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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대 여성 다른몸되기 훈련 [당신의 시선을 넘어서]
  • 2007-09-11
  • 3484
 

10대 여성 다른몸되기 훈련 당신의 시선을 넘어서

 

 

2007년 5월 19일 토요일 오후, 노원구 어느 도장에서는 거친 열기가 가득 뿜어나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눈빛은 쉴새없이 공간을 날아다니는 공을 쫓고 어깨와 팔, 몸통은 여리저리 위치를 바꾸는 상대방을 마크하느라 힘이 가득 들어간 채 각도를 끊임없이 움직인다. 실내 핸드볼 경기가 한창인 것. 도장 양끝에 매트로 대체한 골대를 세워두고 공을 때려 넣어 점수를 얻는다. 한 팀이 득점하자마자 쉬고 있는 같은 팀 선수들의 환호가 쏟아지고, 곧 이어지는 상대팀의 공격. 속공 패스로 눈 깜짝할 새 득점을 추가하는 팀, 패스미스로 공이 흐르면 미친듯한 몸싸움으로 공격의 흐름을 뺏어오는 팀,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혹은 금세 상대 선수의 기술을 따라 구사하며 경기는 결과를 알 수 없이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

 

2007년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은 “10대 여성 다른몸되기 훈련 - 당신의 시선을 넘어서”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렇게 시작되었다. 10대 여성의 다른몸되기? 자기방어훈련은 위급한 성폭력의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는 호신연습이 아니었나?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다른몸’은 자기방어운동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이 위기 탈출이나 성폭력 상황 모면에 있지 않음을 표현한다. 여성스러운 몸으로 여성다운 삶은 살라는 규범은 성폭력이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강조하지만,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이 남성다움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다움을 유지하며 성폭력 일상문화를 거부하라는 게 과연 가능한가? 가스총과 호루라기를 요란하게 권하지만 ‘반격가능한 몸’이 어떠한 몸인지 상상하고 실천해보라고 일러주지는 않는다. 정말 필요한 것은, 통금시간으로 제약하면서도 가스총만 얹어주는 비약과 모순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대로 부당한 공격을 가려내고, 내가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시도하며 나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판단과 대우를 온갖 방식으로 제압할 수 있는 목소리와 기운, 자기신뢰, 노하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이 자유롭게 운동장에서 체력을 키우고, 몸으로 움직이는 즐거움과 활력을 알고, 공포나 두려움의 제약 없이 누구의 일방적인 도움을 필요치 않고 마음껏 활보하고 주변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진로를 찾고 세계를 여행하고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 그래서  ‘다른 몸’이다. ‘다른 몸’이 되는 것은 ‘어떠어떠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해놓는 어떤 모델을 향해 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찾고 만들고 비끄러져가는, 그 ‘어떠어떠해야한다’는 규범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과정중의 작업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10대 여성의 성인지적 자립’을 지원하는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의 테마기금을 지원받아 진행된다. 10대 여성이 자립을 구상하고 실천하는데 있어 여성다움의 규범을 넘어서 선택지와 관점, 가능성 자체가 확장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몸이 확장되는 체험, 훈련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유효적절한지 실험하고, 그 결과 성인지적인 자립개념의 한 축을 구상해보는 장이다. 그러나 자립이라는 화두는 10대 여성에게만 한정된 주제는 아니다. 쏘녀와 동가(프로그램에 참가한 10대 여성을 ‘쏘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한 활동가들을 ‘동가’라고 부르기로 함.)는 공통의 경험을 나누고, 다른 인식을 배우고, 노하우와 깨달음을 교류하는 관계다. 10대 여성이 자립을 고민하며 갖게 되는 화두와 성인이 된 여성이 되새김질하는 삶의 과제가 만나고 얽혀들면서 새로운 출구도 함께 찾아가보게 될 것 같다.

 

세 달간의 프로그램은 이렇다. 개인이 꾸준히 매일 지속하는 무예, 격투, 혹은 다른 종목의 몸훈련이 기본이 된다. 각자 이름으로 웹까페에 게시판이 개설되어 있다. 이곳에 각자의 수련일기를 쌓아나간다. 중간에 과제도 있다. 같은 도장에 다니는 여성수련생을 인터뷰하거나 그 도장 혹은 그 무예종목이 정해둔 규칙이나 사상을 자신의 생각으로 해설, 해석해본다든지, 관장이 살아온 인생을 인터뷰해본다. 게시판에는 각자 멋진 선수 인터뷰 기사나 나누고 싶은 정보를 올려둘 수도 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변화를 관찰하며 댓글로 격려하고 예리한 조언을 나눈다. 또 한 축의 프로그램은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인데, 다양한 몸체험과 지리산 종주훈련,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몸을 적용해보는 ‘자기방어 컨설팅’, 다른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발굴하고 만나보는 ‘다른 몸 여성만나기’다. 춤쎄라피, 3m 물속도전(깊이 3m 풀장), B-girling, 한강근육탐사(자전거 로드) 등을 통해 다양한 공간을 느끼고 함께 다양한 모험에 도전한다. 지리산 종주훈련은 두 차례의 산행강의와 연습을 하고 스스로 일정과 프로그램을 짜서 5박 6일동안 떠난다. 다른 몸 여성만나기는 그 여성이 일하고 살아가는 공간을 직접 방문하면서 그 여성이 살아온 여정은 몸의 변화와 함께 탐색해볼 것이다. 연애문화 속에서 다른 몸으로 살아가기, 가까운 사람과 관계 맺기, 10대 여성으로서 사회적인 제약에 도전하기, 몸에 대해 통찰하기 등의 주제로 진행되는 자기방어 컨설팅은, 물리적인 몸의 변화에 한정되어 ‘다른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화하며 연결고리를 만드는 시간이다.

    

다른 몸 되기 大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신나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기대되는 우리의 실험과 도전- 분명한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영혼,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 56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퍼가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