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거의 한달에 걸쳐 연속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차별의 구조에 맞서는 도전, 평등을 향한 연대>라는 토론회 제목처럼,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하는 차별을 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문제점을 짚어보았어요.
저는 적극적 조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1회차와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에 대한 4회차에 참여했는데요. 오늘은 1회차,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데 무슨 여성할당제?” – 평등의 관점으로 적극적 조치 다시보기> 참여 후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김경희 성공회대 교수님의 발제를 시작으로 토론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고용분야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적극적 조치와 이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요. 적극적 조치의 개념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적극적 조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혹시 머릿속에 여성할당제가 둥둥, 남성 역차별이 둥둥 떠오르지는 않으신가요? 사실 적극적 조치는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그리는 것 보다 훨씬 구체적인 개념입니다. 소위 적극적 조치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할당제가 ‘채용, 승진, 신입생 선발 등에서 사회적 소수적 집단의 수나 비율을 정해 고용기회를 부여’한다면, 적극적 조치는 ‘채용, 승진, 신입생 선발 등의 결과에서 드러나는 과소대표성을 과거로부터 누적된 현재의 차별 지표로 보고, 구체적인 타임테이블을 설계해 개선’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여성을 적게 뽑네? 의무로 채워야 하는 비율을 만들자’가 아니라, 여성 채용이 적은 것을 오래된 차별이 야기한 결과물로 보고 이를 교정하기 위한 적극적으로 조치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는 특정 성별을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실제로 양성평등기본법이 시행된 2015년 전후의 중앙부처 공무원 추가합격자 현황을 비교해보면 양성평등 채용목표제의 수혜자는 남성이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자료집 13-14쪽). 이러한 결과를 앞에 두고 적극적 조치가 역차별을 유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특정한 성역할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승무원은 여자, 기장은 남자가 당연’한 직업적 통념과도 연결됩니다. 즉, 적극적 조치는 성별과 관계 없이, 어떤 분야에서도 차별의 영향에서 벗어나 동등하게 채용될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사회는 적극적 조치를 통해 역차별에 대해 논할 것이 아니라, 지금껏 고용시장에 여성이 설 자리가 현저히 부족했음을 읽어내야 할 것입니다.
찬반논쟁에 대해서도 뜯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적극적 조치를 덮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설 언어를 배운 시간이었어요😅 적극적 조치가 왜 필요한지, 다섯 꼭지로 나누어 살펴볼까요?
기회의 평등👎 vs 결과의 평등👍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한데 뭐가 문제야?” 💥 “출발선이 다른데 뭐가 평등해? 소수집단이 다수집단과 경쟁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평등하지!”
역차별👎 vs 구조화된 불평등👍
“이건 동등한 경쟁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성차별 안 하는데 왜 불이익을 받아야해?” 💥 “차별은 구조화되어 있어. 이걸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워!”
개별적 보상👎 vs 보상적 정의👍
“현대사회는 개인주의야! 다수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내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 💥 “소수집단은 과거부터 불이익을 받아왔어. 다수집단은 이를 통해 이익과 특혜를 누려왔잖아!”
능력주의👎 vs 사회적 효용👍
“능력이 있으면 당연히 채용해. 여성이 적게 뽑힌다고? 능력이 없었겠지!” 💥 “그건 편견이야. 소수집단의 목소리와 아이디어가 나올수록 더 다양하고 새로운 상상이 가능해!”
낙인론👎 vs 소수자 대표성👍
“적극적 조치는 소수집단에 결국 안 좋은 영향을 줘. 약자라는 낙인을 찍는다고!” 💥 “소수집단의 경험과 요구가 정책에 동등하게 반영되려면, 이를 알릴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해!”
저는 아주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지만, 자료집을 보시면 더욱 정돈된 언어의 설명을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자료집 21-25쪽).
마지막으로, 적극적 조치의 개선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적극적 조치가 차별구조를 교정하기 위한 것인 만큼, 더 효과적으로, 더 지속가능하게 실행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공공부문에서 더 적극적으로 적극적 조치를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평가에 적극적 조치 이행에 대한 문항을 필수로 포함하는 등의 의무를 부여해야 하겠지요. 공공부문에서 먼저 발벗고 나선다면, 민간부문에서도 적극적 조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필요성에 공감할 물꼬가 트일 것입니다.
또, 적극적 조치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겠지요. 실제로 얼만큼 채용이 증가했는지 등 적극적 조치의 효과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 기업 내 여성근로자 비율, 퇴직자 비율, 여성근속년수 등의 평가지수를 도입해 장기적으로 차별을 해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실질적인 여성대표성 확보, 적극적 조치의 질적 지표 개발 등을 꼽아주셨어요.
이 모든 과제가 연결되어있음을 이해하고, 개별적으로 해소하기보다 상호 영향을 확인하고 진행 상황을 살피며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어 두 번째 발제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 변호사님이 차별금지법과 적극적 조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먼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의되었던 차별금지법안과 이미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외국의 법률을 함께 보며, 차별금지법이 적극적 조치의 도입을 보장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 박주민, 권인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법안에는 차별 해소를 위한 잠정적 우대조치는 차별로 보지 않음을 명시되어 있었고, 영국의 평등법과 독일의 일반동등대우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주의 연령차별금지법에는 ‘긍정적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었는데, 이 역시 ‘특정 연령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이익을 해소할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와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통해 여러 적극적 조치의 사례를 확인했는데요. 저는 개인적인 경험이 겹쳐보인 ‘고졸 여성 직원에 대한 승진 성차별’ 진정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자료집 38쪽).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간 영리기업에서 근무했는데요. 근로자 수가 백 단위인 꽤 큰 규모의 조직임에도, 당시 사내에 과장 직급을 단 여성 직원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고 차장 직급은 오직 한 명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직무는 성별에 따라 나뉘어져 있고, 기업의 매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직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남성 직원의 것인 ‘보통’의 회사였지요.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만 왔던 이야기를 직접 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해는 10년 이상의 연차에도 사원으로 일하던 한 고졸 여성 직원이 승급 대상이 되는 해였어요. 하지만 업무 능력과 경력, 고과 평가에 대한 언급은 하나 없이, 같은 팀의 2년차 남성 직원에게 “대리를 주게 되었다”는 팀장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너는 맞벌이 부부로 남편도 돈을 벌고’, ‘사원 달고 있으면 거래처에서 무시한다’와 같은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이해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에도 이미 비슷한 이유로 남성 직원에게 승진을 ‘양보’한 적이 있었을 테지요.
저는 결국 퇴사하기 전까지 승진자 공고에서 어떤 여성 직원의 이름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에게 ‘고졸 여성 직원을 위해 직급이 하나 더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사원 위에 주임이 생겼다고, 이제는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남성 직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직급이었습니다. 이것이 어째서 고졸 여성 직원을 위한 일인지, 회사는 이것을 진정 평등한 직급 체계라고 생각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습니다만😓, 이런 부당한 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지며 수많은 사람이 겪은 공통의 경험을 구조적 차별이라는 단어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적극적 조치는 제도적 차원에서 이러한 개인의 경험을 차별로 인정하고 교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 조치가 과거에 차별이 있었다고 증명한 것에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 조치가 현재 존재하는 격차를 완화하고 개선하기만 하면 실행 가능하다는 것이 국제법적인 합의입니다(자료집 45쪽).
아까 차별금지법이 이러한 적극적 조치의 도입을 보장할 수 있음을 확인했는데요. 박한희 변호사님은 이를 통해 차별금지법이 구조와 관행을 바꾸고, 능력주의의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차별을 재생산하는 현실에 균열을 내고, 차별에 대해 새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는 양태로 전개되도록 가능성을 생성한다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기존의 질서와 토대가 한 번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끊임없는 저항 속에 차별의 재생산이 조금씩 실패하며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고요. 저는 김경희 교수님의 발제를 들으며 적극적 조치가 능력주의에서 벗어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문득 의문스러웠는데, 그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며, 자기 전 종종 떠올랐던 막막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활동을 하다보면 가끔 허무할 때가 있어요. 여성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은 이렇게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는데,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인지, 목소리를 듣고는 있는 것인지, 사회는 영영 차별의 구조를 대물림 할 것 같고…. 흔히들 현타라고 하지요🙃
토론회를 통해 이 막막함과 허무함, 그리고 불안함을 조금은 털어낸 것 같아요. 김경희 교수님과 박한희 변호사님의 멋진 발제뿐 아니라, 토론회에 참여해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내는 동료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 켠이 든든해졌거든요. 저는 이제 천천히라도 변화가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초조해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순간까지 이 용기를 잃지 않고 가열찬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
<이 글은 회원홍보팀 산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