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8 내 삶을 통해 본 간통죄 폐지의 쟁점들
지난 10월 18일에는 릴레이시민토론 2차 토론회 "내 삶을 통해 본 간통죄 폐지의 쟁점들" 이 신촌 아트레온 14층 토즈에서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의 위헌여부를 묻는 청구에서 네번째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러나 현재 간통죄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와 토론을 잠재우거나 설득시키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간통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여론이 시대에 따라서 어느 방향으로 일관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속에 숨어있는 많은 경험들이 각자를 깊이 잡아 매고 있으며 울컥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은 내가 중요하게 붙잡으며 살고 있는 내 가치와 삶의 조건들이 이 주제에 많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내 삶을 통해 본 간통죄 폐지의 쟁점들" 은 간통죄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합의하거나 끝장 토론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기에 달려있는 수많은 삶의 맥락을 더 펼쳐 늘어놓는 것이 기획의도에 가까웠습니다. 자기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다보면, 그 이유를 탐구하게 되고,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게 되고, 그러면 어떤 이슈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이 좀 더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논제에 대한 배경없는 찬반, 맥락없는 성토가 아니라 다른 분석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주제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이기 보다 다른 조건을 바꾸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토론회에 참여해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다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일부를 들여다보며, 댓글로도 의견을 달아주세요. 혹은 각자 내 삶의 맥락을 나누고픈 이와 토론을 더 이어가면 다른 토론과 만나겠지요? 다섯번째 위헌소송 즈음에는, 간통죄의 존과 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함께 목격하고 또 만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간통죄와 성적자기결정권?
참여자1 :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결혼이라는 것이 과연 자유롭게 만나고 있는 관계인가? 의존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는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대등하게, 평등하게 만나지는 관계이기 보다는 경제적인 결합인 경우가 많잖아요.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언어 자체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저항해야 하는 말이 되고, 혹은 그 말을 통해 내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있기도 했고...
참여자2 : 저는 결혼한지 3개월이 되었는데요, 사실 간통죄가 있건 말건 별로 생각을 안 해봤었어요. 결혼을 고려하고 준비하면서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고요. 그런데 내 의견이 뭐지? 생각하면서 내 안의 여러가지 부딪히는 것이 있더라고요. 간통죄에 대한 생각을 토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정작 내 상황이 된다면? 이라고 가정해보니까 그게 잘 안되고- 남편이랑도 입에 올릴 수 없는 얘기가 되어 버리더라구요.
참여자3 :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요, 결혼을 선택한 사람은 뭔가 누리게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해요. 결혼은 현재 나는 너하고만 성관계를 갖을 거야, 하는 약속의 테두리 안에 있는 거고. 그럼에도 그 이익을 선택했다면, 성의 자유 정도는 제약을 받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참여자 4 : 외도의 긍정적 효과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파트너와는 섹스만 해결하고 나머지는 배우자와 윤택하게 사는 것이 왜 나쁘냐. 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가브리엘이 떠올라요. 그러나 남자들이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화가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결혼 생활에서 외도 피해자로 경험을 갖고 있는 여자들도 있지만, 외도를 꿈꾸고 - 나도 멋진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법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위치
참여자 7 : 제가 약자일 때는 제도에 의지하고 싶지만, 내게 권력이 생겼을 때는 나를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이런 권력 관계 안에서 보자면, 간통죄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은 누구이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좀 생각하게 되요. 물론 실제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불이익을 보는가도 권력 관계에 따라 달라지죠. 결혼한 이주여성 같은 경우는 간통죄에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심부름 센터를 사는 비용을 나라에게 보조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참여자 8 : 많은 퀴어들은 결혼 상태를 유지하면서 애인을 사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이건 간통죄에 해당이 안되죠. 동성애자들은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법망을 피해간다는 역설! 그런데 또 신기하게, 레즈비언들의 경우 법적으로 관계가 묶여있지 않아도, 더 끈끈하게 공동체를 이루기도 하고 헤어진 후에도 여자들끼리의 연대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국가가 법으로, 간통죄로 결혼제도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더 끈끈한 연대의식을 가지게 되나요?
참여자 9 : 제 주변의 엄마들은 간통죄 폐지 얘기가 나오면 펄펄 뜁니다. 그리고 간통은 강간이라고 생각해요. 술취한 내 남편을 다른 여자가 잡아먹은 거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내 남편을 뺏길거라고 생각하면서 없어지면 안된대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이 여자들은 우리들은 사는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해게 됩니다. 남편을 지키려고 사는 걸까요?
참여자 10 : 내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존감이 있다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세뇌되고 태어났고 학습된 게 그런 거잖아요. 내가 누구고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자괴감에 빠져서, 남자에게 버림받지는 말아야지, 아이에게 무시당하지 말아야지, 재수없는 여자는 되지 말아야지... 어디가서는 신나게 이야기를 해도 나도 모르게 그런 결심을 하는 거에요. 간통죄가 있거나 말거나, 왜 이걸 구걸해서 없애지 말아달라고 줄을 잡고 있어야 하나요? 가슴이.. 무겁네요.
참여자 11 : 법에 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 고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누굴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자유주의자 남성들? 누가 처음 이 얘기를 꺼내게 된 걸까요?
간통죄가 사라진 공간에 필요한 대안들
참여자 5 : 저는 이혼을 했고 아이랑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 최진실씨의 죽음을 보면서, 이혼한 친구들이 "그 XX가 바람을 피워서 그 사람이 죽게 되었다" 고 하면서 울분을 터뜨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혼한 나 같은 여성들은 외도의 피해자에 자기 감정을 이입하고.. 다른 이혼을 해보지 않은 옆에 있던 사람은 "왜 멀쩡히 있는 사람을 걸고 넘어지냐" 라고 하면서 우리 감정을 이해 못하더라고요. 결혼에서 문제가 생기면 기존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렵고 고되니까 사람들이 그만큼 힘들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이혼이 매우 쉬워지고, 무엇보다 이혼을 보는 시선이 편안해져야 이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참여자 6 : 저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간통죄도 없고 이혼하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혼하고도 원수지지 않고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이혼은 부정적이고 결혼은 긍정적이라는 인식도 별로 없고요.
참여자 12 :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많고 이중에는 제도적인 관계도, 제도 밖의 관계도 많은데요, 가족관계는 다른 관계와 좀 다른 것 같아요. 경제 공동체라는 것이 너무 크고요. 주거비용도 아끼고, 같이 살면서 재산을 증식하고... 여기에서 또 전제하고 있는 게 정서적이고 성적인 배타성인데, 그걸 배반당했을 때의 배신감을 법이 보호해주는 것은 뭔가 좀 허상이라면, 대신에 재산권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은 꼭 필요한 게 되겠지요.
참여자 13 : 중세에는 결혼이 애정의 결합이 아니라 제도적인 결합이었는데, 점점 성적인 결합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 되었어요. sexual family 라는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이 된 거죠. 근데 재산, 경제 공동체 같은 의미는 밑바닥 안보이는 곳에 중요하게 깔려있고... 애정을 너무 중시하고 있다는 환상이 사실은 다른 이유로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면서, 상대방의 외도가 나에게 결정적인 충격이고 추락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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