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를 환영한다
― 국가폭력의 인정을 넘어 실질적 책임 이행으로 나아가라
2026년 3월 7일, 3·8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성평등과 여성 인권을 담당하는 장관으로서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히며,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표명하였다. 정부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인권침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과였다.
주한미군성착취규명공동대책위원회는 이번 정부의 공식 사과를 환영한다.
해방 이후 수십 년간 주한미군 기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국가안보, 한미동맹, 외화 획득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됐다. 이른바 미군 ‘위안부’로 불린 이 여성들은 인신매매와 구조적 강제 속에서 미군에 의한 성착취를 당했으며, 한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체계를 유지해 왔다. 여성들은 ‘외화를 버는 애국자’로 동원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공주’라는 낙인 속에서 극심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기지촌 성매매는 결코 개인의 선택이나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주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지촌을 조성·관리하고, 성매매를 사실상 방조·장려하며, 여성들의 신체와 삶을 통제하였다. 강제적 성병검진, 폭력적 단속, 낙검자 수용소 운영, 강제 치료, 직업보도소 수용 등은 모두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치와 관리의 대상으로 삼아 자행한 조직적 인권침해이자, 명백한 국가폭력의 증거이다.
이러한 국가폭력에 맞서 2014년 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 122명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피해자들은 기지촌 성매매가 국가에 의해 조성되고 관리된 조직적인 인권침해이자 폭력이었음을 분명히 밝히며,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과 성매매 조장·방조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2022년 대법원은 국가가 기지촌 성매매를 중간 매개하고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는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을 사법적으로 확인한 첫 역사적 판결이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 이후에도 국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국가의 공식 사과와 실질적인 피해 회복 지원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빈곤과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사회적 고립 속에 놓여있다.
무엇보다 폭력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직접적인 가해자인 주한미군은 지금까지 어떠한 책임 인정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인신매매와 성착취의 구조적 실체가 확인되었음에도 책임 이행이 지체되어 온 현실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되어왔다. 이에 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 117명은 지난 2025년 9월 5일, 기지촌 성매매를 조장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한 주한미군의 책임을 묻기 위한 역사적인 소송을 시작했다. 이는 기지촌 성매매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또 한번의 중대한 도전이다. 주한미군과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로 이에 응답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번 정부의 공식 사과는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이행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진정한 사과는 말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삶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진상을 온전히 기록하고, 가해의 주체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과정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제 정부는 국가폭력의 인정을 넘어 실질적인 책임 이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한미군성착취규명공동대책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실질적 배상, 의료·주거·돌봄을 포함한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
둘째, 정부는 기지촌 성매매를 조장·관리한 국가 정책 전반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에 착수하고, 관련 자료의 발굴과 보존, 공식 기록화 작업을 책임 있게 추진하라
셋째,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은 미군 ‘위안부’의 실질적인 책임자이자 직접적인 가해자인 주한미군의 책임 인정과 사과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 정부는 주한미군의 책임 규명과 공식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외교적·정책적 노력을 다하라
넷째, 전시성폭력과 같은 군대에 의한 여성폭력이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과거의 문제를 역사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비롯한 여성폭력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실효적 제도 개선과 정책적 대응에 나서라
다섯째, 기지촌 성매매의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주한미군과 미국은 미군 ‘위안부’에게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주한미군성착취규명공동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과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의 존엄과 권리를 회복하는 실질적 조치로 이어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국가와 주한미군이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이행할 때까지, 우리는 피해자들과 함께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2026년 3월 24일
주한미군성착취규명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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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과에 답합니다
2026년 3월 20일 미군 위안부 새움터 전국 회의 -
미군 위안부 입장문을 발표하며 우리는 2026년 3월 7일 국가의 사과를 받은 미군 위안부들입니다. 2026년 3월 6일 늦은 저녁, 다음날에 열릴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국가가 우리에게 사과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한미 양국 정부가 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하라고 싸워왔지만, 막상 사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하고 쉽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하는 거면 미군 위안부들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표하는 세 명의 미군 위안부(주한미군 대상 손해배상청구소송 새움터 원고단 대표 박○○, 지○○, 새움터 실행위원 서○○)가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님이 전하는 사과의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 장관님이 단상에 올라가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서로를 붙잡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나중에 장관님 손을 붙들고도 그저 고맙다고 하면서 울기만 했습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사과를 하다니,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몇 사람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전국에 있는 미군 위안부들이 함께 모여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26년 3월 20일 새움터가 전국 미군 위안부 모임을 열어 줬고 평택과 동두천, 군산, 대구, 의정부, 양주, 남양주에 사는 80명의 미군 위안부들이 평택에 모였습니다. 일이 있거나 몸이 아파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120여 명의 미군 위안부들에게는 전화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미군 위안부 새움터 전국 회의에서는 모두 함께 원민경 장관님이 발표하는 장면을 화면으로 보면서 국가의 사과를 들었습니다. 사과를 듣고 나서 다들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박수 소리도 얼마나 우렁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의 사과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깊이 토론했고 비밀투표로 우리의 입장을 결정했습니다. 투표 결과는 찬성 77명, 무효 3명이었습니다. 투표가 끝나고 평택에 사는 위안부 7명이 사전에 준비해온 입장문 초안을 전국 회의에 제안했습니다. 투표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어서 입장문 초안을 두 개나 준비해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대표해 앞장서 싸우고 있는 미군 위안부 7명이 한없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전국 회의에서 이루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모두의 의견을 모아 입장문 초안을 수정하여 채택하였습니다. 이에 우리의 입장문을 정부에 전달하고 사회에 발표합니다. 우리의 심정을 글로는 충분히 담을 수 없었고 이런 일이 서툴러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에, 용기 내 발표합니다. 이 입장문은 새움터 전국 회의에 모인 미군 위안부 80명의 의견이고, 저희가 국내외의 이름 모를 수많은 미군 위안부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건 아닙니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미군 위안부들과 미국으로 이주한 미군 위안부들에게도 국가가 사과했다는 소식이 곧 전해지길 간절히 희망하고, 그분들의 의견도 우리 사회에 전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국가의 사과에 대한 미군 위안부 입장문
우리를 걱정해주신 분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국가의 사과를 듣고 나니 어떠냐고 다들 궁금하실 거 같아서 빨리 답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사과를 듣고 나서 우리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무하고 말문이 막혀 하염없이 눈물만 났습니다. 동시에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왜 말을 못 하냐 묻겠지만, 우리 같은 일을 조금이라도 겪으신 분들은 우리 심정을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려온 국가의 사과였지만, 너무 늦은 사과였습니다.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는 이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듣고 나니 그 고통이 더 또렷하게 몰려와서 온몸이 덜덜 떨리고 치가 떨립니다. 어디에 가서 제 어린 시절을, 제 청춘을 돌려달라고 해야 하나요. 그냥 옛날에 인신매매되고 미군들에게 당했던 일들만 자꾸 떠오르고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누가 옛날 생각 좀 안 나게 해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없어질 고통인 것 같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듣기 전에는 사과를 듣게 되면 무조건 기쁠 것 같았고 우리의 고통도 금방 회복될 것 같았는데 지금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빠져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1990년대 새움터를 중심으로 모였던 우리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를 지키며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분들이 대통령이 될 때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믿으면서 국가의 반성과 그에 맞는 정책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망했고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국가가 사과하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좌절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2014년 6월 25일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을 때만이라도 사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사이 우리의 소중한 동료들이 국가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어 죽음이 코앞에 와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사과를 받아서 우리가 그 마음을 얼마나 누리겠습니까. 사과가 조금만 빨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왜 진즉에 해주지 않았을까요.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님이 대통령이 되신 후에도 이번에는 정말 다를 거라는 위안부들과 다른 대통령들과 다를 게 없다는 위안부들이 서로 내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를 거라고 주장한 위안부들이 더 많아서 우리의 실명을 적은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미군 위안부 문제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원민경 변호사가 장관이 되셨을 때도 솔직히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주장했던 위안부들이 결국 이기고야 말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님,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님, 과거에 국가가 우리에게 행한 인권침해를 인정해주시고 우리의 남은 삶을 걱정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국가가 우리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싸워주시고 기원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습니다. 박정희 시절, 잘못된 정책을 세워서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다 사라져 어디 가서 잘 먹고 잘살고 있고, 그 일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과하고 미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마음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만, 이 사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마음 한편에는 풀리지 않는 원한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과에 미군의 사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사과는 반쪽짜리 사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민경 장관님이 사과하실 때 그 옆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함께 서서 우리에게 사과해야 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주범인 미군은 사과하지 않고 왜 우리 정부만 사과하는 건지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미군은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습니까? 왜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고, 우리 정부만 사과하는 것입니까? 미군에게 맞아 죽고 칼에 찔려 죽은 위안부가 한둘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은 생존자들일 뿐입니다. 그렇게 죽어간 위안부들은 이름도 성도 없이 미군 부대 주변 야산에 묻혀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힌 미군과 미군 부대는 반드시 우리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문제 많은 인간들을 군대로 끌어들여 한국으로 보내고 미군들이 미군 위안부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걸 알면서도 이를 모르는 채하고 미군들만 싸고돌았던 미국 정부도 우리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얼마 전 국회 토론회에서 경북대 교수님 한 분이 미군이 가해자인데 법이 미군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있다고 하면서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과한 국가에 또 부탁드립니다.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법은 피해자들이 만든 법이 아닙니다. 양국의 합의 때문에 피해자들은 또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억울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미군의 책임을 꼭 밝혀주십시오.
원민경 장관님이 사과와 함께 우리에게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겪은 고통과 인권침해의 역사가 잊히지 않고 남은 생애 동안 조금이나마 존엄한 삶을 영위하며, 훼손된 명예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사과가 진심이라면 이 약속이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구체적인 방안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십시오. 말뿐이 아닌 실현 가능성이 있는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가 중요합니다. 당하고만 살아서인지 이번에도 말로만 끝날 것 같아 불안합니다. 이재명 정부이니까 사과가 이루어진 것처럼 이재명 정부이니까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주실 걸로 믿습니다. 우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안을 만들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한미군 대상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하여 주한미군과 미국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십시오. 우리는 미군을 상대로 소송하는 게 정말 두려웠습니다. 기지촌에서 우리가 봤던 미군과 미군 부대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송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한을 풀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오랜 세월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용기를 냈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겪은 피해를 이해하고 기꺼이 돕겠다고 나서는 단체들이 있었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변호사님들도 우리를 지원하겠다고 기꺼이 나서 주셨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2025년 9월 5일 117명의 미군 위안부들은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은 우리의 삶을 스스로 바꾸고 싶고 죽기 전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싸움이고, 이미 죽어간 미군 위안부들을 대신한 싸움입니다. 국가의 사과를 받았지만, 그건 미군의 사과가 없는 반쪽짜리 사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다들 나이가 들고 아프지만, 미군의 사과와 보상을 받을 때까지 단 한 명의 미군 위안부라도 남아있다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일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국가에 요청합니다. 하루빨리 우리가 이 소송에서 이겨 미군의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둘째, 미군 위안부들이 겪은 인권침해가 되풀이되지 않고, 이재명 정부의 사과와 약속이 다른 정부에서도 지켜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주십시오. 우리만을 지원하는 법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전쟁이건 평시이건 군대가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고, 군대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법률을 원합니다. 우리의 싸움이 헛되이 끝나지 않고 우리 다음 세대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도록 꼭 이런 법률을 만들어 주십시오.
셋째, 노후에 더 이상 떠돌지 않고 살 수 있는 안정적인 거주 공간을 마련해 주십시오. 이제 나이가 많이 들고 몸이 아파 여기저기 이사 다니는 것도 힘이 듭니다. 나이가 많고 병들었다고 집주인들이 방을 잘 내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맘 편히 의탁할 수 있는 방 한 칸 마련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되도록 우리를 돌봐온 사람들 근처에서 살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우리를 지원하는 단체와 사람들을 늘려주십시오. 우리를 돕는 단체는 전국에 몇 없고, 그마저도 직원이 적어서 도움이 필요해도 도와달라고 연락하는 게 미안할 정도입니다. 우리를 지원하는 단체도 늘리고 직원도 늘려서 우리가 맘 편히 도움을 청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다섯째, 우리를 돌봐온 사람들이 우리의 장례를 주관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가족이 없고, 있어도 오래전 연락이 끊겼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삶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싶고 존엄하기를 바랍니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동료들의 인사를 받으며 평안히 잠들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무연고자는 무연고자여서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모른 척하는 가족들 때문에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가 없습니다. 장례법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를 돌봐온 사람들이 우리의 마지막 길에 가족이 돼 유언대로 장례를 치러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생존자들과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다 함께 모여서 떠나간 이들을 기리고 위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십시오. 이재명 대통령님이 경기도지사였던 시절 미군 위안부 지원 조례가 만들어졌고 경기도에 사는 미군 위안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원은 월 10만 원이고 그마저도 기초수급권자나 경기도가 아닌 곳에 사는 위안부들은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지원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생애가 너무 비참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십시오.
일곱째, 일상생활 지원사업을 확대해 주십시오. 나이가 많고 아프다 보니 점점 혼자 생활하기가 힘이 들고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방에서 너무 외롭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조금 덜 아픈 위안부들이 더 아픈 위안부들을 도우며 살아왔습니다. 그걸 우리는 동료지원사업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들 힘들게 살고 있어서 착한 마음에만 기대 도움을 주고받는 게 한계가 많습니다. 그래서 동료지원사업과 같은 돌봄 사업을 확대하여 일상생활도 지원받고 외롭지 않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덟째, 미군 위안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바뀌도록 교육과 홍보, 연구를 해주십시오.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고 명예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나서서 우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우리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교육할 수 있도록 그런 일을 하는 기관과 사람들을 지원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남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주한미군 대상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역사에 잘 남을 수 있도록 이런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을 지원해주십시오.
우리는 평생 기다려온 국가의 사과를 받았습니다. 아!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의 사과를 받다니! 우리 생애에 이런 일이 생긴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국가의 사과인데도 우리의 상처가 너무 깊다 보니 지금도 실감이 안 나고 얼떨떨해 감사의 마음이나마 제대로 전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과를 전해준 국가와 사회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죽는 날까지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조금은 달라질 앞날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과를 계기로, 국가와 사회가 우리의 목소리를 끝까지 책임 있게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우리의 삶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싸움이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6년 3월 20일 미군 위안부 새움터 전국 회의 참여자 80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