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식약처는 답하라! 유산유도제 승인 촉구 100인 민원 디데이(D-day) 선포 기자회견

오늘 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신중지의약품을 신속하게, 그리고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도입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국에서 낙태죄의 효력이 사라진 지 수년이 지났습니다. 임신중지의 비범죄화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둘러싼 국가의 형사적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법적 처벌이 사라졌다고 해서 임신중지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권까지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임신중지의약품은 여전히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았고, 제도의 공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들이 의료현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제한됩니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이 제도 안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의약품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이들은 품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의약품의 이용, 적절한 복약상담의 부재, 부정확한 정보획득, 그리고 이상반응 관리와 대처를 못하는 환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임신중지의약품에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자유를 실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만드는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더 이상 임신중지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2024년 헌법에 여성이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국민적 합의로 명시했습니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그 자유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의료환경과 선택지가 함께 보장되기 위한 실질적 방법을 제공하는 노력도 뒷받침되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임신중지는 무료이며, 정부 공식 사이트에서 임신중지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합니다.
여기서 “국민 안심이 기준입니다”라는 식약처에게 묻고 싶습니다. 회색시장을 통해 임신중지 의약품을 실제로 이용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이유로 허가가 되지 않아 되려 제도 내에서 이용하지 못하는 현재의 공황 상태가 과연 더 안전합니까?
의약품은 제도 안으로 들어와야 안전한 이용과 의약품의 품질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용법과 주의사항을 안내할 수 있고, 이상반응을 관리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의료진과 약사가 안전한 사용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약품 규제기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식약처는 임신중지의 기준이 없어서 허가를 못한다고 하지만 법제처가 이번에 꼬집었듯 이는 식약처가 해야할 답이 아닙니다. 미프진은 세계 여러 국가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 왔고, 세계보건기구도 의약품 이용을 상황에 따라 권고하고 있으며, 필수의약품 목록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 유효성을 과학적 근거에 따라 심사하고, 필요한 사람이 검증된 의약품을 제도 안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식약처가 답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도 이제 형식적인 자유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규제와 과학이 답할 시간입니다. 의학적으로 타당한 선택지들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는 현실이 됩니다.
식약처에 요구합니다.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판단을 미루지 마십시오. 한국 빼고 이미 이 의약품을 사용한지 오랜 시간이 흘러, 너무 많은 자료가 쌓여 있는 이 의약품에 대하여 과학을 근거로 판단하십시오. 제출된 자료를 안전성, 유효성, 품질이라는 의약품 허가의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투명하게 심사하십시오.
과학은 저희 편이며, 결국 미프진은 도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마냥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임신중지의약품이 허가 그리고 필요한 사람이 실제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까지 계속 묻고 요구하겠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9.28) >의 날까지 임신중지의약품 품목허가를 위한 필요한 심사와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것을 요구합니다.
해야할 일을 회피말고 허가하십시오.
이용의 문턱을 만들지말고 안전한 이용이 가능하도록 관리하십시오.
실제로 이용할 수 있게 하십시오.
선택권은 선택지가 존재할 때에만 실질적인 권리가 됩니다.
발언2. 김주희(간호사페미니스트네트워크 널싱페미)
저는 의료 현장의 가장 예민하고 취약한 공간인 신생아실에서 일했던 간호사이기도 합니다.
신생아실에서 매일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며 제가 통감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생명을 보살피는 보건의료의 현장은 결코 방치나 무책임 위에 서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여성에게 안전하고 존엄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때 비로소 모두의 건강권이 바로 선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낙태죄의 효력이 사라진 지 수년이 지났지만, 보건의료 현장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습니다.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은 지난 시간 동안 임신중지를 결정한 당사자들의 위험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경로로 약을 구하며 투약법조차 몰라 공포에 떨고, 이상반응이 나타나도 처벌이나 낙인이 두려워 응급실조차 찾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식약처는 그동안 모자보건법 개정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입법부로 책임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지난 8월 19일, 법제처조차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안전성이 확인된 의약품에 대한 수입 허가를 금지하는 것은 모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보호라는 모자보건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며, 법 개정과 상관없이 식약처의 유산유도제 승인이 가능하다”고 법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온 지금, 식약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관계부처 논의를 착수하겠다며 또 다시 '검토 중'이라는 말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됩니다. 식약처의 존재 이유는 행정적 눈치보기가 아니라, 과학적 기준과 안전성에 따라 의약품을 제도권 안으로 가져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미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사용 중인 유산유도제를 한국 식약처만 외면하고 있습니다. 의약품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야만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인이 정확한 복약 지도와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투약 후 상태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제도 내에서 검증된 의약품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현재의 공백 상태야말로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식약처에 강력히 촉구합니다.
더 이상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판단을 미루지 마십시오. 법제처 해석에 따라,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안전성·유효성·품질이라는 의약품 허가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투명하게 승인 절차를 마무리지으십시오.
우리는 오는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까지 식약처가 유산유도제 승인을 완료할 것을 요구합니다.
만약 그때까지도 행정 절차를 지연시킨다면, 9월 29일 100인의 민원인과 함께 직접 이곳 식약처로 찾아가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선택권은 실질적인 선택지가 존재할 때에만 비로소 권리가 됩니다.
모든 여성과 당사자가 차별과 위험 없이 안전하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그날까지, 널싱페미는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하겠습니다.
발언3. 유지연(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모든 보건의료 서비스는 여성의 자율권, 사생활 보호권, 비밀유지권, 정보에 입각한 동의권과 선택권을 포함한 인권에 부합해야 한다”
“안전한 임신중지 및 임신중지 후 관리를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것, 임신을 지속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보건의료로서의 임신중지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하는 권리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후피임약과 같은 다양한 피임 수단, 임신중지 및 임신중지 후 관리에 필요한 의약품 등 필수 의약품이 구비되어야 한다.”
“임신중지약물 등 성·재생산 건강 서비스 제공에 있어 기술적 진보와 혁신을 도입하지 않거나 이를 거부할 경우, 의료서비스의 질이 위협받게 된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이 명시하고 있는 국가의 의무입니다.
국제사회는 임신중지를 포함한 성·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와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왔습니다. 프랑스는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고, 여러 국가에서는 원격 처방을 포함, 임신중지약을 도입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하며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이 지났지만, 정부는 여전히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세계 101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임신중지약은 한국에서 세 차례나 품목허가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은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의약품을 정식 의료체계 안에서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이는 단순한 제도적 미비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그리고 자신의 몸과 삶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국제인권기준에 국가가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국가의 책임은 단순히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안전하고 적절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필요한 정보와 의약품을 제공하며, 경제적·사회적 장벽 없이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더 이상 책임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임신중지약의 안전하고 신속한 도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의약품의 안전성과 정확한 사용법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당사자들이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인권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국가의 역할은 선택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자신의 선택을 실현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발언4. 공혜원(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사무국장)
2021년 상반기까지 임신중지 약물을 신속하게 도입하겠다던 식약처의 입장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해 왔지만, 식약처는 법 개정을 핑계로 아직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9일, 법제처도 법 개정과 관계없이 유산유도제 허가가 가능하다고 해석했습니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도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고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하여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쌓인 경험들과 세계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을 좀 살펴보십시오. 유산유도제 도입은 법 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식약처가 허가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임신중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산유도제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 살거나, 이동에 제약이 있거나, 돌봄과 노동 조건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거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청소년, 이주민/난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진료 거부를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임신중지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사람들, 상대방이나 가족의 통제와 폭력 때문에, 혹은 사생활과 안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임신중지 방법입니다.
그래서 유산유도제가 어떻게 도입될지도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도입되거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특정 진료과나 특정 의료기관에서만 처방받을 수 있다면, 불필요한 추가 검사나 의료기관 안에서의 복용을 요구한다면, 약이 도입되더라도 약이 필요한 사람들의 접근성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도 이러한 제한 없이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당장 유산유도제를 허가해야 합니다. 유산유도제는 세계보건기구가 2005년에 지정한 필수의약품이고, 전 세계 100여 개국이 허가하여 안전한 임신중지에 사용하고 있는 약입니다. 더 이상 안전성과 유효성 검토를 이유로 지연시키지 마십시오.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은 식약처의 약 허가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식약처 허가에 이어 신속하게 안전하고 포괄적인 임신중지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하십시오. 이는 전국 어디에서나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고, 약 또는 시술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여야 하며, 비용 때문에 임신중지가 지연되거나 안전하지 않은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도록 건강보험 적용을 비롯한 경제적 접근성이 보장되는 체계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식약처에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인 9월 28일까지 유산유도제를 허가하십시오. 허가하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우리는 약 도입을 시작으로 누구나 낙인과 차별 없이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