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후기] 12월 탄핵 정국 돌아보기: 12.3 비상계엄 사태부터 남태령 연대의 응원봉 물결까지
  • 2024-12-31
  • 129

12월 탄핵정국 돌아보기: 12.3 비상계엄 사태부터 남태령 연대의 응원봉 물결까지


12월 3일 저녁,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열고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혼란을 초래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그 누구도 결코 공감할 수 없는 이유였다. 소식을 듣고 오매, 앎 활동가는 국회 의사당으로 달려갔고, 활동가들은 계엄군이 들이닥친 국회의 상황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 앞으로 달려나간 시민들이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았고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 신속하게 국회로 모였다. 계엄이 선포된 지 2시간 만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12월 4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새벽에 있었던 믿을 수 없는 비상계엄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긴급 회의가 열렸다. 국회에 직접 갔던 활동가들의 당시 상황 브리핑과 시민단체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진행한 기자회견 내용이 공유됐다. 기존에도 대통령 퇴진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이전과는 다른 국면이 이어질 것이었다. 이날 밤에도 마침 광화문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페미니스트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더 많이 보이고 들려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이하 민구페퀴)’가 결성됐다. 초기 한국성폭력상담소,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언니네트워크 등 6개의 단체로 구성되었던 네트워크는 현재 9개의 단체(12월 31일 기준)로 활동하고 있다. 광장에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구호들이 빠르게 큰 피켓과 현수막으로 제작됐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언하며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극우세력을 선동하고 결집시키기 위해 여성혐오를 이용했다. 그리고 젠더폭력 문제를 성평등 관점이 아닌 힘의 논리로 접근해왔다. 공원 산책로에서 여성이 성폭력으로 희생되자 대로변에 등장했던 장갑차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폭주하는 국가권력으로 국회에 재등장했다.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구호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는 올해 상담소에서 북클럽과 시리즈 집담회를 진행하며 다듬은 ‘폭주하는 남성성’ 키워드를 활용한 구호다. 이외에도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 물러나라.> <시민의 삶 볼모 삼는 정권 장악 끝장내자> <위헌적인 계엄, 동조한 국민의힘? 다 같이 물러가라!>라는 구호들이 현수막, 피켓으로 등장했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과 군사령관들과 내란을 모의하고 있던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2월 6일, 따뜻한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진행하려 했던 한해보내기는 분노로 활활 불타올랐다. 상담소 활동가들은 송년회팀, 집회팀으로 나뉘어 상담소에서 회원들과, 광장에서 시민들과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날이다. 100만 명의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을 가득 메웠다. 상담소 활동가들은 광장의 다양한 시민을 상징하듯 한 글자씩 다르게 디자인된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 피켓을 들고 본회의를 지켜보았다. 탄핵안은 가결 200표가 넘어야 통과된다. 그런데 탄핵안이 안건에 올라오자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제히 퇴장해버렸다. 8표만 있으면 탄핵안이 통과되는 상황이었기에 광장의 시민들과 야당 국회의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결국, 국민의힘은 밤이 다 되도록 3명의 의원을 제외하고 국회의원의 역할인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두 번째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날이다. 지난 국민의힘 의원들의 행태를 보고 분노한 시민들은 매일 규탄 집회를 하고 국민의힘 의원에게 항의 문자를 보내고 근조 화환을 보내고 각 지역 사무실 앞으로 찾아갔다. 당은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갈팡질팡하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국회 앞에는 지난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국민의힘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눈치를 본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여전히 ‘탄핵 반대’가 당론인 것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민구페퀴’ 피켓이 순식간에 동난 것을 보며 광장에 수많은 페미니스트와 퀴어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본회의 시간. 여당 의원들이 이번에는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집계가 끝나고 국회의장이 입을 여는 순간, 모두가 숨죽였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투표수 300표 중 가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 앞이 환호성으로 가득 차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자주 선곡되고 이화여대 시위에서 여성들의 민중가요 급의 지위를 얻게 된 노래인 만큼 의미 있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열흘 만에 탄핵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180일 이내에 탄핵 심판이 열리고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대통령직이 완전히 박탈되기 때문이다. 탄핵이 선고되기까지 이제 매주 집회가 있을 예정이다. 광장은 좁은 여의도에서 넓은 광화문으로 옮겨갔다. 12월 21일 탄핵안 가결 이후 첫 주말 집회가 있던 날, 먼 지역에서 며칠간 트랙터를 끌고 집회에 참여하려고 했던 농민들의 길이 남태령에서 막혔다. 서울 길목에 진입하자 경찰들이 이유 없이 트랙터를 막고 농민을 끌어내리려고 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이날 광화문 집회가 끝나고 남태령으로 옮겨갔다. 경찰은 차벽을 세운 채 밤이 깊도록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대하는 시민들은 막차가 끊겨도 집에 가지 않고 길바닥의 농민들과 함께 했다. 정말 추운 밤이었다. 상담소는 이 현장에 있지 못했지만, 응원봉을 든 여성과 퀴어 시민들이 발언하고 “차 빼라!”라고 구호를 외치며 언 밤을 뜨거운 연대로 지새우는 것을 라이브로 함께 한 활동가들도 있었다. 경찰은 대치 끝에 22일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차벽을 철수시켰다. 2016년 공권력에 의해 결국 막히고 말았던 남태령을 2024년에는 농민과 시민의 연대의 힘이 뚫은 것이다. 한강진역에서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트랙터가 입장하는 것은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남태령에서의 연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투쟁하는 안국역으로도 뻗어 나갔다.




민구페퀴 회의에서 지금의 광장은 2016년 퀴어와 페미니스트가 가시화되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광장과는 다르다는 소회를 나눴다. 이제는 <평등한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이 읽히고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과 퀴어가 광장에서 발언하며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빛’인 응원봉과 깃발로 광장을 물들이고 있다. 한편, 내란 수괴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법적 처벌은 아직 한참 진행 중이고 광장은 2025년에도 계속해서 열릴 것이다. 이제 가시화를 넘어 ‘남태령 대첩’에서 시작한 연대의 힘과 2030세대 여성이 주축이 된 응원봉 물결의 힘을 받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2025년에도 답답함과 분노와 작은 승리와 뜨거운 연대가 있을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민구페퀴는 앞으로도 성평등한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랑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