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낙태죄’가 완전히 폐지된 지 2년 반, 그러나 정부는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조치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서 여러 조치가 필요하지만, 우선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는 유산유도제 도입과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는 중입니다.
1. 유산유도제 도입‧필수의약품 지정 촉구 다수인민원 액션
현재 유산유도제는 최근 도입된 일본을 포함하여 95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고, 30년간 안전하고 효과적인 임신중지의 방법으로 사용이 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경제적 부담, 장애 등의 이유로 인한 이동의 어려움, 수술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원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아 인터넷 사이트나 SNS에서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고 이는 약물의 품질이나 유통과정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건의료상 필수적인 의약품에 대한 접근은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임넷은 이러한 필수의약품의 안정공급에 책임을 가진 식약처에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기 위한 다수인 민원 액션을 시작했습니다.
다수인 민원은 식약처장의 답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수인 민원의 특성상 직접 서명을 해서 원본을 제출해야 했죠. 먼저 의사와 약사들의 민원을 전달했고 이후 시민들의 서명을 모으기 위해 모임넷은 아이다호 집회, 한국여성의전화 페스티벌킥 등 외부행사에 발로 뛰며 서명을 모으고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1,625명이 다수인민원에 서명을 해주었어요!!
직접 우편으로 보내주신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6월 26일(월), 모임넷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수인 민원 대표이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인 나영님,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이동근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서영님,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의 진은선님이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에 대한 책임이 있는 식약처가 재생산권.건강권 보장을 위해 유산유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 기자회견 발언 전문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로 접속해주세요!
https://www.sisters.or.kr/activity/law/6839
2. 한국-일본 활동가 웨비나: 유산유도제, 재생산 건강과 권리 이슈들
방금 위에서 일본이 유산유도제를 최근(2023.04) 도입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일본의 유산유도제 도입 과정은 어땠을까요? 모임넷은 한국과 일본의 재생산권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유산유도제 도입 과정을 참고하여 한국 유산유도제 도입을 위한 운동전략의 힌트를 얻기 위해 6월 28일, 저녁 8시에 재생산권 운동을 하는 한국-일본 활동가들의 웨비나를 온라인 zoom으로 개최했습니다.
첫번째는 <‘낙태죄’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한국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현황>이라는 제목으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나영님 발표로 시작했습니다. 나영님은 한국에서 2019년 4월 11일,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되고 이후 법이 개정되지 않아 2021년 1월 1일부터 법적 효력이 상실되어온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권리와 접근성 보장을 위한 정책과 인프라의 공백이 있는 현실을 짚으며 ‘임신중지 건강보험 전면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및 접근성 확대’, ‘보건의료 체계 구축’ 등 현재 모임넷이 국가에 요구하는 사항을 이야기했습니다.
두번째로, 미사코 이와모토님은 <일본 임신중절 정책의 역사>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일본에서 ‘낙태죄’는 1907년, 메이지 시대 서양식 형법을 도입하며 포함되었는데 일본에서 ‘낙태죄’는 아직도 유효한 법 조항입니다. 2차세계대전 시 나치 정권 하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정신장애인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할 수 있는 ‘국민우생법’이 존재했습니다. 이와 함께 패전 후, 베이비붐이 시작되며 당시 인구 수를 조절하는 기조 아래 우생학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합법적 임신중지’ 사유에 경제적 사유가 추가되었습니다. 이후 종교 협회 등에 의해 경제적 사유를 임신중지 조항에서 삭제하는 시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강제 불임수술 사례들이 드러나며 일본의 장애여성 활동가가 국제회의에서 이를 비판했고 국제적 반대여론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1995년, 일본은 결국 우생학 조항을 삭제하고 모성보호법으로 개정했으나 아직까지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세번째 발표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이동근님의 <한국의 유산유도제 도입 현황과 향후 과제>입니다. 동근님은 발표에서 식약처가 미프지미소(유산유도제)를 신속하게 허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약물 허가를 자꾸 미뤘고 그 결과, 유산유도제 허가 신청을 한 현대약품이 신청을 철회해온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현재 모임넷은 유산유도제를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고 희귀.필수의약품 센터를 통한 공적 도입 등 다양한 운동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약물 비용, 사용 전 초음파 검사나 산부인과 전문의 독점 처방 등 약물에 대한 접근성 보장 등 미래에 유산유도제가 도입되더라도 남아있는 과제들을 설명했습니다.
네번째는 쿠미 츠카하라님이 발표한 <경구 임신중지약 메피고팩 승인을 둘러싼 과거.현재.미래>입니다. 스스로 임신을 통제한다는 인식이 낮고,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와 수단에 접근하는 장벽이 높아 처음에 일본의 시민들은 임신중지 약물에 대해 관심이 낮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2020년 경부터 여성운동을 통해 임신중지 약물에 대한 정보제공과 로비 활동이 시작되었고 여성기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집중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의원들의 국회 질문으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 2023년 4월에 드디어 유산유도제인 메피고 팩이 승인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체 보호법 지정의사의 확인 하에 투여해야 하고 당분간 입원 또는 원내 대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접근성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현재 등록 의료기관이 14곳에 불과하고 비용이 수술적 임신중지만큼 비싸서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가 얼마나 확산될지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습니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아직 유산유도제 도입이 안 된 한국, 유산유도제 도입이 되었지만 접근이 까다롭고 아직 ‘낙태죄’가 폐지되지 않은 일본. 이 두 나라의 재생산권 현황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습니다. 2020년 경 일본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언론, 정치 영역에서 어떻게 목소리를 모아내고 운동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제한으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의 상황을 보며 유산유도제 도입이 끝이 아니라 이후 약물에 의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유산유도제 도입과 임신중지 접근성 향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