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지 않아 추위를 머금은 4월의 마지막 수요일.
나는 나와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로 1차... 2차... 3차...
반복되는 피해들과 성폭력에 대한 개념 없는 말들로 또 다른 양상의 폭력들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우리들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같은 아픔을 공유하면서
더 이상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입니다.
20대 때 첫 연애 상대가 ‘어차피 너는 처녀가 아니잖아’
그 말 한마디에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면서도
내가 동의하지 않은 그 성관계가 폭력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연애관계에서 성관계를 요구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맴돌아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남자가 원하는 성관계를 하게 만들기도 하였고,
그런 일이 있은 후에는 어김없이 자책감과 무력감이 나를 휘감았습니다.
‘저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우리의 성폭력 경험을 약점 삼아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할 때,
‘당신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약점으로 삼으신다면 그렇게는 안 될 것입니다.
잘못은 나의 아버지가 한 것이지 저는 피해자니까요.’
이렇게 당당히 나를 보호하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내 안에 흐르는 가해자의 피를 내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더러움이 아닌
그냥 생물학적 유전임을 받아들이는데 2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약점으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뒤에서 수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그들의 가족들과 그들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또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요?
BY 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