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앞두고 계절이 두근거리며 변화하는 6월의 마지막 수요일 밤,
이야기하며 들여다보는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기대합니다.
피해자라면 힘없고 연약하고 불쌍하게마저 생각하고,
신문을 펼쳐도 뉴스를 보아도 가해자는 악마나 괴물 같은 모습들 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그런 이분법 속에 갇히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특별하며, 동시에 평범합니다.
나는 상냥하고도 강인합니다.
나는 모순투성이에 똑똑합니다.
나는 튼튼하고도 잘 다칩니다.
나는 고귀하지만 바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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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나는 성폭력피해생존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안의 통념과 고정관념과 싸우는 중입니다.
나를 성폭력피해생존자라고 명명한다고 해서 항상 씩씩하거나 언제나 윤리적 우위에 서있지도 않고, 일분 일초 빼곡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만 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이지만, 그 외에도 복합적인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나에 대한 정의는, 내 안에서 항상 우위를 바꿉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성폭력피해생존자인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계절처럼 변화합니다.
이 선선하고 아름다운 저녁이 지나가면 찌는 듯한 무더위도, 낙엽지는 아름다운 가을도, 베일 듯이 날카롭고 차가운 겨울도 곧 찾아오겠지요.
나는 변화무쌍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공간. 나의 현재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순간들과 사람들.
6월의 작은말하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아름답게 흔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