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선생님께 사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사실 부끄러움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작은 말하기에 참여를 하면서 나는 많이 안정을 찾았으며, 피해를 경험한 지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이제는 나와 비슷한 고통의 과정을 겪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찾았노라고, 지난번 모임 때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나서였다. 그런 말을 한 지 불과 두 달 사이에 난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버텨내는 게 힘에 부칠 정도로 깊은 혼란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문제없는 사람 마냥 큰소리만 잔뜩 쳐놓고, 지금 내 꼴이 이게 뭘까.
그래도 올해 마지막 모임의 사회를 맡게 된 만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진행을 잘해야지, 야무진 포부를 품고 지난 일 년 동안 드나들었던 익숙한 카페를 찾았다. 여느 때처럼 자기소개로 먼저 대화의 문을 열었는데, 있는 듯 없는 듯 사회만 보려던 내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소개를 끝마치자마자 내 입에선 많은 말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다 내려놓고만 싶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서 속이 썩어문드러지도록 내 안으로만 삼키고 또 삼켰던 이야기들을 죄다 토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들 정말 남 일 같지 않게 주의 깊게 들어주셨다. 무슨 특별한 대답이나 해결책을 들어서가 아니라, 동정 어린 청자들 앞에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내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난 위안을 받았다.
이 날 오갔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난 리무님께서 육친과의 사별을 겪은 이후, 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신다고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성폭력 경험이라는 것은 어쩌면 임사 체험의 일종이 아닐까, 난 가끔씩 생각을 해본다. 밥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 외출을 하고, 지인을 만나서 농담을 나누며 공부든 업무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에도 난 내가 오래 전 한번 떨어져 본 적이 있었던 그 깊고 깊은 죽음의 나락의 밑바닥에서부터 자꾸 날더러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만사 포기하고 그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내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그 충동을 뿌리친다. 리무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처럼 그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루하루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에 죽음의 기억을 꽁꽁 숨겨놓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그런 말하기 식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살아남아줘서 고맙다는 말,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희-
댓글(4)
^^ 죽으려 한다는 것도 어찌보면 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서인것 같아요.
^^V
나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