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말하기'_세번째 이야기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1955, 베르톨트 브레히트,<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2009, 가을, 작은말하기 후기를 대신하고픈 마음에 거듭 인용^^
19시 정각에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간 작은말하기. 수선화, 경희 등 낯익은 얼굴이 보이고 고미, 지혜, 또 누구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 어진과 꼼이의 초조한 낯빛, 아니 화가 났나? 지현, 아오리, 레아는 아직 안왔나? 그들의 부재가 되려 안심이 되고. 조금 있으니 남현이, 모임이 끝날 때쯤 밤의아이가 들어왔다. 사회를 통보받고 일주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찍 와서 오는 분들을 맞이해야 하건만, 나는 시간이 다되도록 딴짓을 하고 있었다, 왜? 배추 한 통 소금에 절이고 마늘 까서 빻아 놓고 음악 듣고...절인 배추 씻다...하던 일 멈추고 튀어나와 전철에서 마음을 졸이다......그렇게 참여한 모임. 평소보다 적은 15명의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가 조용히 제 갈 길을 찾아 흘러갔다.
누군가 말문을 열었다. 기억도 확실치 않은 아주 어릴 적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계속된 오빠의 성적인 지분거림, 왠지 얘기하면 안될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키워온 죄책감, 그 이면의 분노, 나중에 엄마 눈에 띄었지만 얌전치 못한 장난을 쳤다고 오히려 야단맞고 별거아닌 일이 되어버린 성피해 경험, 당했다는 말이 너무 싫어 겪었다는 말로 대체하고 싶을 만큼 자존감을 무너뜨린 기억들. 다시 누군가의 경험이 더해지고, 아버지, 이모부, 사촌, 이웃아저씨.....‘모르는 사람에 의한 단회 피해가 아닌, 전체 성폭력의 80%를 차지하는 아는 사람에 의한, 가까운 관계에서 권력관계에 따라 지속되는 피해’(한국성폭력상담소 2008년도통계)의 경험이 토해졌다.
이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힘들게 얘기를 꺼내도 도무지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휩싸이고, 그 시큰둥한 반응에 더욱 마음의 빗장을 걸고 그 안에서 상처는 깊어졌다. 가장 의지하고 보호받고 싶은 엄마에게서조차 ‘다른 가족을 생각해서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아득함. 평소 당연히 경계하지 않는 대상인 친족에게 성폭력이라는 무섭고 수치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드는 배신감. 가정폭력에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를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내가 엄마를 지켜야 했던 참담함. 산산히 조각난 신뢰관계 앞에서 내 기억이 정확한 걸까, 그런 일이 있기나 했던 걸까, 자신의 느낌 생각 판단을 스스로 믿지 못하게 된 자기정체성의 위기를 오롯이 혼자 겪어야했던 지독한 외로움.
그런데 비장하게 울분을 토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니다. 우리가 한자리에 모인 것처럼 가해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참 재미있겠다는 여유와 유머, 성피해와 그 후유증이 일차적 안전지대라고 믿는 가족에서 힘있는 자의 이유없는 일방적인 가해가 통하는 가정폭력 환경에서 탄생하고 지속된다는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관련성을 찾는 고통스러운 깨달음, 견디기 위해 까칠하고 히스테릭하게 변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험이 뭔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좌절감, 하지만 결코 자신을 놓지 않고 망망대해를 헤쳐 온 서로를 마주보는 위안과 희망으로 그 자리는 슬프고 따스했다.
시간은 흐르고 말없이 계속 눈물을 훔치던 누군가 입을 열었다. 믿고 따르던 직장상사의 강간, 고심하다 고소를 했지만 술에 취해 기억이 안난다는 발뺌, 피해자가 정황을 증명해내야 하는 억울함, ‘너의 인권을 지키느라 (가해자인) 나와 내 가족의 인권이 망가져도 되냐’는 어이없음, 가해자가 당황할까 숨죽였던 사건 당시를 돌아보다 떠오른 어릴 적 오빠의 추행, 이제 가장이 된 성실한 오빠에 대한 연민, 혼란스러워, 혼란스러워, 혼란스러워, 핏빛 자책. 우리가 그녀였기에.....헤어나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함께 머물렀다. 네 곁에 있을 거야, 심장과 심장을 뚫고 아름다운 장미꽃이 가만히 피어나고 있었다.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 아름다운 것들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네 /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 네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 지금 나는 먼 하늘 아래 있지만 /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네가 조금 더 행복하길 /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 2009, 오지은, 2집 앨범 중 <작은 자유>, 를 그대들에게 건네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가을.
유난히 해가 쨍쨍한 날이었습니다. 이젠 작은말하기를 시작할 쯤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습니다. 밝습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젠 좀 적응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작은말하기는 긴장되는 공간이며, 긴장되는 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작은말하기가 끝나고 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작은말하기가 끝나고 모여 나머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참으로 필요하며, 저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작은말하기’가 어떤 공간인지,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궁금한 이야기가 있었던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내 경험을 더 이야기 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하기가 또 다른 말하기를 만들고, 또 다른 말하기로 이어집니다. ‘내가 어떠한 ’말‘들을 생산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한 번 참여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주 버라이어티 합니다! ^^
-어진-
댓글(8)
늦더라도 달려오던 한새. 너무 바쁜가봐요~ 늦더라도 오세요^^
가고싶다. 요즘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수요일에 계속 시간내기기 힘든지... 다들 보고싶다. 편하게 말하고 편하게 울고싶고. 편하게 외쳐보고 싶은데... 시간을 내서 한번 보려 갈께요.
처음으로 빵을 준비했지요. ^^ 지현이 안올 줄 알고~ ㅋㅋ 이번주에도 특별히 빵을 준비하지요. 지현이 온다니까 ㅋㅋ
우와~ 너무 좋았겠다...가을님, 고생많으셨어요~ 덧버선님, 슬기님 꼭 함께 해요~^^* 근데 이번엔 김밥이 아니라 빵이었나봐요? 김밥도 맛있었지만 빵도 맛있겠다. ㅎㅎ
작은말하기라는 공간이 조용하고 아늑해 보입니다. 늘 가보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을 보니, 이제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꼭 가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가을님글 멋지십니다^^ 함께 못한 6월모임이 아쉽네용~~ 다음에도 사회봐주셈
가을님, 정말 잔잔하고 뜨거운 후기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저 노래 음성으로 듣고 싶네요
저도 꼭 참여해보고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