피해당시 품행, 저항여부와 저항의 정도, 가해자와의 사전관계 등을 질문받고 의심받으며 긴 과정을 겪어내었습니다.
나무님은 재판에서 '승소'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긴 하였으나, '가해자에게 느낀 분노와는 또 다르게, 법적 과정에서 느낀 분노와 억울함은 특정한 사람에게 향해질 수도 없다'며 힘든 심정을 말합니다.
인터뷰는 형사절차상 겪은 어려움을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그 중 아래의 내용은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신문을 받지 않을 권리, 명예를 해치는 신문을 받지 않을 권리, 피해자로서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권리 등 형사절차 중에서도 공판과정에서 보장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권리 몇 가지를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형사절차로부터의 소외>

"공판검사를 만나볼 수가 없었어. 주변에서 들었을 때는 '검사가 내 변호사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따로 변호사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길 들었어. 그런데 내 변호사라면 어떻게 얼굴한번 보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있을까.
인터넷에서 재판정보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인터넷에 익숙하지도 않고 잘 몰라. 나보다 나이도 많고, 컴퓨터 잘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인터넷으로 재판정보를 찾아보라는 말만 하고... 내가 바보같아서 그런가. 다른 피해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정신도 똑바로 차리고 있고 자기 재판에 대해서 놓치지 않고 잘 알아보는데 나만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내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계속 신경쓰고 있다가 필요할 때 이것저것 진정서도 넣고 단체 도움도 받고 그랬을지도 모르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기도 해. 내가 좀 더 정신차리고 재판마다 좇아 다니면서 신경을 썼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지기도 해.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너무 경황이 없었어. 정신없이 일도 해야되고, 그 생각만 해도 후들거리는데... 제대로 모든 과정을 신경쓰고 대비한다는 게 정말 힘들었어.
그 가해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진행이 된 건지, 재판이 왜 취소가 된 건지 당사자한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본인이 먼저 신경써야 하겠지만, 담당검사가 피해자한테 이런걸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전화하면 대답이라도 해줘야 하잖아...
법원 사람들이 너무 무섭고 불친절하게 구는데다가, 담당검사 전화번호도 알아내기 어렵고, 전화 연결되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확인하라니. 인터넷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아는 후배한테 부탁해서 보니깐 그런건 나와있지도 않아. 거기 그런 게 나와있어?"

■ <모욕적 신문금지 관련>

"그 놈, 가해자 변호사가 부모님 직업까지 들먹이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데도, 검사는, 내 변호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거야. 판사까지 내 행실을 운운하면서 이상한 말을 해대는데, 검사는 암말도 안하는 거야. 법정에 내편은 하나도 없었어. 진짜 하나도... 내가 그렇게 억울하고 분해서 꺽꺽 숨이 넘어가고 눈동자가 조절이 안되고 뒤집히는데...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거야... 1심때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나쁘게 하진 않았어. 근데 2심때 판사들은... 가해자 변호사는 그렇다고 쳐. 가해자랑 한통속이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는데, 판사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한거는 용서가 안돼. 내 편이라는 검사도 그렇고, 가해자 편인 변호사도 그렇고, 판사들까지 다 똑같애. 다 똑같은 남자야... "

■ <진술할 기회의 보장 관련>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렇고, 네-아니오라고 짧게 대답하는게 당연한 걸로 알고 있었어. 근데 내가 막상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질문을 받아보니까 너무 답답한 게 많은 거야. 네/아니오 로는 설명안되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아.
잘못을 저지른 사람한테도 먼저 충분하게 얘길 들어보는 게 맞는 일이잖아. 근데 나는 피해자인데 그렇게 몰아붙이듯이 짧게 대답하라고 하는 게 정말... 도무지 말이 안돼.
증언 마치고 나와서 앉아있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막 떨리기 시작하고, 너무 화가 나는 거야. 며칠동안 얼굴에서 열이 안내렸어. 술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계속 빨갛고. 생각하다 안되서 오죽했으면 '그래 그 사람들도 일도 많고 바빴겠지...'하고 이해해보려고도 했어. 근데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건 아니야. 그렇게 억울한 사람 말을 막는건 아니지. 말을 못하게 해... 자기네들도 그렇게 그런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추궁 받으면서 당해보라고 해."

■ <가해자의 신병에 관한 통지 필요>

"가해자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건지를 좀 알았으면 좋겠어. 전화벨이 울리거나 길 가다가도 비슷한 사람 보면 정말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심장이... 숨도 못쉬겠어. 지나치고 나서 뒤돌아보면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 지나칠 때는 순간적으로 진짜, 딱 그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는거야. 내가 점점 이상해지는 거 같애. 나말고도 피해자들은 많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 가해자가 구속이 돼서 형을 살다가 무슨 특사니 하면서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당연히 피해자한테 알려줘야 할 것 같애. 그 사람은 조금만 건너 건너면 내가 뭐하고 있는지 다 알아낼 수 있을텐데, 나는 모르는 상태로 앉아서 계속 불안해하게 되는 거야. 그 놈이 형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중간에 나올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런게 너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니까... 출근할때나 퇴근해서 집 근처에 가까이 가면 심장이 빨라져서 숨이 제대로 안 쉬어져."

■ <피해자의 권리를 고지받을 권리>

"재판이 끝날 때까지 형사든, 검사든, 판사한테든 나한테 무슨 권리가 있다는 말 같은건 들어보지를 못했어. 그게 되든 안되든 좋아. 적어도 얘기는 해줘야 하는 거잖아.
미란다원칙인가 가해자 체포할 때 해야 하는게 있잖아. 가해자한테는 권리가 뭐가 있는지 알려줘야 하는 것 같은데, 막상 피해자는, 피해자는 훨씬 더 억울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나몰라라 할 수 있는지..."

■ <가명수사의 필요성>

"공탁통지서라는게 날라왔어. 우리집에서 엄마는 모르고 있었거든. 나이도 많으셔서 내가 그런일 당하고 재판하고 있는거 알았으면 아마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집에 들어오는데 마루에 법원에서 편지가 와있는데... 다행히 엄마가 보진 못했지만, 그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 나무님은 현행 제도자체의 한계도 있지만,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고 하며, 법적 과정을 겪을 다른 피해자분들에게 현행제도 안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잘 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 상황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내 경험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혹시 겪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쉽지 않은 얘기들을 꺼내고 인용을 허락해준 나무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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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된 인터뷰 내용 중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신문을 받지 않을 권리, 명예를 해치는 신문을 받지 않을 권리, 피해자로서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권리는 현행법상 이미 피해자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임에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는 부분입니다.
'가해자의 신병에 관한 통지를 받을 권리'의 경우 특정범죄신고자등보호법상에 '피고인들에 관련된 주요 변동상황 통지'라는 조항으로 되어있기는 하나, 입법취지 자체가 피해자가 아닌 범죄 신고자 보호에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이 절실히 필요한 피해자에게는 실제로 적용되기 힘든 상황입니다.
가명수사의 필요성, 피해자의 권리를 고지받을 권리 등은 현재 보장받고 있지 못하나 그 필요성이 절실하고, 앞으로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권리들입니다.

법정지원팀에서는 공판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형사절차, 특히 공판절차상의 2차피해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침해되는 피해자 권리를 모니터링하고 이미 보장되고 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되고 있지 않은 피해자의 권리 중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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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형사사법절차는 피해자로부터 출발되지만, 현행법 하에서의 피해자는 단지 증인 혹은 참고인 등 절차의 '대상'으로서, 소극적인 지위만을 가지고 있고, 형사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사 절차에서 피해자의 지위를 제대로 보장받는데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수사정보를 제공받고 소추절차의 진행경과 등을 고지받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체포여부와 수사의 진척상황, 가해자의 구속여부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형사절차의 진행경과 및 절차참여, 피해자의 권리 고지 등의 안내절차

형사사법기관은 범죄피해자에게 형사절차의 진행경과의 고지 및 절차참여를 인정하여야 하고, 또한 피해자의 권리·배상명령절차, 피해자에 대한 지원기관 등의 고지의무의 입법화를 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범죄피해자나 그와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자는 형사절차의 진행경과의 고지 및 형사절차의 참여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즉 피고발자에 대한 체포, 법관면전에의 최초출두, 재판절차 계속중의 석방 등에 대한 사전고지를 받고 있으며, 공소취하, 재판절차 계속 중의 피고발자의 석방 등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범죄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과 일정한 사항에 관해 상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수사, 재판과 관련된 관계서류 및 기록에 대한 접근권

피해자들로 하여금 가장 크게 소외감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정보접근 차단'의 문제입니다. 수사, 재판과 관련해서 가해자는 변호사를 통한 정보접근이 가능하나 피해자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데, 이로 인해 극단적으로는 재판경과를 파악하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재판경과를 파악하고 당시 필요한 변론이나 증거들을 구비하려고 해도 현행법상의 한계로 인해 피해자들은 자신의 사건에 대해 무력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피해자에게는 재판의 경과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소속계속중인 서류 및 증거물을 열람 또는 등사하여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고인 등에 관련된 변동상황을 통지받을 권리

소송진행중이거나 법적절차를 모두 마친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보복의 두려움, 가해자 출소후 재피해에 대한 우려입니다. 피해자가 느끼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위협감 등은 피해자의 일상 곳곳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2차 피해상황에 대한 보완장치로 가해자의 가석방, 형집행정지, 형기만료 등의 가해자 신변에 관한 변동상황이 피해자에게 반드시 고지되어야 할 것이며, 가석방 집행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피해자의 의사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 피해자들은 피해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스스로에 대한 권리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권리가 가해자로부터 무시되고 박탈되었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피해를 다시 없앨 수는 없지만, 피해임을 인정받고 피해로 인해 훼손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구현해내는 것은 '더 이상 양보될 수 없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역할일 것입니다.
소송을 통한 제한적 권리만이 인정되는 현행 권리구제 시스템은 피해자의 선택의 폭을 제한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더 긴급하게, 좀 더 안전하게, 더 수월하게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사건해결을 위한 지원 중재절차, 공동체 안에서의 해결 장치 등 소송이외의 사건지원 시스템을 마련하여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통로를 더욱 다양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소송을 결심한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선 현행 법률제도의 맹점들이 보완되고 피해자로서의 지위강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여성인권을 찾는 시민감시단은 공판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모니터링하고, 공판으로부터의 소외감을 유발하는 현행제도를 조사하여 대안적인 피해자의 법적권리'를 마련하는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시민감시단은 그동안의 학계 및 단체에서의 논의들을 정리하고 평가하면서, 피해자의 권리와 권리회복방안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제작하였습니다. 위의 글은 본 상담소 소식지 나눔터(45호)에 실린 것으로, 시민감시단 보고서의 기초자료가 되었습니다.



여성인권을 찾는 시민감시단 보고서
: 성폭력관련 공판에서의 2차피해와 피해자권리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와 피해자 권리-새로운 접근과 대안모색>
- 2차피해의 두양상
- 절차적 보호를 구할 권리
- 증인신문 내용상 보호를 구할 권리
- 형사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 해결방안 - 증인신문내용 제한에 관하여>
-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 문제의 실태
-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에 대한 헌법적 검토
- 각국의 입법례
- 공판과정에서의 2차피해 문제의 해결방안 모색


*자료문의 : 본 상담소 성과인권팀(338-28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