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단호한 시선]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국회는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 소병철 의원 대표 발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 발의에 부쳐
지난 7월 20일 친족 관계에 있는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소병철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되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그동안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이 일상회복의 조건으로 요구해왔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의 법안 발의를 환영한다.
법안 발의의 배경과 주요 내용은 친족 성폭력 피해의 특성으로 인한 공소시효 폐지의 필요성을 적절하게 짚고 있다. 현행법은 13세 미만의 사람 및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강간, 강제추행, 강간 등 상해ㆍ치상, 강간 등 살인ㆍ치사 등의 범죄 행위에만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친족 성폭력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유 삼아 침묵 강요 및 은폐”되는 현실에서 특정 연령대, 장애 유무만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필요한 법적 개입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만드는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동ㆍ청소년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부모와의 관계는 아동ㆍ청소년 당사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보호와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오히려 자녀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가 되었을 때, 피해자가 그 즉시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부모와의 공간 분리를 진행하기 어려운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이 같은 권력관계 때문이다. 특히 가부장적 가족구조 안에서 남성-가장이 가진 권력이 통제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서 자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친족 성폭력은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범죄행위이다. 법안 발의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친족 성폭력은 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집에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해자는 다양한 통제 전략을 사용하여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피해 증거가 남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또한 피해자가 피해를 인지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하더라도, 아동ㆍ청소년이 원가족과 떨어져 독립된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 ‘가족’을 고발한다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신고가 지연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9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 이후 상담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년 이상인 경우가 55.2%였다. 이는 고스란히 친족 성폭력의 법적 처벌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2021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상담 중 57.8%는 상담을 받았을 때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이후였다. 같은 해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중 친족 성폭력 비율은 2.4%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고 재판하고 처벌까지 이어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법적 처벌이 이렇게까지 힘든 상황에서 진정으로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친족 간 성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적용 배제 대상을 아동ㆍ청소년 피해자로 제한하면서 성인 피해자는 여전히 공소시효 적용 범위에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202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상담 중 38.1%는 피해시 피해자의 연령이 14세 이상이었다. 14-19세 청소년이 26.3%이지만 20세-64세 성인, 65세 이상 고령 피해자의 비율도 11.8%로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족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 피해자들이 고소하기 어려운 취약한 환경을 만들고, 피해를 인지하는 시기와 신고를 결심하는 시기는 피해 생존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든 친족 성폭력에 공소시효 적용 배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폭력적인 관계를 벗어나서 다른 삶을 시작하려는 피해 생존자들이 일상회복의 한 방안으로서 법적 처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작년 1월 모든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양정숙 의원 대표발의)되었지만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피해 생존자들은 법적 정의를 세우기 어려운 제도적ㆍ사회적 구조에 문제제기하며 국가의 책임을 묻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2021년 4월부터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광화문 앞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정기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 생존 기념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친족 성폭력 관련 이슈 대응과 언론 대응, 책 발간 등의 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친족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하여 다양한 워크숍, 토론회, 집회 공동 기획 등 생존자들과의 연대 활동을 이어왔다.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이 말하기까지 걸린 시간의 무게만큼 국회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 논의의 내용은 친족 성폭력 문제가 고발하고 있는 가족 내의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 가족제도 밖의 삶은 떠올리기 어려운 사회적 현실 등에 대한 대안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생존자들과 함께 연대하며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회는 모든 연령에 대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라!
2022.7.30.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