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반차별 상상더하기 : 피해나 차별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이 질문은 2008년 반차별공동행동 상상더하기팀의 야심작이자 낚시글로로 손색없는 8월 상상더하기의 주제였습니다. 웬만큼 돈들인 여타 UCC 부럽지 않은 홍보 동영상으로 궁금증을 증폭시킨 8월의 반차별 상상더하기, 바로 <'차별과 피해'를 말하는 순간 증언자를 사회의 무기력한 피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의 규범과 편견을 어떻게 깰 수 있을지>에 대한 절실함으로 기획된 자리였습니다.
각 운동의 영역과 역사에 따라 위 고민이 각 운동에 반영되어온 경험도 다르고, 또 운동 내용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절실함도 조금씩 다른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를 드러낼 때, 우리의 의도가 세상에 호락호락하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의 증언이 어쩔 때에는 고정 관념을 만들어내는 것 같고(인권운동사랑방), 장애 극복기 같이 ‘잘 팔리는’ 스토리만을 원하는 언론에 장애여성이 비혼, 성소수자로 당당하기 살아가고 있다는 ‘삶 자체’를 드러냈을 때 먹히지 않고 오히려 반감을 샀던 경험(장애여성 공감)을 들으며, 이 질문에 대해 각자가 선 위치에서의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별이나 피해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요. 차별이나 폭력을 이야기하기 위해 개인 삶의 경험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통합적으로 드러내면서 차별과 피해를 드러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참, 언어가 없다는 말을 곱씹게 됩니다.
트랜스젠더의 전형적 모습이 이미 언론을 통해 대중화된 마당에,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또 다른 트랜스젠더의 전형을 만드는 건 아닌지에 대한 우려(성전환자인권운동단체 지렁이)가 생기고요. 이는 임금이 체불되거나 사장에게 얻어맞는 모습으로 재현되었던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시혜적 시선을 유지하지만, 반면 이들이 범법자가 된 범죄에 대해서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외국인 혐오증을 드러내는 한국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동안 이주노동자를 어떤 주체로 상정하고 운동을 해왔던 것인지에 대해 돌아보게 됩니다(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여기서 언어가 없다는 것은 하나 하나의 삶을 설명할 해석틀과 그 삶에 대한 공감을 표현할 말이 참 빈곤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의 피해 트라우마가 그 여성의 자위(마스터베이션) 경험과 함께 이야기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집니다.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가 자위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은밀히/충만히 채운다는 말이지?”라는 식이죠. 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이는 불연속적 경험이 아닐 수도 있죠. 시간의 굴곡에 따라, 그리고 예기치 못한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개인의 삶은 통합적으로 구성됩니다. 다만,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회적 규범의 언어로는 이 삶의 통합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한 사람의 경험 안에는 이미 모순적이고 복잡한 가치와 기준이 공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들의 모든 경험이 성폭력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질문하게 된다는 고민을 드러내며, 반성폭력운동의 ‘폭력 피해’라는 언어가 여성들의 ‘언어 없는’ 다른 경험들을 잠식하는 것의 위험을 공유하였습니다. 피해나 차별을 이야기한 것이 궁극적으로 현실 개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답답함과, 새로운 활로에 대한 절실함으로 각 단체의 경험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의 삶을 더 통합적으로, 더 스스로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타내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하여 고심해 온 단체들의 활동과 지향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었죠.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장애여성이 피해나 차별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닌 그들의 삶을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오히려 반감을 사기도 한다면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중적이고 집단적인 편견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자기 표현매체-연극이나 퍼포먼스 등-를 통한 문화 운동만큼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 없다는 경험을 나누었지요. 실제로 장애여성공감의 활동을 떠올려보니, 사진전시, 연극 등 외부의 매체에 자신의 표현을 맡겨두지 않고 계속 자기 표현을 시도해온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언니네트워크 역시 비혼여성에 대해 차별이나 피해, 혹은 골드미스 같은 ‘부유한’ 이미지가 아닌, 포지티브하면서도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고 합니다. 비혼여성축제 같은 언니네트워크의 활동이 이러한 고민의 반영이겠죠? ‘음지가 아닌 양지’의 문화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는 요즘 ‘게이컬춰스쿨’과 같은 매력적인 자기표현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사람들에게 잘 들리게 할 것인가?’이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반차별공동행동에서 8월 반차별 상상더하기를 통해 나누고싶었던 내용이기도 하지요. 인권 운동의 '당사자주의', 오늘의 주제를 반차별운동의 지향으로 이어가는 논의는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두고, 아쉬운 8월 상상더하기 시간이 저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