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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후기] 제153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우리는 듣고 있는가?"
  •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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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관하는 '제153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꼭 1년 전인 제1478차 수요시위에서 상담소는 “우리가 들었다. 우리가 답한다”라는 주제를 말했었습니다. 1년이 지나 시위 30년을 넘긴 지금, "우리가 여기서 듣고 있다"는 위로와 연대의 증언이 "우리는 듣고 있는가?"라는 울분 섞인 되물음으로 바뀐 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재작년(2020년) 5월부터 수요시위는 반대 단체의 폭력, 혐오 행위로 평화비 자리에서 점점 더 먼 곳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거센 성폭력 부정주의는 공권력의 은근한 동조와 방조 아래서 집회 방해와 언어 폭력 등으로 구체화되어 시위 참여자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장기 평화 시위'라는 수식어의 참뜻을 정치권과 행정 권력은 '언제든 제쳐둘 수 있는 일상화된 갈등 상황' 쯤으로 해석하는 모양새입니다.

시위 당일, 마냥 밝지만은 않은 날씨와 더불어 매서운 한파가 닥쳤습니다. 이런저런 걱정 어린 손난로를 나누며 상담소 활동가들과 지하철을 타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지은님이 당당한 목소리로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시위를 열었습니다. 첫 순서는 상담소 활동가들의 <바위처럼> 공연이었습니다. 봄은 아직 느껴지지 않고, 겨울은 느리게만 지나가는 2월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혼란스럽고 불안합니다. 하지만 매년 이맘때 이곳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굳센 바위처럼 살아가자"는 노랫말이 울려퍼졌던 것, 앞으로도 울려퍼질 것을 생각하면, 다시 희망과 연대의 끝자락을 붙잡을 용기가 날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며 서로를 북돋았습니다.

이후, 정의연 강경란 연대운동국장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 대선후보 정책질의서 결과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안티페미니즘'을 하나의 선거 승리 공식처럼 철저히 떠받드는 후보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사안 역시 인권과 반성폭력 의제로 인식하기 보다는 단순히 '친여성' 행보로 해석해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뭉개도 괜찮은, 한가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답변 거부는 유권자들, 생존자들의 정당한 '알 권리'를 침해한 것입니다. 반쪽짜리 답변서를 차분히 읽어내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듣고 있는가?"는 되물음이 찬 바닥에 앉아있는 중에도 뜨겁게 차올랐습니다.

이어서 정의연 이나영 이사장이 주간보고를 진행했습니다. 실망스러운 질의 결과에도 분노보다는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와 희망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사회, 소수자 약자, 미래세대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조건임을 모든 시민이 인지하고 실천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헌신해 주시길 간절히 요청한다"고 정치권에 다시 한번 당부했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에 호응하듯 "세상은 이미 변화했다. 우리가 상식이다", "피해자다움은 없다. 우리의 말하기는 계속된다"라는 이번 시위 피켓 문구를 다같이 외쳤습니다. 더 크게, 더 자극적으로 만든 조어보다 상식을, 지치지 않는 연대를 약속하는 말들이 역사 속에서 더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용기 있는 말하기는 기지촌, 이주 여성 지원 단체인 두레방 김은진 원장님,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하윤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대학생 SNS 기자단 김시온님의 연대 발언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박승배님이 보내 주신 글은 정의연 활동가가 대독했습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맺히기도,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전지에 대선 후보들에게 바라는 점을 채워 적은 참가자들이 줄지어 자유발언을 이어갔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상담소의 닻별, 수수 활동가가 성명서를 낭독했습니다. 

수요시위를 다녀와 후기를 준비하며, 이 작업은 어떤 면으로 보나 현장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실패한 글쓰기일 수밖에 없다는 예감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층위의 젠더폭력 이야기가 현장에서 튀어나와 서로 교차되고, 언어로 증언할 수 없는 경험들이 눈빛으로 오고가는 그 순간순간들이 '수요시위'을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담소의 성명서가 지적한 대로, 수요시위는 단순히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들의 구제를 외치는 곳이 아닙니다. 이 곳은 전시 성폭력 문제를 알리고 교육하는 존엄한 현장입니다. 그리고 하윤님이 발언 내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진리처럼 단호하게, 용기를 주듯이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폭력 생존자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시위에서 모두의 말하기를 들으며 우리는 모두가 해방될 때까지 죽여도 죽지 않는 정동의 말하기,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1531번째로 말합니다. 우리는 들어야 할 자들이 들을 때까지 말하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이 후기는 자원활동가 채원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