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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싸우는 영혼, 변화하는 여성들 : 강간 문화에 도전하는 정치적 행위로서의 자기 방어 훈련
  • 2007-09-11
  • 3808
싸우는 영혼, 변화하는 여성들
: 강간 문화에 도전하는 정치적 행위로서의 자기 방어 훈련


키라(여성주의자기방어 프로젝트 팀원)


<상황>
막차 시간의 지하철.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
아까부터 내 옆에 앉아있는 아저씨의 몸이 나의 오른쪽 몸 전체를 압박해온다. 술냄새와 체온 때문에 아주 불쾌하다. 몇 번 엉덩이를 살짝 오른쪽으로 옮겨서 압박을 줄여보고자 했건만 더 밀착될 뿐. 아직 도착하려면 많이 가야하는데...작은 목소리로 ‘저기요, 아저씨’..라고 말해보았지만. 아저씨의 얼굴과 손이 내 쪽으로 아예 떨어지려는 순간,
 
아저씨의 몸을 확 밀고 내 허벅지 위에 있는 아저씨의 손을 던지듯이 밀어내면서
‘팔 좀 치워주세요.'
생각보다 큰 나의 목소리.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
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갑자기 버럭 소리 지르는 아저씨
‘응...내가 일부러 그런 줄 알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기집애가 어디서 애비뻘되는 사람한테 소리를 질러 응?’
‘어디서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이죠? 그리고 아저씨가 우리 아빠야? 아니잖아? 응?
나만한 딸 있다고? 그 딸 참으로 불쌍타. 너 이러고 있는 거 딸도 알아? 쪽팔리게.’
‘아니 이게 점점 더?!’
술이 취했는지 갑자기 열 받았는지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엉거주춤 일어나 손이 올라가는 아저씨.
나도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왼쪽 뺨으로 날아오는 아저씨 오른 팔의 손목을 나의 왼쪽 팔뚝으로 가볍게 막고, 다음으로 날아오는 왼쪽 팔도 오른쪽 팔로 막으면서 오른쪽 무릎을 굽혀 아저씨의 고환으로 짧고 힘찬 한방을 날린다. 이 모든 동작은 아주 짧은 순간에 반사적으로 이루어진 행동이다.

 
위의 상황에 등장하는 ‘나’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멋있다’는 평가일까? 영화 ‘Kill Bill’의 우마 써먼같은 훤칠한 미인의 경우에는 감탄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외모에 게다가 나이까지 어린 여성이라면,
아마 대부분의 반응은 ‘당돌하다’ , ‘어른한테 좀 심한 거 아니냐’ , ‘남자 고환을 치다니, 좀 막 살아온 애 아니야?’라고 가정교육을 들먹이거나 ‘그냥 자리를 피하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 ‘피곤하고 예민한 애 아니야?’ 라는 식일 것이다.
 
자신을 불쾌하게 하는 외부 상황을 ‘불쾌’로 재빨리 인식하며, 그 상황적 판단을 통해 ‘공격’으로 인식한 후, 남자 어른에게 ‘예의바른’ ‘여학생’이 되어야한다는 규범을 깨고 욕설과 반말을 지껄이며, (게다가 어린 여학생이) 자신의 신체적 힘을 사용하여 (다른 곳도 아닌) 성인 남자의 성기를 가격했다는 것은 그 여자를 ‘나쁜 여자/천한 여자’로 판단하게 한다.
 
‘못된 여자/천한 여자(mean woman)’는 ‘여자’답지 않은 여자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자이다. 여자다운 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는 것,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겹겹이 내 몸에 부착되어 자연스럽기까지 한 수천 수만 가지의 ‘여자다움’들에게 안녕을 고하고자 하는 결정이다. 특히 그러한 결정이 자기 자신의 ‘몸’을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할 때, 그 결정의 과정과 함께 여성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혁명적이다. 사회적 규범이 여성을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 취약하다고 명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타인을 공격’할 준비가 된, 혹은 되고자 하는 여성은 이미 다른 방식은 몸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정은 고통스럽지만 즐겁고 짜릿하며 여성에게는 금지되어왔던 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만만하지 않은 여자, 공격적인 여자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self-defenser’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혁명적이다. 여기서  자기 방어는 성폭력 위협 상황에서 ‘싫어. 안 되’라는 의사 표시(No means No)를 명확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넘어, 위험 상황에서 육체적 방어와 공격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개념을 말한다. 이는 사법권력이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저항’과는 거리가 멀다. ‘피해 상황’은 여성에 의해 ‘공격상황’으로 인식되고, ‘저항’과 ‘동의’ 사이의 선택은 몸으로 훈련되어 체득된 ‘적절한 방어와 공격’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의 상황 자체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이다. 못된/천한 여자는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피해 여성상과는 이미 다른 삶의 과정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입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상스러운 욕설을 하고,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 자신을 불쾌하게 하거나 목숨을 위협한 사람의 팔과 다리를 꺾는 여자, 가해자의 눈이나 성기와 같은 급소를 가격하고, 위급 상황을 위해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는 여자, 육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공격자를 위협할 수 있는 여자는 ‘만만하지 않는 여자’이고 ‘여자가 아닌 여자’ 혹은 ‘미친 여자, 공격적인 여자’이다.
 
Martha McCaughey는 자신의 책 「Real knock out : The Physical Feminism of Women's Self-Defense」에서 다양한 자기 방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그 프로그램 중 하나인 ‘Model Mugging’에서 교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성들에게 ‘여성이 공격받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격 상황에서 여성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온 힘을 다해 공격하도록 연습시킨다. 싸움에서 여성의 힘을 키우는 것보다 더 선행되어야할 것은, 여성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의 크기를 키우는 것, 즉 분노한 자신을 인정하고 그 분노를 애써 억누르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때에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공격자를 위협하기 위해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는 연습도 함께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기 위해 여성은 동시에 ‘취약할 수 있는 여성성’에 도전하도록 훈련된다. 즉 싸우면서 상대방이 다칠까봐 염려하지 않기, 욕설을 내뱉는 자신을 어색해하지 않기,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지 않기 등을 훈련받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분노한 상황에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를 자신에게로만 향하는데 익숙한 여성들은, 자신의 몸으로 방어와 공격을 연습 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훈련을 한다. 이는 ‘규범적 여성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여성’이 되어가지 않는(여성성을 탈각시키는)unbecoming lady’ 과정이다.
 

강간 문화rape culture 와 셀프 디펜스
 
강간 문화란 성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여 자연화하는 기존의 성역할 구도는 강간 문화의 전제가 된다. 이는 남성의 성적 공격성과 여성의 성적 수동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공격을 정상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며 그에 대한 여성의 거부나, 거절은 병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 혹은 ‘공격적’인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은 남성의 힘과 여성의 약함이라는 신화에 기대어 수행되는 것이며, 여성의 공격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부적절하다는 신화에 기댄 폭력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신화에 기반한 강간 문화는 우리의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적인 차원에서 자연적인 것, 정상적인 것처럼 부착되는 것이기에  강간 문화는 우리의 몸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몸적 변화, 강간 신화 밖의 여성
 
‘몸으로 경험’되고, ‘몸에 부착된’가부장적 규범과 흔적들을 새로운 몸적 경험을 통해 변화시키기는 것, 그 시도의 하나로서 제안되는‘셀프 디펜스’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운동이고 반성폭력운동이다. 셀프 디펜스는 ‘강간’을 ‘여성에 대한 침해’가 아닌 하나의 ‘싸움’으로 규정짓고 그 싸움에서의 역할-남성의 공격과 여성의 저항 불가-을 파괴시킨다. 강간 가해자를 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를 살해하는 여성은 이미 강간 신화의 밖에 존재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셀프 디펜스는 이미 성별화된 언어들-‘젠더’, ‘공격’, ‘억압’-에 연관된 의미를 변화시키며, 이와 함께 ‘강간’,‘성폭력’의 의미 역시 변화시킨다. 이는 기존의 성차별적 사고들이 사실상 어떻게 ‘몸’의 기능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를 확고히 해왔는지를 드러내 준다.
 
따라서 자기 방어 훈련을 받는 여성은 훈련을 받게 된 계기나 다양한 개인차를 불문하고, 여성의 육체적 취약함과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구성된 젠더 문화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전통적으로 ‘강간’ 상황에서 여성은 두려움의 주체였지만, 셀프 디펜스 훈련을 통해 변화된 여성의 몸은 강간 상황에서 여성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 행위자’로 위치시킨다. 저자는 이것이 ‘여성의 자기 방어 훈련’을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movement으로 전이시키는 지점이라고 설명하며 자신의 셀프 디펜스 이론에 대한 ‘피해자 유발론’의 혐의를 거부한다. 피해자 유발론은 강간문화를 정상화하는 성역할에 충실한 가부장적 설명이자 남성 주체에 의한 설명이지만, 자기방어훈련은 여성들에게 강간문화를 작동시키는 성역할을 상대화하여 그로부터 이탈하도록 고무시키는 운동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방어는 성폭력의 상황에서 저항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죽을 때까지 저항하라’고 말하는 가부장적 명령과도 구분된다. 경찰 수사과정과 재판부에서 말하는 저항의 유무는 여성의 몸을 남성의 몸과 ‘이미’ 같은 것으로 상정한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말하는 자기 방어라는 개념은 여성이 남성의 공격에 반격가능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마음과 몸의 훈련이 되어야만 그러한 저항 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2004년 11월 월례포럼 발제문입니다. 퍼가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