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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교육

여성주의적 담론생산을 위한 연구와 반성폭력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공유합니다.
[2003. 6. 5] <5월포럼>포럼후기
  • 2005-09-16
  • 3884
지난 30일, '줌마네'에서 진행되고 있는 표현예술기법을 이용한 마음의 힘 기르기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계신 이안혜성 선생님을 모시고 '여성주의 상담의 실제'라는 주제로 분석심리학과 여성주의심리학의 관점에서 여성의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살펴보고, 예술치료를 통해 상처받은 여성성이 어떻게 치유해 가는지, 즉 어떻게 자기를 실현해 가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날은 현재 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 및 상근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평소 우리 상담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도 참여하여 시종일관 진지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이안혜성 선생님의 원고를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상처받은 여성성의 치유과정

-예술 치료적인 접근
이안혜성

(1) 자기 부정의 경험-존재감을 확인할 수가 없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아들을 바라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딸로서 부모에게 섭섭함을 안겨준 존재로 또는 아들은 아니지만 딸도 괜찮다는 식으로 딸은 아들에 비해 열등하거나 두 번째로 중요한 제 2의 성으로 인식되어진다. 또한 여성이 가져야 될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성은 남성성에 비해 열등한 성향으로 간주되어진다. 여성으로서 여성성을 가지게 되면, 남성에 비해 열등한 성이 되고 또한 여성성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면 정체성 형성에 실패하게 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여성성을 남성성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규정하는 가부장적인 남성성을 구현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들은 의식의 영역뿐만 아니라, 깊은 정신의 차원에서도 자기부정의 경험을 하게 된다. 가부장적인 남성성의 에너지에 의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원형적인 여성성과 단절된 여성들은 존재감을 확인할 수 가 없고, 자신을 깊이 사랑하거나 신뢰하기 어렵고 자신을 부정하고 비하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을 신뢰할 수 없는 여성들은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의 강력한 존재에 의존하게 된다. 이의 강력한 존재는 가부장적인 사회 규범일 수 있고, 그것을 내면화한 아버지나 남편 등 남성세계일 수 있다. 이러한 여성들은 정신의 뿌리가 뽑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2) 타인의 욕구에 부응하는 가짜자기로 살아가기
-분노와 자책, 우울
인간은 자아의 외계와의 적응과정에서 그 사회나 시대에 적합한 특수한 적응방식을 갖추게 된다. 그것은 집단적인 가치규범을 토대로 한 행동양식으로 외적 인격, 또는 페르조나(persona)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집단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집단에 의해서 요구되는 태도, 생각, 행동규범, 역할을 의미한다.(이부영, 2001)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하기에 각각의 성역할에 맞게 여성은 여성의 페르조나, 남성은 남성의 페르조나를 쓰고서 사회생활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페르조나를 자아와 동일시하고 사회의 집단적인 요구를 자신의 것 인양 착각한다.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고, 남성은 남성다워야 한다는 성역할에 근거한 페르조나의 강요는 진정한 자기실현이라는 과정에서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융은 "집단에 어울리는 페르조나를 만드는 일은 진정한 자기희생과도 같은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페르조나의 동일시로 말미암은 심혼의 상실을 무의식은 견디지 못한다"(이부영, 1998)라고 했는데, 내면과 연결되지 않은 사회적 요구에 의한 여성으로서의 페르조나는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무시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짜 자기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김영애는 "한국여성들의 경우 이러한 심리적 경계선이 특히 잘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 문화가 관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나와 타인에 대한 경계선이 약하고 부모와 자녀간의 경계선 또한 약하며, 여성들은 특히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살게 요구되기 때문에 더욱 더 이 심리적 경계선이 잘 형성되지 못한다. 결국 성격적 장애의 중요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불분명한 자아경계선의 문제는 한국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 문제는 여성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여성들에게 더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한다.(김예숙, 1997 재인용)
여성에게는 순종적이고 타인의 요구에 봉사하도록 요구하고, 이러한 성격이 여성답다는 것으로 합리화된다. 따라서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가 아닌 타인의 욕구가 무엇인지 읽어내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의 욕구는 방치된 채 타인의 욕구를 민감하게 읽어내기에 이른다.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고,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에 다른 사람을 통제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를 잠재우고 타인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는 억누르기 어려운 분노가 자리 잡게 되고,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있기에 그 분노는 자신에게 향해 자책을 하거나 분노를 억압하게 되면 무기력과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여성들은 의견을 자주 무시당하고 침묵을 강요받으면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되며 점차로 그러한 감정들을 두려워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되고 감정을 드러내는 용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여성에게 결혼은 자기 욕구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자기 아닌 타자를 위한 삶을 살 것을 강요하는 삶의 현장이다. 여성이라는 그 존재 자체로서의 존귀함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야할 아들을 낳아야만, 자신의 욕구에 우선하여 남편이나 시집식구들에게 잘 해야만 여성의 존재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문화적인 틀이 바로 결혼이다. 자기 없고 타자의 삶을 살 것을 강요하는 결혼 속에서 여성의 투과적이고 메조키즘적인 성격은 유지되고 더욱 악화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주체적인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이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인간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보고 있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현실의 결혼 속에서 그 심리적 주체성 확립과 실현이 지속적으로 좌절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의 경우, 결혼을 감금, 굴복, 추방, 죽음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3) 폭력과 억압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다

여성들은 타인의 부당한 행위나 폭력에 대해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갖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피해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것들은 상처 입은 여성성적인 정신(feminine psyche)이 나타내는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적 남성성에 의해 정신이 마비되어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원형적인 여성성과 단절 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자연처럼 모성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격렬하고 가혹하게 잔인하게 보복을 원하는 에너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여성성과 연결되어 있을 때 여성들은 자신이 공격당할 때 정당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남성성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경우, 공격을 그대로 받으면서 고통을 받는 피해자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성폭력의 경우, 여성들이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성적 폭력 앞에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갖지 못하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거나 피할 수 있는 경우에도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비난하기보다는 피해자인 자신을 비난하곤 하는데, 이는 성폭력을 성관계로 인식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가부장적인 성문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성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경우, 가부장적인 문화에 의한 부분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는 보다 더 깊은 정신의 차원에서의 마비와 분리와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의식적으로 분명히 저항해야 한다는 것, 또한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로 깊은 정신의 차원에서의 마비되어 외부의 가부장적인 공격에 수동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3. 치유과정 및 자기실현 과정

가부장적인 문화와 그 문화를 대변하는 아버지의 남성성에 의해서 억압당한 여성들의 상처받은 여성성이 나타내는 증후군은 깊은 자기 불신, 자학, 우울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차원 뿐만아니라, 깊은 정신의 내면에서의 치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남성성에 의해 마비된 여성의 정신 내면에 숨겨진 힘을 찾아내고 이 힘을 통해 자신 안의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자신의 창조성을 회복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다. 내면의 힘을 찾는 것은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원형적인 여성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원형적인 여성성은 깊은 내면의 자기(self)의 한 부분으로 이것의 회복을 통해 진짜 자기에로 이를 수 있는 자기실현이 가능하다. 정신의 깊은 곳에 있는 원형적인 여성성은 주로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나타난다. 상징은 개인이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선험적인 자료로서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무의식의 창조적인 콤플렉스에 의한 것이다.(김진숙, 1999) 이에 예술치료 과정에서 이러한 내면의 원형적인 면을 살펴보기 위해 예술작품에 드러나는 상징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노력하였다.

예술치료란, 바로 가부장적인 남성성에 의해 손이 잘린 소녀들이 치유를 위해 들어가게 되는 자연과 같은 의미일 수 있다. 손 없는 소녀는 모성성과 여성성의 상징인 자연 속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과 대면하고 스스로 손을 치유하게 된다. 예술치료에 참여한 여성들 역시 자신의 잘려진 손을 치유하기 위해 예술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고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치유과정은 또한 자기와의 일치가 실현되는 자기실현과정과 동일한 의미이다. 이 과정에서 치료자는 가부장적인 남성성에 의해 박탈과 상실을 경험하고 깊은 내면과의 연결이 단절되어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이 내면의 원형적인 여성성과 연결될 수 있도록 양육적이고 지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