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출산을 선택한 십대여성들
“출산을 택한 십대여성들”
전 한국성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서정애
한국사회에서 십대는 ‘아직 성년이 안 된’, ‘미성숙한’, 그리고 ‘성인의 보호가 필요한’ 동질적 집단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전제는 성인/십대와의 위계적 구별을 내포하는 것으로, 성인의 십대에 대한 우월성과 동시에 십대들에 대한 권리유보와 제한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나이에 준거한 규범의 형성은 섹슈얼리티, 임신, 출산 등의 재생산경험에서의 ‘적정’ 연령을 규정함으로써 십대들의 섹슈얼리티, 임신, 출산을 비합법적이거나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십대의 임신과 출산은 늘 낙태담론, 미혼모 담론 안에서 가장 극단적인 모습, 즉 아이를 유기하고 살해한 엄마로서 재현되거나 임신의 결과가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일반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십대임신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위치되는 한편 성별화된 섹슈얼리티의 영향은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십대여성들의 ‘무분별한’ 성태도, 도덕적 해이로 귀결시킨다. 최근 미혼모담론이 개인일탈보다는 사회구조적 차원의 피해자로서의 미혼모관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러한 담론 안에서 미혼모는 예방되어야 하는 또는 ‘사회복귀’가 수반되어야 하는 사회문제로 위치된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문제는 여기서 이들이 왜 성에 접근하는지, 왜 임신을 유지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맥락들은 삭제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임신이 모두 원치않는 임신이며, 따라서 당연히 낙태 또는 불가피한 출산으로 연결된다는 기존의 십대임신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이 더 이상 새롭게 등장하는 십대들의 출산, 양육선택의 맥락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임신은 원하는 임신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으로 그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며, 심지어 이들은 임신의 동기와 무관하게 임신을 의미화하거나 아이를 욕망하기도 한다. 낙태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십대여성들을 향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임신한 십대여성들은 자신의 ‘우연한’ 임신에 대한 딜레마를 낙태보다는 출산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낙태비용, 낙태에 따른 건강문제, 심지어 낙태이후 불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초음파 사진속의 ‘아이모습’ 등은 이들로 하여금 낙태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낙태를 결정하지 못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임신이 주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출산선택을 정당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즉 이들은 자신의 임신이 ‘나쁜 짓’을 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연애는 삶의 즐거운 경험이며, 일상을 유지하거나 의미를 가져다주는 경험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에 결부되는 친밀성의 섹슈얼리티는 이들의 관계유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임신은 이러한 관계에 수반되는 부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모든 십대들이 임신을 하는 것이 아니며 또 임신을 한다고 모두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들 집단 내부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계층변수는 이들의 섹슈얼리티, 임신과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데, 즉 저소득층 십대여성들의 생활세계의 변화, 가족과 학교에서의 분리, 남자친구와의 로맨스와 동거생활, 또래문화, 노동자 지위¹ 등의 일련의 경험은 이들의 삶의 전망을 다르게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다른 삶의 전망은 이들의 임신을 둘러싼 선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말하자면 십대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가족 밖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토대를 제공함은 물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적 독립가능성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순차적인 정상규범의 질서를 벗어나 모성이 결혼과 교육에 선행할 수도 있다는 ‘다른’ 방식의 삶을 기획하는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출산선택에 대한 고민이 자신의 모성지위와 자격, 또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양육의 물적 조건에 달려있다는 점은 반대로 양육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허용된다면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십대여성의 임신, 출산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에도 불구하고 미혼모담론은 십대임신이 문제적이며, 예방되어야 한다는 규범적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임신한 십대여성들을 성일탈자, 사회적 문제아로 위치시키고 있다. 임신이 학교중단의 이유가 되고, 모성자격이 의심된 채 입양이 권유되거나 아이를 양육하는 십대모들의 열악한 현실은 바로 이러한 규범적 인식의 반영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담론과 십대여성들의 현실이 충돌하는 지금, 이를 풀어내는 노력은 이들의 임신, 출산경험이 십대 성윤리의 문제이기 보다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조건 속에서 구성되는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더불어 그동안 ‘미혼모’라는 윤리적 관점 안에서 간과되었던 이들에 대한 재생산적 관심이 요구된다. 재생산권은 남성과는 다른 ‘생물학적 가능성’을 갖는 여성들의 권리로서, 나이와 결혼을 넘어서는, 여성들의 삶의 권리,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의 복잡한 맥락들안에서 실현되는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이는 여성들이 재생산권을 향유하는데 있어 장애가 아니라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차이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각주----------------------
1
2005년 청소년취업자의 산업별 구성비를 보면 여자청소년의 서비스업 비율(85.4%)이 남자청소년(73.5%)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15-19세 여자청소년의 서비스업 비율(88.9%)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청소년백서, 2006)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계간지 「나눔터」61호(2008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