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제9차 한국 정부 본심의에 관한 논평
장관도 없고, 진전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5월 14일(화, 스위스 제네바 현지 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여성차별철폐위원회 (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 이하 ‘위원회’)의 제9차 한국 정부 본심의가 진행되었다. 한국 정부 대표단으로는 지난 심의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 대표부의 대표로 참여했던 것과 달리 김기남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을 필두로 하여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외교부 등이 참여하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단법인 온율,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젠더교육플랫폼효재, 장애인권법센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12개 여성/시민사회단체 및 네트워크(이하 ‘참가단’)는 제네바 현지에서 본심의에 참석하여 한국 정부의 발언과 위원회 질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답변을 주시하였다.
많은 CEDAW 위원들은 현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를 비롯한 심각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퇴행과 한국 사회 안티페미니즘 경향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특히, 대통령이 한국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사실과 지난 2년간 성평등 정책 축소와 관련 예산 삭감, 여성차별 해소 정책이 비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실질적 성평등 정책 추진과 여성 권리의 강화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여가부 폐지 계획을 철회할 의향이 있는지 질문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여가부 폐지가 성평등 기능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또한 양성평등위원회 운영을 통해 여성·성평등 주요 정책을 조정, 심의하고 있다고 했지만, 양성평등위원회는 2023년 단 두 차례 서면으로만 개최되었고, 2024년 현재(2024년 4월 15일)까지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는 등 성평등 정책 추진 심의·조정기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지난 제8차 CEDAW 한국정부 심의 당시, 정부는 CEDAW 위원회로부터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직속기구로 설치할 것을 권고받았지만 여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정책 기조를 즉각 폐기하고 국가 성평등 기구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 예산, 조직,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관련하여, 한국정부는 또 다시 사회적 공감대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답변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했다. 한국정부는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받은 이래로 지금까지 '사회적 공감대'를 운운하며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이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법무부 등 정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을 위한 노력에 전혀 기여한 바 없다. 특히, 4개의 법안이 발의되고 공청회가 진행되는 등 지난 제21대 국회에서의 진전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성취였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정부의 기여, 노력이 전무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미 높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회와 정부뿐이다. 정부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형법 297조 강간죄를 동의여부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위원들의 질의가 있었다. 이에 법무부는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피고인에게 사실상 입증책임이 전환되며, 여성의 의지를 폄하하는 것이라 더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형사범죄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강간죄 구성요건이 ‘동의’로 바뀌어도 형사재판의 근본 체계는 변경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부의 무성의한 답변은 동의를 판단하는 성폭력 국내 판례 및 해외 입법례가 다수임에도 동의는 입증하기 어렵다는 편견과 왜곡을 확산하는 발언이다. 또한, 강간죄 개정이 여성의 의지를 폄하한다는 것은 성폭력을 성차별적 구조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보지 않고, 여성 개인의 일로 사소화하는 통념이다. 2022년 여성가족부 통계에서도 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인한 경우보다 가해자의 ‘강요’(41.1%), ‘속임’(34.3%)에 의한 피해가 더 많았다고 보고된다. 정부는 강간죄를 개정하여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이행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가정폭력이 처벌되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CEDAW 위원들의 질문에 법무부는 ‘가정의 유지’를 우선으로 하는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처벌법에 따라 모든 사건을 송치하고, 임시조치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법연감 및 경찰청 국회 제출 자료 등 다수의 가정폭력 범죄 관련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 건수 중 20% 미만만 검거되고, 검거된 인원의 약 10%만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며, 약 50%는 가정보호 사건으로 송치된다. 구속 건수 역시 전체 검거 건수의 1% 미만이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어도 약 50%는 불처분되며, 처분되는 건도 대부분 상담위탁 및 사회봉사 수강명령이며, 피해자 안전을 위한 접근행위 제한은 0.3%에 불과하다. 전기통신 이용 접근행위제한 및 친권행사 제한, 감호위탁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한국 정부는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 개정 의향에 대한 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여성폭력범죄 통계에 대한 CEDAW 위원의 질문에 여성가족부는 2022년 여성폭력통계를 최초로 발표했다고 답했으나, 이는 기존 실태조사를 조합한 것에 불과하여, 피/가해자 관계, 폭력 지속기간 등 여성폭력의 발생 맥락을 파악할 수 없다. 한편, 경찰청은 피해자, 피의자 관계를 세분화한 고도화된 범죄통계를 발표한다고 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다.
CEDAW 위원은 성매매여성이 피해자로 인지되지 않고 처벌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그동안 CEDAW가 지속적으로 성매매여성의 비범죄화를 권고해왔으나 한국 정부가 이행하고 있지 않은 상황을 지적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성매매처벌법 상 ‘성매매피해자’ 규정을 언급했을 뿐 위원회 권고를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성매매여성을 비범죄화하라는 위원회의 이전 권고를 수용하여 성매매처벌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CEDAW 위원의 질의에 대해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및 성매매 강요의 창구로 이용되는 E6-2 제도 문제에 대해 2020년 1월부터 비자 연장 등 업무를 타인이 하는 것을 금지하여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줄였다고 답변하였다. 또 외국인초청 업체에 대해서는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이 직접 업체를 방문하여 점검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CEDAW는 인신매매 피해에 대한 개인진정사건에 대해 2023년 11월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개인진정사건의 해당 업체 역시 현장점검을 통과하였으나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인신매매, 성매매 강요 피해가 발생하여 현장점검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CEDAW 역시 2023년 11월 개인진정사건에 대한 권고에서 E6-2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라고 권고하였다. 한국 정부는 인신매매 창구로 이용되는 E6-2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인신매매 문제에 있어 CEDAW 위원은 인신매매 법의 모호함, 가해자 처벌의 부재, 피해자 처벌 문제 등에 대해 질의하였다. 한국정부는 2023년 1월부터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하여 피해자식별지표를 개발, 배포하였으며 상담전화를 설치하여 피해자 접근성을 높였다고 답변하였다. 공공기관 및 관련 피해자 지원기관에 인신매매 방지 교육을 의무화하여 인신매매 인식을 제고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가해자 기소와 처벌,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산 확보, 피해자 처벌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CEDAW 위원은 일본 정부 대상 배상 판결 결과에 대한 이행 방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을 방지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법 개정에 대해 질의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2015년 한일합의 정신에 입각해 대응해나가겠다고 답변하였다. 2015 한일합의는 이미 피해자의 의견을 묵살한 채 일본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어서 각계에서 이를 비판하고 폐기를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2015년 합의에 입각해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밝히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피해자 관점에서 근본적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2022년 대법원은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관련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것을 판결하였다. CEDAW 위원은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후 조치와 피해자 보호를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 질문하였다. 한국 정부 대표단은 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관련 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언급하고 이 법의 제정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은 그동안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서 법 제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미군 ‘위안부’ 문제 및 피해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는 여성 정치 대표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의 여성할당 30%는 여전히 권고조항에만 머물러 있다. 이에 주요 정당은 여성후보 30%를 지키지 않고 있고,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여성 후보자는 지역구 후보자 총 699명 중 99명, 14.16%에 불과했다. 이는 4년 전 제21대 총선 당시 지역구 여성 후보자가 19.05%(전체 지역구 후보자 총 1,118명 중 여성 후보자 213명)인 것과 비교했을 때 대폭 줄어든 것이다. 정부는 지난 제8차 CEDAW 한국 정부 심의에서 후보공천과 관련하여 벌금부과 등의 강제이행조치를 수반한 여성할당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 받았으나 여전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직선거법 제47조 2항(지역구 여성 후보 30% 이상)을 의무규정으로 개정하는 등 여성 정치 대표성 제고를 위해 즉각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 대표단은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구체 조치의 도입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 결정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규정에 대한 일부 위헌적 요소를 인정한 것에 불과하고, 낙태죄가 전면 위헌이라거나 폐지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의도적 오독을 내세우며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현장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개정입법 시한(2020.12.31)을 지나 형법과 모자보건법 14조는 현재 법적인 효력을 갖지 않음에도, 보건복지부는 21대 국회에 발의되었던 전 정부의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여전히 개정 방향으로서 실효를 가지는 것처럼 답변하였다.
또한 위원들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에도 한국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 적용, 유산유도제 승인 등 구체적인 권리 보장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는 수년 째 아무런 진전 없이 반복되는 답변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형법 조항의 폐지와 함께 더 이상 적용될 필요가 없는 모자보건법 14조를 기준으로 하여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고 답변한 정부는 스스로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의 권리 보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논의와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인 상담 제공에 대해 급여 적용이 되고 있다고 언급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의료인의 상담에 대한 수가 적용은 현실적으로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의미와 효과가 없다.
한편, 유산유도제의 승인 절차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는 승인 신청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고 했으나 이미 승인 신청 이후 거의 4년이 지나도록 승인 추진 절차에 전혀 진전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안전성이 모두 확보된 유산유도제 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도적 지연과 무능력을 보여주는 답변이었을 뿐이다.
포괄적 임신중지에 관한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는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를 법제화하였다. 이는 취약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임신에 대해 다른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보호자 등 제3자에 의해 익명출산을 할 수 밖에 없게 내몰리는 결과를 야기하며, 그로 인해 아동이 원가정과 영구히 분리되고, 아동의 정체성과 알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한편, 장애여성 임신의 경우 보호자가 장애여성의 익명출산을 사실상 강제할 수도 있기에, CEDAW 위원은 보호출산제의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할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최대한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장애)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답변하였다. 하지만 이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수렴할 어떠한 대안이나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선언적 수준의 원론적인 답변으로, 장애여성이 익명출산을 강제당할 상황에 대한 사실상의 대책이 전무한 점을 오히려 드러낸 것이다.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과 관련하여 반차별, 교육, 건강, 결혼 및 가족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CEDAW 위원들의 질문이 제기되었으나, 정부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정부의 노력을 언급하거나 법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반복하는 등 무성의로 일관했다. 위원회가 국가 성교육 표준안 개정에 관한 지난 권고 이행과 2022 교육과정 개정의 문제,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의 수술 요건과 비혼여성의 보조생식술 접근성의 제한, 결혼과 가족 관계의 영역에서 동성 배우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 차별금지에 대해 질문하고,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수술요건의 폐지와 성별인정법 제정, 동성결혼 법제화 등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부성주의 원칙 폐지 및 협약의 16조 1항 (g) 유보 철회 계획에 대한 위원의 질문에 관하여, 자녀의 성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무성의한 답변을 하였다. 결혼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이라는 CEDAW 협약의 기본원칙 조차도 사회적 공감대를 핑계로 이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정부는 하루 빨리 민법 제781조를 개정하는 등 부성주의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
CEDAW 제9차 한국정부 본심의 대응 NGO참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