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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단호한 시선] 성평등을 위한 ‘성희롱 문제제기’인가, 성평등을 막는 ‘백래시’인가? : 연예인 박나래씨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 유통 고발 사태에 부쳐
  • 2021-05-04
  • 2630

성평등을 위한 ‘성희롱 문제제기’인가, 성평등을 막는 ‘백래시’인가?

 : 연예인 박나래씨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 유통 고발 사태에 부쳐

연예인 박나래씨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남성 인형을 대상으로 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논란이 되고 있다. 나아가 박나래씨는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 유통 혐의로 고발이 되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 고발되었던 성폭력 사건과 달리 개인을 향한 논란은 큰 반면, 사건의 구조적⠂맥락적인 원인과 성평등 증진을 위한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논란과 괴롭힘만 남은 ‘성희롱 문제제기’

성희롱에 대한 판단은 맥락적이어야 한다. 누군가 성적 언행으로 인하여 불쾌한 기분을 느낀다고 해서 바로 성희롱이 아니라 해당 행위가 무엇을 침해하고 있는지, 어떤 권력 관계가 있었는지, 사회 구조적인 차별을 원인으로 하거나 강화하는지 살펴야 한다. 

논란이 된 채널에서 이루어진 박나래씨의 언행은 누군가의 성적 자기결정권 내지는 성적 통합성을 제한, 배제, 차별, 침해하거나, 남성 성별 전체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사안에서 ‘성희롱’을 주장하는 이들도 ‘불쾌하다’, ‘선을 넘었다’, ‘부적절했다’라고 말할 뿐 일반적으로 성희롱을 판단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회 구조적 차별이나 권력 관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남성이 하면 성희롱이니 여성이 해도 성희롱’이라는 주장 역시 살펴보아야 한다. 성별을 바꿔서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희롱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폭력을 판단할 때 성별을 다른 권력 관계나 맥락에서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폭력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가해자가 남성인 성폭력 사건에서도 성폭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가해자의 성별 자체가 아니다. 가해자가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및 신분 등의 권력 관계를 이용하여 어떤 의도로, 누구에게 피해를 입혔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든 자신의 권력과 감수성을 성찰해야 한다. 하지만 ‘남성이 하면 성희롱이니 여성이 해도 성희롱’이라는 주장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2019년 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자의 96.1%는 남성이며, 2020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더라도 남성 가해자의 비율이 93.1%에 달한다. 성별에 따른 권력 관계가 반영된 결과다. 성별 권력 관계가 여전히 공고한 현실에서 기존의 '가해자'의 위치를 여성에게, 기존의 '피해자'의 위치를 남성에게 부여하자는 것은 권력 관계를 더 세심히 보자는 것이 아니라 성별 권력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폭력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인 사실, 남성이 성별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은 아닌가.

사회적으로 제지되어야 할 백래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 수전 팔루디

이번 사안의 본질은 성희롱이 아니다. 성평등에 대한 백래시이자 여성 연예인에 대한 괴롭힘이다. ‘성희롱’이라는 비판은 이를 정당화 하고자 하는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여러 뉴스를 통해 페미니즘 및 성평등에 대한 백래시를 접하게 된다.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역고소하는 것은 반성폭력운동 현장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백래시라고 볼 수 있다. 무고, 명예훼손 등 역고소는 마치 소송과정에서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중립적인 법적 권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피해자에 대한 괴롭힘이자 소송 과정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보복성’ 시도이다.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적극 활용하여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뒤집거나 모호하게 만들어 처벌받지 않으려는 전략이며, 상업적 성폭력 가해자 변호사 시장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2018년 법무부는 성폭력 수사가 종료되기 전에 무고 수사를 동시에 하거나, 무고 수사로 전환하지 않도록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개정했다. 성폭력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가 일단 역고소를 하고 보는 백래시에 대응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제지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전 사회적으로 ‘일단 하고 보는’ 비상식적 백래시가 횡행하는 중이다. 수전 팔루디의 말처럼 여성들이 성폭력을 고발하고 사회의 성평등이 진전되려고 할 때 백래시는 거세진다. 그럴듯한 문제제기의 탈을 쓰고 말이다.

이런 때일수록 단호함이 필요하다. 백래시를 용인하면 성별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언론은 쏟아지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지 말고, 폭력과 혐오가 무엇인지 인권과 성평등의 관점으로 판단할 수 있게 백래시 사안을 보도해야 한다. 기업, 학교 등은 페미니즘 및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대신 ‘성평등에 대한 반발은 사회적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제지해야 한다. 더는 억지 논란을 받아들여 백래시에 힘을 실어주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수사재판기관은 여성에 대한 수많은 성희롱 콘텐츠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솜방망이 처벌해왔음을 비판하는 여론을 직면해야 한다. 그동안 젠더편향적으로 이루어져온 수사재판과정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 성평등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우리는 백래시에 물러서지 않고 요구한다.

성평등에 대한 백래시를 중단하라

수사재판기관, 기업, 학교, 정치권 등은 비상식적 백래시를 명확하게 제지하라

수사재판기관, 기업, 학교, 정치권 등은 인권과 성평등을 적극적으로 증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