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대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성평등 외면하는 퇴행적 대선정국 규탄 기자회견
■ 일시와 장소 : 2021년 11월 19일(금) 오전 11시 / 서울 청계광장 소라탑 앞(광화문역 5번출구 인근)
■ 공동주최 : 38개 여성시민사회단체 (경기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독여민회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회 대전여민회 대전여성단체연합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새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수원여성회 여성환경연대 울산여성회 인권운동사랑방 전북여성단체연합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젠더교육플랫폼 효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포항여성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한부모연합 함께하는주부모임)
■ 프로그램(*사회 : 도구(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1) 발언
● 대선정국 규탄 및 향후 방향 제안
-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 오매(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류(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장
-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
-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 기자회견문 낭독
- 이영분 기독여민회 총무,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3) 퍼포먼스
[발언문]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판을 ‘비호감 대 비호감’의 대결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평가를 보면서 ‘대선을 왜 치르는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선은 한 국가가 최소한 향후 5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너무나 중요한 선거이며, 따라서 정당 후보들은 5년 동안 어떤 비전과 내용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를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제시는커녕, 누가 누가 더 최악인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흐름에 편승해 여성들의 입을 막고, 그동안 수많은 여성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룩한 성평등 정치와 정책의 기반을 무너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이 더욱 더 필요한 시기에 성평등 후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터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 코로나19로 국가가 포기한 돌봄의 공백을 메웠던 사람들, 코로나19 환자들을 지켰던 사람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저임금 일터로 내몰린 사람들, 저임금 노동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 일터와 온라인, 일상생활에서 성희롱과 성폭력을 경험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 중 다수가 여성입니다. 수많은 지표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배제가 구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기득권 정치세력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외면하고, 온라인에서 떠도는 말들을 가져와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책상을 떠나서 현장에 가 보시라, 따뜻한 안방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바깥의 엄혹한 서민들의 삶에 대해서 직접 체감을 해보시라”고 말했습니다다. 이재명 후보에게 똑같이 전합니다. 여성들의 현장에 가 보시라. 성차별과 성폭력을 겪고도 신고는커녕 일자리를 잃을까봐 일터에 나가서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해야 하고, 저임금과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들의 엄혹한 삶에 대해 직접 체감을 해보시라. 청년남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에 대한 적대감, 비방과 욕설, 외모평가, 성적 희롱과 위협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남초커뮤니티 글로 청년남성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반페미니즘 목소리에 의해 가려진, 다양한 청년남성들의 현장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라.
2020년,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범죄 피해자는 총 4,973명으로 2019년(2,087명) 대비 2.4배 증가했으며, 피해자 중 81.4%인 4,047명이 여성이었습니다. 2020년 경찰청이 집계한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도 1만 9,940건이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성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일부 가해자를 제외하면 다수의 성범죄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2019년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검찰의 성폭력 사건 처리 인원수는 7만 1,740명이며, 이 중 무고로 기소된 비율은 0.78%(566명)였습니다. 검찰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여성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했다는 것은 미투운동을 이끌었던 수많은 여성들을 무시하는 것인 동시에 모욕하는 것입니다. 성범죄에 대해서조차 남성 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는 후보가 성차별의 구조 전반을 이해할 리 만무합니다. 그가 말하는 여성가족부 개편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이 성평등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반동은 새롭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할 때마다 다수 남성들은 그러한 여성의 변화를 막으려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의 저항을 넘어섰고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부 남성들 또한 여성들의 변화를 지지하고 변화에 함께 동참하며 페미니스트로 변화해왔습니다. 여성들은 이미 변화했고, 이제는 남성도 변화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이끌 정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당선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 임기 내내 침묵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성평등을 외치고, 정부의 전체 구조와 정책을 성평등하게 바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위기 현상들은 인류에게 체제전환에 가까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착취적 자본주의를 통해서는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존조차 보장하기 어렵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젠더관점, 페미니즘,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더 많은, 다양한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양당과 양당의 후보들은 당선과 기득권 유지라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경제 양극화를 강화하는 과거회귀적인 정책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정책에 젠더관점이 포함되어야 하나 여성정책에서조차 젠더관점이 부재합니다. 이와 함께 피아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를 통해 시민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강화하면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기에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리는 행동을 정당과 정치인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차선도, 차악도 아닌, 최악의 대선판을 만들고 있는 것은 거대양당과 그 정당의 후보들입니다.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현실을 외면하고, 갈등만을 조장하는 거대양당에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성평등 민주주의를 반드시 실현해낼 것입니다.
●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양상 가운데 2030 세대를 붙잡아야 한다는 언설이 넘쳐난다. ‘공정’이 화두이며 ‘분노’라 표현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여성은 삭제되었다.
우리 사회 주요 정책 결정부터 실행단위에 이르기까지 전유하고 있는 특정 남성들에게 쏟아야 할 그 2030이라는 ‘공정’의 분노는 ‘여성’을 향해있으며 젠더 문제, 또는 젠더 갈등으로 시전 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이해득실과 만나 완벽한 남성 원팀으로 구성된 언어로써 휘발성을 갖고 있다. 젠더 갈등 어쩌고 들 얘기하지만 그래서 여성의 삶은 얼마나 나아진 걸까? 이 사실에 관한 질문은 외면한 채 그러하다.
양성평등이라는 수량적 평등에 매몰되어 “같이 학교 졸업하고, 니들 취직할 동안 나는 군대 간다!!...” 외치는 가히 전가의 보도 마냥 휘두르는 언설에 정치인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회적 성찰, 성평등 사회 담론을 만들어 가야 하는 지점은 놓친 채 하나의 사회현상처럼 고착화하거나 확산으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느라 바쁘다. 엉뚱하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로 정의되며 백래시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
그렇지만 임신과 출산을 기점으로 여성의 고용경력은 유지되기 어려우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는 훨씬 좋았던 학교성적도, 괜찮았다고 생각되었던 개인의 커리어도 모두 소멸되어 주변화 되고 마는, 동시대 많은 2030여성에겐 아주 가까운 미래다. 여성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성폭력 가정폭력 등 젠더 폭력은 여전히 무한증식 중이다. 여성이 겪는 변화와 불안한 일상이 ‘공정의 언설’과는 이렇게 무관하게 돌아간다. 이것이 차별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를 보완해보자는 취지의 각종 정책과 제도는 불공정, 또는 불용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 결과로 여가부가 필요 없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성인지 관점이 반영된 정책의 확장은 시대적 과제가 되어야 함에도 ‘다음’을 기다리라 하거나, ‘다 이루어졌다’ 라거나, ‘공정하지 않다’라고 한다. 저임금 일자리와 주변화되어 있는 여성 노동환경이 남성의 언어, ‘공정성’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들여다봐야 함에도 외면한다. 이것이 차별이 아니고 무엇인가?
2022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성평등 정책이 구현되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와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동력을 대선후보라는 당신들이 구동해 내야한다! 그것이 바로 공정이자 공존의 제1 조건이다.
성평등사회 실현은 성별이 어떠하든 성 정체성이 무엇이건 나이, 직업, 학력, 그리고 장애 유무 등이 차별의 사유가 되지 않음을 알아차려야 만나게 되는 세상이다. 그래야 공정해지는 사회와 만날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책 제도에 관한 담론은 이러한 기조 위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한다. 대선 후보들은 성차별을 해소하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비전을 발표하라. 우리는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갈 대통령을 원한다!!.
●오매(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그동안 대선 뉴스가 분노스러웠습니다. 양당 후보들 손짓 하나 족적 하나 뉴스에 도배될 때, 국회의원들이 상대 후보 저격에 동원될 때, 존엄한 삶을 외치던 사람들은 길바닥에서 목이 쉬었습니다. 정치인들의 함량미달이 공론장을 점유하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삶들은 모욕되는 사이 거대 양당 후보가 한목소리를 내는 게 있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차별이다”,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
이렇게 차별에 관심있는 줄 몰랐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오늘도 미루고 있거든요. 후보들이 말하는 게 지금 사회적 차별입니까? 아닙니다. 복잡해지는 교묘한 차별과 혐오의 구조를 파악하고 책무를 설계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세력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을 재창출할까에 골몰하는 와중에 차별이니 역차별이니 남성차별이니 젠더갈등이니 말만 만들고 가져다 쓰고 짜깁기하고 부풀리고 있습니다.
성차별, 성폭력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안전하게 숨쉬며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그동안 만들어 왔습니다. 미투운동, 혜화역시위, 청와대 청원, 국회 국민동의청원, 온라인, 경찰, 법정에서의 투쟁이 지난 몇 년간도 치열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권력관계가, 차별구조가 바뀌었습니까? 2021년 올해, 초등학교 교장이 학교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공군 법무실장이 가해자를 구속수사하고 피해자 보호는 못할망정 군검사들에게 피해자 사진을 가져오라며 지시했습니다. 안희정이 미투 ‘무고’에 당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정당 관계자가 피해자 욕을 게시합니다. 불법촬영물 다운받고 입건된 피의자에게 경찰이 여성단체에 후원해보라고 안내를 해줬다고 합니다.
대선 후보자들은 일부 남성들이 호소하는 역차별을 언급하기 전에, 성평등한 변화의 역사와 흐름 위에 서 있는 우리 사회 현재를 보아야 합니다. 국가와 정부, 정치가 할 역할은 아직도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과 차별 행위를 지속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평등과 인권에 기반하여 시민들의 존엄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명실상부하게, 내실있게 확립하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 예산 확충 인력 확충,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 확립해도 바쁘게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미투운동이 일어나자 겨우 가능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2020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에 대한 고발 공론화, 그 외 수많은 정치인들의 가정폭력, 성폭력에 대한 고발 – 당사자들은 거대 양당의 반성없는 적대적 공생 구도가 부추기는 2차 피해, 비난, 신상털이, 위협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 요구합니다.
- 정치권 내 성폭력 예방 대책을 확립하고, 사건발생시 정확한 해결, 2차 가해에 엄정 대응하라
- 가해자 서사에서 시작된 성폭력 무고죄 프레임을 멈추고, 성폭력 방지, 대응에 대한 국가 책무를 실행하라
- 대선 과정에서 여성혐오, 소수자혐오 발언을 멈추고, 언론사들은 관련 기사 댓글창을 폐기하라
- 형법상 강간죄 개정, 가정폭력방지법 목적조항 변경, 성매매 피해자 비범죄화, 재생산 권리 기본법 제정 등 성평등한 사회변화 기본과제에 착수하라
●류(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장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입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다 보니 채용 가산점이 없어지고, 이래서 군을 지원하거나 복무하는 과정에서 사기도 많이 위축된 거 같다” 윤석열 후보의 발언입니다. 언론을 통해 양당 대선후보들의 발언을 접하면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또다시 분노가 치솟곤 합니다. 무려 2021년인 지금, 우리는 성평등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젠더 갈등’을 해결하겠답시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대선 후보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성과 남성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생존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남성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사회안전망을 지원하는 대신 그건 여성 탓, ‘광기의 페미니즘’ 탓이라는 오해를 부추기며 표심 잡기에 나서는 대선 후보가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의무라면 병사들에게 제대로 된 월급을 주고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묵과한 채 알량한 군 가산점을 들먹이는 대선 후보가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여성 개인과 남성 개인이 갈등하는 장면으로 치부되는 ‘젠더 갈등’이 아니라 성차별적인 구조입니다. 동등한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닙니다. 성별권력관계에 따른 차별이 바로 지금 당장 해결할 문제입니다. 대선후보들은 여전히 성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성차별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깊게 고민하길 바랍니다. 단언컨대, 성평등 실현에 대한 고민과 계획이 없는 대통령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재난 이후 맞이하는 대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할까요? 우리는 지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 있습니다. 코로나가 더욱 극명히 드러낸 차별과 혐오,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같은 문제 상황의 뿌리에는 성차별이 깊숙이 얽혀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일자리를 잃었고, 어린이집과 학교가 멈추면서 돌봄을 전담하느라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돌봄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평가절하되어 열악한 노동의 현장 속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필수노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생존과 돌봄을 개개인이 홀로 고민하며 각자도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일상과 돌봄과 노동에 있어 삶의 최저선이 높아지는 사회, 경쟁이 아닌 연대와 공존이 공공선의 확대를 위한 더 나은 길이라는 신뢰가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페미니즘 복지국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협소한 안전의 개념으로 여성에게 안전장치를 갖출 것을 제안하는 정책, 여전히 돌봄의 책임을 여성에게 둔 채로 육아휴직이나 단시간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만을 ‘여성 정책’으로 제시하는 정치는 이제 그만두십시오. 이미 지긋지긋하게 보아왔습니다. 복지국가에 페미니즘을 도입한다는 것은, 기존에 ‘여성 정책’로 여겨져 온 안전과 모성의 문제를 복지제도에 일부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 대상으로서 시민의 일상과 삶의 모든 영역을 보는 방식을 전환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불공정성을 극복하고 삶과 사회를 재생산하는 보편적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페미니즘 복지국가를 만들어나갈 로드맵을 대선후보들에게 요구합니다.
성평등 외면하는 대선후보 규탄한다!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갈 대통령을 원한다!
우리는 성평등에 투표한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
2021년 현재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들은 황당하고 터무니없다. 처음엔 ‘집게손가락 논란’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논란’들이 마치 정당한 요구나 권리처럼 인정됨으로써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사회적으로 동등한 의견처럼 수용되고 있다. 성평등을 향한 공격이 실제로 효용을 얻으며 ‘승리 경험’을 축적하고 점점 기세가 오르고 있다.
디지털성폭력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의 성착취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며 2,30대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된다며 강한 피해의식을 드러냈다. 그동안 가부장제 아래 가족을 먹여 살리며 희생해온 것은 남성들이고, 지금은 오히려 여성상위시대이며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사상이므로 현재의 차별받는 피해자는 바로 남성이라는 인식이 2,30대 남성들 사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족을 혼자 먹여 살리는 가부장 신화는 학습되고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한 역사는 지워졌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생활화되며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고용불안, 병역문제 등이 ‘이대남’이라 불리는 세대의 억울한 정서를 더 자극했다.
여성혐오(misogyny)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로 그동안 불평등을 지적하던 언어들이 성평등을 향한 공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한다는 말이 마치 혐오의 언어도 정당한 발화로 인정받아야한다는 것처럼 왜곡되고, 싸울 대상을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상정해 페미니즘 격퇴를 외치며 공격하고 있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공정’ 논리와 함께 오히려 납작하게 읽히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누구에게나 고르게 분배될 권리를 주장할 때 서로의 몫을 누가 더 많이 빼앗는지 따지는 것으로 곡해하고 있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세계의 본질적인 가치는 ‘정의’에 있다. 구조적인 차별의 실태를 이해하고 소수자가 놓인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결국 정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등의 논리가 무조건 ‘너와 내가 똑같아야’하므로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파이싸움에서 몫을 뺏기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 우리가 지금 투쟁해야할 대상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책무가 있는 정치권은 지금 왜곡된 평등의 논리의 편에 서서 성평등을 향한 공격에 부채질하고 기름 붓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 실태를 똑바로 보라. 이제는 더 이상 여성들을 ‘된장녀’, ‘김치녀’로 구분할 필요 없이 능멸과 능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는 여성, 모르는 여성, 여성 연예인, 때로는 그저 SNS 너머로 우연히 마주친 여성을 가리지 않고 능욕의 대상으로 삼는다. 노골적으로 여성을 망가트릴 수 있는 존재로 취급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 그 자체가 재밋거리가 되는 실태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놀이 문화’로 향유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 ‘박사’ 조주빈은 돈을 벌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성폭력이 돈이 되는 사회다. 여성의 물리적 신체이든, 신체를 재현한 이미지이든 곧장 ‘음란한 것’과 ‘상품’으로 취급하는 남성문화를 기반으로 성착취 산업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2016년 여성들의 힘으로 폐쇄한 거대한 성폭력 사이트 ‘소라넷’을 기억하는가? 소라넷의 유저가 몇 명이었는지 기억하는가? 실재하는 여성폭력은 무엇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가? 성차별이 허상인가? 정말로 여성상위 시대인가? 이것이 젠더 간 ‘갈등’의 문제라고 보이는가?
대선정국에서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고 말하는 후보는 이 질문들에 답변해보라. 성평등을 향한 치열한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낸 변화들로 이 사회는 보다 정의롭고 안전해질 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를 ‘분란을 일으키는 자’로 이름 붙일 때 우리는 위축되지 않고 더 큰 분란을 일으키며 차별과 폭력의 구조에 균열을 내왔다. 남성의 표와 여성의 표, 성소수자의 표, 장애인의 표 모든 표의 무게는 동일하다. 그러나 지금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은 누구의 표를 확보하고자 애쓰는가? 억울해하는 반페미니즘 정서를 등에 업고자 디씨인사이드의 글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고 생각하는가? 성평등을 향한 공격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행태야말로 페미니즘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의의 세계일 것이고, 그로 향하는 길에 성평등은 반드시 전제되는 조건임을 모르는 자는 정치의 자격이 없다. 여성들이 놓여진 현실을 더 이상 모르는 척 하지 말고 죄 없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멈추길 당부한다. 성차별주의자들의 논리에 힘입는 정치는 민주주의도, 정의도 아님을, 그것이야말로 광기어린 표심 모으기라는 것을 자각하길 바란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대선 정국을 가만보고 있으면 왜 이리 인권앞에서 갈팡지팡 방향들을 못잡는지 답답합니다. 얼마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자회견에서 한 교수님이 이런 발언을 하셨습니다. 여의도에는 나중에라는 유령이 산다고 말입니다. 오지 않는 그 나중이라는 때가 떠돌아다닙니다. 여의도에는 볼드모트도 살고 있습니다. 영국에도 한명 있는 볼드모트가 한국에는 둘이나 삽니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입니다. 성소수자는 정치권의 볼드모트가 된지 오래입니다. 며칠 전 청년세대 어쩌고하는 백분토론에 나온 국민의힘 계열 토론자는 장혜영 의원이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피하는거냐는 돌직구에도 끝까지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지않았습니다. 지금 거대양당의 대선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영역, 어떤 영역으로 에둘러 논쟁이 있다고 회피합니다. 똑바로 말씀들 하세요. 페미니즘 잘못됬다고 하고싶은 사람이나 성소수자 인권은 아직 합의중이라는 말하고 싶은 분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소신있는 모습이 후보의 강점처럼 이미지를 만들어 온 이재명 후보마저 이렇게 갈피를 못잡는거보니 성평등이, 차별금지법이 그리 어러운 주제인가 싶습니다. 이제는 사회의 상식이고 기준인데 말입니다. 상식의 대한민국 만들겠다는 윤석열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상식에서 아니 전세계 어느 나라의 상식에서 성평등과 인권을 빼놓습니까. 대통령이 어떤 자리입니까. 국가원수입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거대양당 2030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율에만 울고웃던 한편에 15%의 여성들이 제3지대를 선택하였습니다. 지금도 꼭 같은 모양입니다. 청년여성 18% 심상정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하죠. 시민들이 페미니즘에, 차별금지법에 투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겁니다.
모든 대선 후보들에게 고합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과 차별금지법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결코 적지 않을것입니다. 단 한표로도 결과가 결정되는 선거에서 매일들 하시는 표계산, 계산기 잘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 운운할때 누가 사회적 결단을 이야기하는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요구합니다. 차별금지법 대선전에 좀 만듭시다. 누가 이에 열심한가 그 역시 지켜보고 심판하겠습니다.
성평등, 차별금지법 요구하는 우리가 시민이고 우리가 사회입니다.
[기자회견문]
<대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성평등 외면하는 퇴행적 대선정국 규탄 기자회견>
우리는 성차별·성폭력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 갈 대통령을 원한다!
내년 3월 9일 실시될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사회 대전환을 위한 경고였던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 진행된다. 코로나19는 구조적 차별 문제의 해결 없이는 미래도 공존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성차별은 없어졌고 오히려 역차별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경제위기에서 먼저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여성일 만큼 노동자로서 여성의 위치는 주변적이고 취약했다. 사회의 모든 돌봄노동은 여성의 일로 전가됐지만 ‘덕분에’라는 공치사만 있었을 뿐 정당한 대우나 돌봄 불평등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청년여성들의 자살률은 급증했지만 이 심각한 사회적 위험 상황은 ‘조용한 학살’로 불릴 만큼 사회적 무관심으로 일관되었다.
이런 사회의 성차별·성폭력의 구조를 드러내고 바꿔온 것은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통제하고 처벌해온 낙태죄를 폐지했고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한 성폭력을 바꾸기 위한 여성들의 분투는 각계각층의 미투운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은 여전하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면접에서 성차별적 질문을 받고 탈락하거나 배치와 승진, 임금에서 차별 받는다. 디지털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외려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을 양산하고 확산했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거대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행보는 어떠한가? 여성들이 만들어 놓은 성평등의 시계를 오히려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현재 거대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성평등 국가 실현에 의지가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두 후보는 여성가족부를 개편 하겠다고 밝혔다. 성평등이라는 헌법 가치를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부처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에 걸맞게 부처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옳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는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으나 사실상 성평등을 기계적인 ‘양성평등’으로 인식하고 성차별이 남성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자이자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의미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를 했다며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더더욱 문제다.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매년 성폭력 가해자 성별 비율이 남성 95%(법무부, 2020)를 웃도는 상황에서 남성을 포함한 가부장제 사회문화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 이끌어내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의 발생 원인이 성별권력관계라는 것과 성폭력·성차별이 난무하는 현실,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명백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시행되는 제도와 정책은 차별이 될 수 없다는 뚜렷한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도리어 두 후보는 애꿎은 페미니즘을 문제 삼고 왜곡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구조에서 차별을 발견하는 관점이자 언어, 실천이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교제를 막는다’고 발언하고, 이재명 후보는 페미니즘의 개념과 배경을 왜곡하는 글을 공유하며 오히려 차별의 언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런 두 후보의 행보에 여성 유권자들이 실망과 분노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비전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토론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시기에 두 후보는 ‘공정한 양성평등’, ‘젠더갈등’ 따위의 허구적인 담론을 오히려 부추기고 이를 선거에 이용하며 한국 사회 전체를 퇴보시키려 하고 있다. ‘젠더 갈등’은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이에 대한 백래시를 여성 대 남성의 대결 구도로 보는 허구적 담론이다. 현재의 상황을 그저 ‘새로운’ 싸움, 혹은 남녀 간 동등한 사회적 위치와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양상으로만 본다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두 후보의 이런 인식은 그간 여성들이 겪어온 차별과 폭력의 문제와 이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국정운영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 국민들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지금처럼 표 계산에만 골몰하며 현재의 잘못된 흐름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대선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대통령 후보는 필요 없다. 우리는 유권자로서 성평등을 외면하고 퇴행시키는 후보를 준엄히 심판할 것이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대통령 후보가 해야 할 일은 성평등이 무엇인지, 성차별의 원인과 그 현실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성차별을 해소하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차별·성폭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성평등 국가를 만들어 갈 대통령을 원한다. 선거까지 단 4개월, 3.8 세계여성의날 하루 뒤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로서 우리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다.
2021년 11월 19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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