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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작은말하기 후기입니다.
  • 2015-05-07
  • 3370
4월 작은말하기에는 모두 11분이 참여하셨어요.
'민희'님이 보내주신 후기입니다.
 
 
그냥 이번에는 왠지 후기가 적고 싶어졌어요.
그저께 4월의 작은 말하기에 다녀왔습니다.

문을 닫으신다고 해서 서운했던 카페에서 모이게 되어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이 카페 정말 좋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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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 이야기를 그저 하기만 하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고민 거리를 한 번 털어 놓아봤어요.

하나가 늘 갖고 있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다른 분들도 이런 고민이 있으신가,
그러면 어떻게 하고 계신가 듣고 싶고 조언도 얻고 싶었어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것과,
연인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죠.

참석하신 분들이 제 고민을 들으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내내 새겨들으면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 정도로!
더욱 중요한 건,
비슷한 고민이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점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장소에서 늘 쳐왔던
얇은 비닐막을 잠시 걷어낼 수 있었어요.
그게 필요가 없었거든요.

날 지킬 필요도,
누군가 날 해칠 위험도 없었으니까.

.
.

엄마와의 관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고민이 되는 지점이에요.
사실 쭉 혼란스러웠는데,
그동안 재판 절차에 집중하기 위해서 한수 접어 두었다가,
이제 3심까지 다 마치고, 정리가 되고 나니까
요즘 다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 같아요.

엄마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사실 저는 엄마가 잘못했다고 생각 해요.
형사 아저씨가 제가 아빠를 고소했을 때 엄마도 함께 잡아넣고 싶어했을 정도로,
상담사 선생님이 엄마도 방관자이자 공범이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고요.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거리를 좀 둬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관계를 잠시 단절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하지만 오늘 오전에는 또 엄마랑 통화하면서 엄마 연애 상담을 해줬어요.
엄마 남자친구가 엄마에게 너무 못해줘서 실컷 욕을 해줬지요.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엄마랑 좀 더 친해진 것 같고.
진작 이렇게 엄마 편이 되어 줄 걸,
난 늘 엄마를 판단하고 비판하기만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사람이 과거에 했던 정말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
이 두 마음이 충돌하고 있어요.

사실 엄마가 이 부분을 이해하고 같이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이런 걱정도 안 할 텐데,
그렇지 않을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같이 상담 받자고 말하면 
'그런 데 가기 싫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니까.
답답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에 있는데도 아빠에게
'애 임신하면 어떻게 하려고 자꾸 그러냐?'라고 물어보면서도,
나의 임신을 걱정할 정도로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지 뻔히 알면서도
엄마는 무엇을 했는지,
정말 최선을 다하기는 했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저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참가자분이 조언해주신 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저 혼자라도 일단 상담을 받아보려구요:)
조언 감사드려요.

그리고 애인을 사귀는 것에 대해서도.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저는 제 경험을 꼭 상대방에게 말해야 하고, 
(관계를 시작하기 전이든, 그 중간이든)
그렇지 않으면 제가 무책임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보험을 들기 전에 질병 여부를 속이는 것이 옳지 못한 것처럼,
연애를 하는데 성폭행 생존자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은
상대방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생존자라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이며
상대방이 알아야만 하고
이해해줄 지 말 지 선택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거겠죠.

그러니까 나에게 이런 질병이 있는데,
네가 나를 계속 만날 건지 말 건지 선택해.
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하지만 또 다른 참가자분께서
그건 상대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내가 겪은 일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아주 좋은 말 같아요:)
맞는 말이에요.
겪기도 내가 겪었고
감당도 내가 하고 있고
앞으로도 내가 안고 살아갈 건데,
너는 듣는 것도 못 하니.

이런 마음 가짐.

물론 제가 지금 그것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
그래서 그것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정도라면
이야기할 필요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지금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가 실질적으로 해줘야 하는 일도 없어요.
경제적인 부분을 의존할 것도 아니니까.

다만 연인인 니가 나에게 해줘야 할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지지이고
내가 겪었던 일을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이야.
그리고 이해가 안 갈 때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내 인생을 나에게 맡기는 거야.
네가 나에게 뭘 해줄 필요는 없어.

다만 다른 연인들이 그런 것처럼
내가 힘들어할 때 안아줄 수 있으면 되고
고민할 때 들어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런 건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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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동안 조금 꺼려왔었는데
이제 조금 다시 연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어요.

깨져보지요, 뭐.
늘 같은 상태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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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려요.
다음 작은 말하기에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제가 사회를 보기로 했는데
조금 걱정이네요.
그래도 잘 준비해갈게요:-)

모두 한 달 동안 안녕하시고,
5월 작은 말하기에서 뵈요!

댓글(1)

  • 이기자
    2015-06-14

    힘내세요!! 생존자라는 말 조차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저는 살아야 한다는 주의 입니다. 두번의 이혼 아직도 저는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