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태아 산재 인정 대법원 판결 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성명서]
“포기하지 않고 싸운 10년!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 권리보장을 위한 새 역사를 쓰다!”
지난 4월 29일 대법원은 ‘제주의료원 간호사 태아 산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집단으로 유산하고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산업재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과 제주의료원은 10년이 넘도록 책임을 회피해왔다. 공공병원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과로에 시달리며 유해한 약품을 다루다가 본인과 태아의 건강이 손상된 것에 대해, 부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여성 노동자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정부 역시 외면해왔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운 이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국가와 사회의 마땅한 책임이 짚어졌다. 우리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굳건히 싸워온 이들의 용기에 감사한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 태아 산재’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온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정작 본인의 건강과 재생산권리를 해치는 비극은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고통을 딛고 싸운 이들의 용기 덕분에 여성의 노동권 및 건강권, 나아가 재생산권리에 대한 사회적 경종이 울렸다.
지난 수년간 쟁점이 되었던 ‘모(母)와 태아의 관계’에 대해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며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님”이라는 판단을 내려 논란을 일소했다. 이는 작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일맥상통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 역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라며 ‘모(母)와 태아 관계’의 특수함을 언급했다. 또한 임신(유지/중지) 및 출산과 양육 전반에 대해 여성에게 처벌로써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마땅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모성’은 의무와 희생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이다. 그리고 그 권리의 행사 여부는 전적으로 여성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억압적인 처벌이나 시혜적인 보호가 아니라, 여성이 건강하게 노동하며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및 국가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태아 산재’ 인정 대법원 판결은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여성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의 결정이다. 여성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경우 그 책임을 부모와 가족에게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산재보험제도로 최소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합의로써 의미가 크다. 나아가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그치지 않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비롯하여 여성의 노동권 및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전반적인 법·제도 개선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지는 10년의 세월 동안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예방도, 여성들의 재생산권리 침해에 대한 보상도,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던 입법부와 행정부의 책임 방기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노동권 및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며, 지난 10년 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을 딛고 싸웠던 이들이 일구어낸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굳건히 연대하고 함께할 것이다.
2020년 5월 4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건강과대안,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노동당, 녹색당, 민주노총,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꽃페미액션,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국학생행진,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탁틴내일, 페미당당,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