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독립적인 외부감시를 위해 국회에 군인권보호관 설치해야
1. 윤 일병이 사망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군 복무 중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생명을 잃은 故윤 일병의 명복을 빌며, 그 유가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2.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으로 군 사법제도 개혁과 군대 내 인권실태 개선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아졌지만, 지금껏 무엇 하나 바뀐 것이 없다.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의 최종 권고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그쳤고,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군대 내 인권 보장을 위한 '군인권기본법', ‘군인인권보호관 임명 등에 관한 법률’, ‘군사법원 폐지’ 등 3대 법률 제·개정안은 아직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국방장관은 “기존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권고안과 국회의 제시안을 토대로 국방부 혁신과제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번에도 시간끌기로 버티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 군 사법제도 개혁은 결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수차례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군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 바 있다. 2007년 군은 지휘관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관할관 확인조치권과 보통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군 사법제도 개혁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약속을 번복하고 그 간의 논의와 개혁안을 뒤엎었다. 군은 그동안 군의 특수성을 앞세워 지휘관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법체제를 고집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군사법체제가 군인의 인권보호 역할은커녕 오히려 군대 내 인권침해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집단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의 사인을 군이 조작·은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일반 장교가 재판관이 되는 심판관 제도의 폐지는 물론이고, 지휘관이 형량을 임의로 감경할 수 있는 관할관 확인조치권 역시 아예 폐지해야 한다. 나아가 현재의 군사법원을 폐지하고, 일반법원에서 군인이 범한 죄에 대해 재판하는 방향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4. 군이 지금까지 보안상의 이유 등을 들어 일체의 외부 감시와 고충처리기구를 거부해온 것 역시 군대 내 인권침해를 지속시킨 원인 중 하나다. 그나마 군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고충처리기구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이용 실적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민·관·군 병영혁신위가 외부감시제도 설치를 권고한데 이어, 국회 군인권개선및병영문화혁신특위 역시 ‘군인권보호관’을 국방부 외부에 두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제시했다. 만일 국회가 이러한 제안 취지를 존중해 법률을 제정하고자 한다면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입법 활동을 바탕으로 제도 운영의 실효성을 확보하도록 그 소속을 행정부나 국무총리가 아닌 국회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발생한 군 인권침해 사건 축소, 은폐 의혹을 돌이켜 볼 때 군인권보호관이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립적인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국회는 군 인권개선 노력의 기본으로서 군인 역시 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주체라는 점과 국가가 이를 보장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군인권기본법 제정'을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5. 우리는 군이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을 어떻게 은폐·축소하려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또한 과거 군이 스스로 한 군 개혁 약속을 유야무야 번복했던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 윤 일병 사망 1년이 지나서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에 군의 개혁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불신하는 목소리가 높다. 군이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국회가 나서서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법률안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지난 한 해, 군대에서 군기사고로 사망한 장병수가 76명이나 된다. 더 이상 공정하고 민주적인 법제도가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부감시가 부재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이름의 윤 일병이 생기도록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