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이야기
그간의 참여가 우리들에게 ‘마음의 근육’을 만든 것일까?
작은 말하기의 침묵을 듣는 것에 대한 지난번 후기를 읽고, 사실 나도 은근 걱정했다.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자라는 중압감에 혼자 떠들어대면 어쩌나 하고. 침묵듣기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이번 말하기에 참여했다. 막상 도착하니 어진이 여러 명이 갑작스러운 불참소식을 알려왔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그나마 제시간에 도착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 크~~. 지난 달 말하기 뽕 맞은 그녀들은 이번엔 기운이 오래 가는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정말로 ‘작은’말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감추고, 소심하게 시작한다.
독립생활을 시작한 이야기, 한동안 뜸 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 그녀들의 말하기는 그간 나의 걱정을 싸~악 씻어버렸다. 침묵을 듣기로 굳게 맘 먹었던 나는 끼어들 틈새를 찾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얘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넘치고, 각자의 그러나 공통적인 경험은 서로에게 공감의 장을 만들어냈다.
그날은 여느 작은 말하기와는 참 다른 분위기였다. 내가 느끼기에 작은 말하기는 항상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는데(난 올해 처음부터 작은 말하기에 참여했으며, 한번 빠지고 계속 참여했다), 오늘은 참 활발했고(?) 역동적이었다. 뭔가 재미도 있었고, 편하고 가벼웠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간의 참여가 우리들에게 ‘마음의 근육’을 만든 것일까?
10시가 넘어서야 이야기를 정리하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도 못다한 이야기를 위해 일군의 무리들이 남은 이야기를 하러 간다. 아~~ 부럽다. 아이와 내일의 일, 그리고 조금은 들어버린 내 나이가 내 발길을 돌린다. 오늘 기타를 메고 멋지게 등장한 그녀의 연주를 언젠가 말하기에서 한번쯤은 들어보면 어떨까. 잔잔한 기타 연주 속에서의 말하기는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지혜-
이제 마지막 작은말하기를 한 회 남겨두고 있는 이번 작은말하기에서는 왠지 마무리의 기분이 느껴졌다. 꼭 무언가의 성과를 남기고 정리하는 마무리가 아니라, 목에 걸려있던 자글자글한 알갱이들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듯한 느낌의 마무리. 내가 느낀 오늘의 작은말하기이다.
오랫동안 집에서 성폭력피해가 있었고, 이후에도 가해자와 연을 끊지 않고 가끔씩 투쟁하듯 대면하며 살아가는 한 참여자에게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방관하는 엄마에 대한 분노, 그러면서도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어색함, 굳이 사과받지 않으려고 하는 가해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자신을 대하는 불편함. 이를 참여자는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표현했다. 정체성.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나는 어떠하다를 설명하기 위해, 혹은 설명하지 못해 헤매는 참여자와 또 참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
나는 이것이 정체성의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은 어떤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내 마음을 잘 모르는 부분, 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맞닥뜨리면서 가지게 되는 혼란스러움과 또 한편의 감동. 벅찬 감동. 나는 감동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가슴과 목이 뜨거워지는 내 마음. 여태 성폭력 피해경험을 말하고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 힘들었다는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녹기를 바라고, 그래서 앞으로 지금처럼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고, 그 솔직함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을 더 많이 줄여갈 수 있기를, 마음을 보탠다.
-어진-
댓글(3)
ㅇㅎㅎㅎ
모자쓴사람이 너야? ㅋ
얼굴을 확 드러내자니 누군가 알아볼까봐 겁이 나는데 참여한 사람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내 사진이 이번에도 맘에 들어요ㅎㅎ 재밌고 편하고 가벼웠다는 말에 동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