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교육
*사진설명: 수강생들이 교육장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다.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강사가 노트북을 바라보며 설명하고 있다.
100시간 동안 배우는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 그 절반을 지난 시점에 도착한 수강생 지현님의 후기를 나눕니다. 성찰과 배움, 성장의 이야기가 물결처럼 어우러진 지현님의 후기를 함께 읽어볼까요?
"일주일에 네 번, 아침 8시 30분에 집을 나선지 3주가 되었다. 출퇴근이 없거나 불규칙적인 일을 해왔던 엄마가 거의 매일 같은 시간 집을 나서는 모습이 낯선 아이들은 "엄마 왜 자꾸 어디가?" 하면서 나의 달라진 일상에 관심을 보였다. 허겁지겁 아침식사를 하면서 대답했다. "엄마 공부하러 가. 많이 배우고 와서 너희들도 가르쳐줄게."
3주차에는 청소년 성문화, 사이버성폭력, 성소수자, 이주여성, 성매매산업,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존재들과 그만큼 다양한 폭력에 관해 배웠다. 다양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 뿌리에서 나온 문제들이 아닌가. 생각이 많아져서 두통이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 뿌리를 갉아먹는 두더지가 되는 상상을 했다.
차별금지법과 반성폭력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해왔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보탬이 되었나 돌아보았다. 포괄적 성교육을 지향하는 성교육 활동가로 일하면서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실천을 해야 세상이 바뀐다"고 나는 뭐 대단한 실천을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말뿐이었던 것 같아 어깨가 움츠려졌다.
책상을 옆으로 밀어두고 몸을 움직인 자기방어훈련 덕분에 움츠렸던 어깨를 조금 풀었다. 하나의 방어기술을 적절한 때에 사용할 수 있으려면 1000번의 반복연습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겁을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성폭력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일도 1000번 정도의 반복이 필요하지 않을까.
3주차의 마지막 날인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배우자에게 말했다. “수업이 너무 좋아. 진작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이제라도 들어서 다행이지. 진짜 너무 좋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얻어간다. 무엇을 얻었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좋은 것임은 분명하다. 내가 얻은 것보다 더 많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후기를 쓴다고 자원했다. 고통스러운 수업의 연속이었는데 왜 이렇게 기쁜지 모르겠다.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집 어린이들에게 언제쯤 이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모두 너무 중요한 이야기라서 하나도 빠짐없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아, 이제 '가르친다'기보다는 이렇게 말해야지. "너희들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언어를 함께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