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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3차 릴레이시민토론 "성희롱의 판단기준은?"
  • 200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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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한 대학교 인트라넷에는 수백개의 리플이 달리게 되는 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댓글논쟁은 "미니스커트 논쟁" 으로 불리게 되면서 성희롱의 개념에 대한 끝없는 갑론을박으로 이어집니다. 내용인 즉슨 이러합니다. "내가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갔는데 대각선 자리의 여자가 짧은 미니스커트에 앞과 뒤가 훤히 파진 옷을 입고 앉아 향수를 팍팍 풍겼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시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나에게 수치심과 불쾌감을 끼치고 나를 방해한 그 여자는 나에게 성희롱을 한 게 아닌가!" 물론 처음부터 성희롱이라는 용어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는데, 댓글이 꼬리에 꼬리로 이어지면서 이 글쓴이를 성희롱 피해자로 봐야하지 않냐, 이건 가히 성희롱이라 일컬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로 논쟁이 물꼬를 튼 것이지요.
 
 
 
성희롱에 대한 개념 혹은 판단기준은 성폭력을 일로 다루어왔던 사람들에게도, 매우 곤혹스럽고도 중요한 토론 주제입니다. 성희롱 법제화의 1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저희 상담소에서도 이와 관련된 토론회를 상담사례 분석과 함께 10월 15일 열기도 했었지요.  
 
3차 릴레이시민토론은 서강대 양성평등상담실과 공동주최로 "내 옆의 저 미니스커트, 정말 불쾌한 성희롱?"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난 10월 30일 서강대 다산관 101호에서 열렸습니다. 이 토론회에 참여한 토론엶이들은 "도대체 그것을 성희롱으로 볼 수 있냐?" 는 다양한 경험에서부터, 각자가 주변인과 나눈 분석을 심도깊게 담기도, 반 성폭력-성희롱 운동이 고민하고 있던 딜레마에 대해서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하는 글을 써 주셨고, 진솔한 문제의식을 전달하며 토론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에 이은 다함께 토론에서는 자기 정체성, 자기 경험에 기반한 솔직토크, 고백, 성토, 논박이 이어졌는데요 - 성희롱이라는 주제가 법적인 개념이나 정책이나 운동진영의 용어가 아니라, 일상에서 사실상 수없이 의문을 낳으며, 그속에서 또 다른 필요성들을 낳으며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꺼내서 정식으로 '토론'이라는 것을 해본적이 없는 주제이고 경험이었는지라, 이 자리는 참 낯설기도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를 잡기를 한사코 거절했던 한 분은 끝나고 준비팀 한 명을 붙잡고 미니토론회를 시작하셨고, 이어진 뒷풀이에서는 못다한 토론과 질의응답이 열띠게 이어졌습니다. 토론회에서 오간 이야기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것, 성희롱인가? 왜?
 
참여자 1 : 친한 오빠와 동생에게 물어봤는데, 미니스커트와 시험은 상관없다는 답이었다. 그런데 그런 의문을 제기한다. 남자들이 민소매 옷 입고 와서 시험보면 거슬리지 않겠냐? 남자가 땀냄새 내면서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오면 욕을 하는데, 땀 냄새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그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참여자 2 : 여자들이 지하철 올라갈 때 가방으로 치마 뒤를 가린다. 그걸 보는 남자들은 "왜 나를 변태 취급하냐?" 며 불쾌해한다. 그런 선배 중 하나가 말하길, 여자들은 그냥 바지만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한다.
 
참여자 3 : 빨간색이 좋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당했다. 어느날 동아리방에 앉아있는데 후배들이 들어왔다. 말을 건네려고 말을 꺼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빨간색을 청춘해보이고 예뻐보인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냥 빨간 색 옷 입은 여자가 좋다는... 그랬더니 그 친구는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분위기는 싸해지고 다들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여자 4 : 성희롱이 무엇을 규제하기 위해서 태어났나? 성희롱의 규제 목적이 성적 수치심이라고 말해지면서, 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성희롱이 되었다. 저런 행위는 나한테 불쾌감을 주니까 성희롱이구나.. 그게 변질되면? 너는 뚱뚱하니까 내가 불쾌하고, 그것도 성희롱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올 거다.
 
  
 
당신이 나를 제약한다!
 
참여자 3 : 사회적인 낙인이 느껴졌다.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걸,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자꾸 되뇌이게 되는 것은, 사람들은 각자 선호가 있고, 내부에서 그걸 결정한 것이고 그걸 외부에 표현한 것인데. 그게 사회적으로 나쁘다, 성적인 이미지와 결부되어 곡해있다고 해서, 나만의 다른 의미와 이미지로 가지고 있던 것을 드러냈을 때 그게 문제가 되다니. 그래도 나는 빨간색이 좋은데 어쩔까?!
 
참여자 5 : 그런데 그 버스 속 여학생이, 당신의 성기가 닿았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아주머니는 아들뻘인 사람에게 이새끼 저새끼 할 수 있지만, 어린 여학생은 말할 수 있었을까? 가해자로 몰릴 사람들도 긴장이 있겠지만, 구질구질해지는 게 두렵고 싫은 사람은 사실 피해자다.
 
참여자 3 : 법으로 규제하게 될 경우,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그래도 아직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인의 정신상태까지 규제하게 된다. 이런 담론 자체를 개인이 지켜야 하는 법으로 만든다는 것... 폭력을 낳는 게 아닐까.
 
참여자 6 : 나는 미니스커트 입는 거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별로 못 입었다. 치마입을 때 파일이나 가방으로 가리게 되는데, 아무도 없어도 의식이 된다. 누가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속옷이 보이지는 않을까.... 여학교 다니는 내 친구들도 꼭 그렇게 한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하게 된 것 같다. 남자들이 "가릴 바에는 왜 입고 다니냐?" 라고 하면 화가 난다. 너 보라고 입는 거 아니다, 내 만족을 위해 입고 다니는 거다, 라는 거다.
 
참여자 7 :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해도 돼? 손 만져도 돼? 가 뻘쭘하고 어색해서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물으면 남성성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여성들이 지하철에서 몸 닿이는 게 싫으면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적극적인 말.
 
참여자 8 : 규제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성희롱 규제가 폭력을 낳는다... 그게 어떤 폭력인가? 묻고 싶다.
 
  
 
무엇이 분석되어야 하는가?
 
참여자 9 : 행사 플래카드를 보며 하는 한 남녀 커플의 대화를 들었다. 여자가 저런 상황 불쾌해? 물으니 시험기간에는 불쾌하다는 대답. 왜 평소에는 괜찮고 시험기간에는? 하고 물으니 "그건 예의가 아니지" 라고 한다. 예의란 무엇이냐? 라고 선배에게 물으니 "그건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거다" 라고 답했다. 배려에 대해 말씀하신 분에게 묻고 싶다. 배려란 무엇인가? 미니스커트를 안 입어야 하는가?
 
참여자 10 : 요즘 성희롱 피해자가 남자도 많은데, 이는 자신이 '여자로' 취급받는 것, 자신의 여성화를 못견디게 혐오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평소에 나도 여자취급 받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여자, 여성의 위치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참여자 11 : 성기노출 바바리맨과 미니스커트. 무엇이 다른가? 미니스커트가 성희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바리맨의 성기노출은 성희롱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차이인가? 무엇은 개인의 자유와 자기 표현이고 무엇은 폭력이 되는가?
 
참여자 12 : 내가 가한 행동이 성희롱인가 아닌가가 헷갈려질 때, 재밌는 것은 그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은게 어떤 폭력성도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혹은 힐끔 쳐다본 내 시선에도 폭력성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만나 폭력으로 실현되고, 폭력이 내재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결합을 이루는 고리가 있지 않을까? 폭력이 가능하게 된 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담론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 있다는 뜻이다.
 
참여자 12 : 성희롱 하면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성적수치심이라는 건데, 이건 정의를 가져야 한다. 성적인 것들과 연관해 가지게 되는 곤혹감.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성적수치심이라는 거 자체로는 자기의 의미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개인의 가치판단이 의미로 설정되는 것인데, 이 사이에서 남과 여의 인식차이가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법률로 이것의 장치를 만드는 것은 애초에 가능했나?
 
   
 
다른 상상을 해보자면
 
참여자 14 : 토론을 보면서 성희롱이 일상적인 문제라는 걸 느낀다. 모든 이야기 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은, 사회적으로 여성의 신체, 젊은 여성의 신체가 성적으로 상징화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 신체에 가해지는 언행들은 성적인 텍스트로 읽히게 된다.
 
참여자 5 : 사람들이, 여자들이 당연히 수치심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꾸어졌으면 한다. 다리는 보여주면서 특정한 부위는 보여주면 안된다. 스커트는 짧아도 팬티는 보이면 안되는 것, 여자가수들이 가슴골은 아무리 드러내도 실제로 옷이 내려가 유두가 드러나면 안되는 것?
 
참여자 15 : 개인적인 경험으로 영국에서 여자들이 노브라로 다니고 티팬티를 입고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데, 모두들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예 신경을 거의 안 쓰는 것 같다. 국적이나 문화를 떠나서 여자들의 신체에 대한 차별이나 터부가 있기도 하지만, 어떤 문화에서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고 의미 자체가 붙어있지 않은데, 왜 어떤 문화에서는 계속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참여자 13 : 성희롱이 어떤 것에 근거해서 되풀이되고 있는지, 근원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산불이 나면 화점의 남은 잔불을 끄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잔불과 같은 근원을 끄지 않으면 문제다. 남녀의 차이는 크고, 완전한 평등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행위 하나하나를 쫓아다니는 소극적 평등의 추구보다는, 적극적인 평등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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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는 2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이 가까이 되었을 때 마무리했지만, 토론하고 싶은 것들은 더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특히, 딜레마 속의 성희롱 반대 운동은 어느 곳으로 가야할까? 에 대한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참 흥미로웠습니다. 게시판을 통해 이루어지는 댓글 성희롱 논쟁은 앞으로 더 좋은 토론으로 계속 이어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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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행사는 여성부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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