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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후기]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규탄 기자회견 및 긴급행동 참여 후기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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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률팀 활동가 도경입니다.

다소 뒤늦은 후기를 작성하며 상담소 활동 후기란을 살펴보니, 비상 계엄 이후 탄핵 정국과 관련된 아주 많은 활동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후기가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후기는 조금 생생하고 재밌게(?) 읽으실 수 있게 써보려 노력하였어요.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있은 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까요? 인권위는 일주일이 넘게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가,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2월 11일 안창호 위원장의 '성명 발표'로 입장을 갈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 어디에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내용은 없었으며 '국가 권력 행사가 헌법에 위반된다면 인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식의 애매하고 모호한, 원론적인 말들 뿐이었습니다.

인권위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구나, 하고 실망감이 커져갈 무렵,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은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 5인이 이른바 "윤석열 방어권 보장"을 권고하기 위한 안건을 인권위의 전원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안건 내용을 뜯어보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국회의장, 헌법재판소장, 각 법원장과 수사기관에 대해 국무총리 탄핵심판 철회, 국무총리 탄핵심판 우선 처리, 대통령 방어권 보장, 계엄 관련자 영장 청구 자제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이번 비상 계엄 선포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인권위에서 다루어왔던 내용도 아닐뿐더러, '국가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는 인권위의 설립취지에 반하여 오히려 부당하게 행사된 국가권력을 비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고 생각하여 긴급하게 인권위 규탄 기자회견을 기획하고, 방청연대를 조직하였습니다. 해당 안건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 2025년 1월 13일, 오전에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전원위원회가 열리는 3시 보다 조금 이른 2시경 국가인권위원회 앞에는 여러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당일 전원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치한 건물 14층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모인 시민들은 거의 100여명에 가까웠는데, 모두가 전원위원회 방청신청을 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방청신청을 하지 못한 시민들은 원래 회의실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14층까지 올라가 침묵 시위를 하는 방식으로 인권위의 문제적인 안건 상정 및 의결을 비판하려하였으나, 현장 혼란 방지를 위한 인권위 측과 경찰의 사전 조치로 방청 신청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1층에서 엘리베이터 자체를 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미처 방청 신청을 하지 못한 상태여서 1층에서 자리를 지키며 위의 소식을 전달받으며 응원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1층에 극우세력들이 10여명 정도 들어오게 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피곤한(?) 4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시민들을 향해 "장애인은 집으로 가라"고 혐오 발언을 하거나, "이것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난하거나, 갑자기 소리치며 "윤석열을 보호하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참고 참다가 "그런 말씀 하지마세요"라고 말하는 시민들을 향해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과 건물관리를 맡은 직원들은 "양쪽 다 계속 언성을 높이면 건물 밖으로 퇴거시킬 수밖에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는데, 저희는 정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싶었을 뿐이었고.... "저희가 반박하기 전에 제발 저쪽 좀 조용히 하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하였지만 제재가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 분들도 너무 힘들어보여서 막 더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ㅎㅎ.. 새삼 "우리"가 얼마나 점잖게 시위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층에서 극우 세력들과의 부딪힘이 있는 동안, 방청 신청을 하고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전원위원회 개최 자체를 규탄하며, 회의실 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였습니다. 당일 14층 복도는 방청을 하러 올라간 시민들과 취재하러 온 기자들, 그리고 인권위의 현 상황을 참담하게 바라보며 반성을 촉구하는 인권위 내부 직원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결국 3시간 가량의 대치 끝에 인권위는 당일 전원위원회 개최를 미루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행동이 부당한 안건 상정을 막아낸 것입니다. 



어느덧 어둑해진 건물 밖에서 승리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당일의 규탄행동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당일 규탄행동 이후, 안건 상정에 이름을 올렸던 5인의 인권위원 중 2인이 사퇴 및 안건 철회 의견을 밝히는 성과가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안건이 폐기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앞으로의 인권위가 부디 영영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회원 여러분들도 함께 살펴봐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법률팀 도경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