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성명/논평] 새해 계획이 '성평등 실종', '가족주의 강화'라고? : 여성가족부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부쳐
새해 계획이 '성평등 실종', '가족주의 강화'라고?
: 여성가족부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부쳐
정책 목표에서부터 성평등 실종
지난 9일 여성가족부는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배포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여성가족부는 3대 목표로 ①약자에게 더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 ②저출산·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미래인재 양성 ③촘촘하고 든든한 지원을 위한 사회서비스고도화를 설정했고, 그에 따른 6대 핵심 과제로 ▷다양한 가족, 촘촘한 지원 ▷아동‧청소년 보호 강화 ▷5대 폭력 등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확대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 ▷청소년을 미래 인재로 양성 ▷가족‧청소년 지원 서비스 혁신을 설정했다. 목표 및 핵심 과제 차원에서 2022년과 비교했을 때, 성평등 관련 사업이 삭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2022년 성평등 관련 정책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노동시장에서의 성별격차 해소” “민간부문 내 여성 대표성 강화”, “성별임원 현황, 성별임금격차 분석·발표”, “성별영향평가의 질적 제고와 성인지 예·결산의 성평등 효과 분석 강화”,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 등 성차별적 구조 개선에 대한 사업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조직문화 진단 대상기관을 넓히고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성별·세대 간 인식변화와 요구를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기계적인 양성평등 및 역차별론, ‘청년층에는 성차별이 없다’는 왜곡된 인식을 다시 한번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
더 나아가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제시되어있는 ‘여성 경력단절 예방 및 여성고용’ 관련, 양육 및 돌봄 관련 내용은 ‘②저출산‧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미래인재 양성’이라는 목표 하에 재배치 되었다. 청소년은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할 사회 구성원이라기보다는 “미래세대” “미래인재”로 등장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국민의 평등권에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정부, 국민을 인구로 관리하고 인재로 도구화 하는 정부의 기조 및 관점이 다시 한번 확인 되고 있다.
이는 예산에도 반영되었다. 지난 28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올해 여성가족부 예산 중 성평등 정책 예산 비율은 15.7%(성평등 7.0% 권익보호 8.8%)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 전체 예산은 작년 대비 7.0% 증가했으나 성평등 정책 예산은 전체 예산 대비 작년보다 0.7% 감소했다.
여성 지우고 스스로 역할 축소하는 여성가족부
문제는 정책 목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2023년의 업무 추진 여건을 분석하며 “정책 환경 변화에 맞춰, 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필요”하다고 하며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로서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서비스 전달체계 및 타부처 전달체계와의 연계” 정도로 축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제2의 n번방 사건 등을 예로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목표와 핵심과제 어디에서도 ‘여성’은 언급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1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었던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2023~2027)’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젠더기반폭력을 일컫는 ‘여성폭력’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폭력’ ‘5대 폭력’ 등으로 대체했다. 5대 폭력은 윤석열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에서 통칭한 권력형 성범죄, 디지털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범죄를 말한다. 여성가족부 역할을 서비스 전달 정도로 축소하고 여성을 지우면서 ‘5대 폭력’에 대한 “빈틈없는 대응”과 “통합지원”을 하겠다는 계획은 실현 가능한가?
5대 폭력 중 가정폭력·성폭력 대응 계획으로 핵심으로 내건 정책을 보면 ▷남성 피해자 보호시설 신규 설치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의 입소 동반자녀 범위 확대 ▷성폭력 증거채취 응급키트 처치료 상향 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피해자 지원 단체가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성폭력 피해자 무료법률지원 사업 예산 현실화,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대상 확대, 해바라기센터 운영 안정화 및 확대, 무고 역고소 피해자 법률 지원의 연속성 확보, 스토킹 관련 수사기관 교육 등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거듭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여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예방, 인식 및 문화 개선 등과 관련한 사업은 빠져있다. 성폭력 피해를 오직 사법적으로만 접근할 때, 성폭력 판단 기준이 협소한 상황에서 수사·재판기관에서 범죄를 인정받지 못한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권리 보장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성차별·성폭력 경험은 어디에 반영되어 있는가?
2023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서 여성들의 경험은 어디에 반영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평생 여성폭력 피해 경험률은 전체 34.9%로, 여성 3명 중 1명은 평생 동안 전체 여성폭력(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정서적 폭력, 통제, 경제적 폭력) 피해 중 하나 이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여성’은 중요한 정책적 현장으로서 고려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는 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중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20·30 대 여성은 70% 이상인 반면, 남성은 30대 40.7%, 20대 29.2%만이 동의”한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사 결과는 “청년층 중심의 젠더갈등”으로, “법·제도적 측면의 성차별은 개선되어 왔으나 법제도와 관행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차이”로 축소 해석된다. 게다가 이러한 현실분석을 통해 이르는 결론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및 가족형태 변화에 대한 대응 필요”이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혼인·혈연·입양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하고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가족’으로 수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찬성 입장을 철회했다. 윤석열 대통령 및 김현숙 장관 취임 전 2021년 여성가족부는 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에서 '가족 다양성 포용'을 1순위 과제로 내걸며 이를 지지했던 것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는 여전히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겠다’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논의중이다. 성평등은 실종되고 여성은 지워지며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가 국가 중심으로 강화되는 정책사업안에서 여성의 권리 보장에 대한 국가적 비전과 책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젠더 관점으로 국민들의 삶을 살피고 성평등 정책을 수립·이행하는 총괄의 역할을 망각한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끝까지 저지하며 국가 성평등 추진체계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싸워갈 것이다.
2023년 1월 11일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