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작은말하기 후기입니다.
4월 작은말하기에는 모두 11분이 참여하셨어요.
'민희'님이 보내주신 후기입니다.
그냥 이번에는 왠지 후기가 적고 싶어졌어요.
그저께 4월의 작은 말하기에 다녀왔습니다.
문을 닫으신다고 해서 서운했던 카페에서 모이게 되어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이 카페 정말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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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 이야기를 그저 하기만 하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고민 거리를 한 번 털어 놓아봤어요.
하나가 늘 갖고 있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다른 분들도 이런 고민이 있으신가,
그러면 어떻게 하고 계신가 듣고 싶고 조언도 얻고 싶었어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것과,
연인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죠.
참석하신 분들이 제 고민을 들으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내내 새겨들으면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 정도로!
더욱 중요한 건,
비슷한 고민이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점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장소에서 늘 쳐왔던
얇은 비닐막을 잠시 걷어낼 수 있었어요.
그게 필요가 없었거든요.
날 지킬 필요도,
누군가 날 해칠 위험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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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관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고민이 되는 지점이에요.
사실 쭉 혼란스러웠는데,
그동안 재판 절차에 집중하기 위해서 한수 접어 두었다가,
이제 3심까지 다 마치고, 정리가 되고 나니까
요즘 다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 같아요.
엄마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사실 저는 엄마가 잘못했다고 생각 해요.
형사 아저씨가 제가 아빠를 고소했을 때 엄마도 함께 잡아넣고 싶어했을 정도로,
상담사 선생님이 엄마도 방관자이자 공범이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고요.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거리를 좀 둬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관계를 잠시 단절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하지만 오늘 오전에는 또 엄마랑 통화하면서 엄마 연애 상담을 해줬어요.
엄마 남자친구가 엄마에게 너무 못해줘서 실컷 욕을 해줬지요.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엄마랑 좀 더 친해진 것 같고.
진작 이렇게 엄마 편이 되어 줄 걸,
난 늘 엄마를 판단하고 비판하기만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사람이 과거에 했던 정말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
이 두 마음이 충돌하고 있어요.
사실 엄마가 이 부분을 이해하고 같이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이런 걱정도 안 할 텐데,
그렇지 않을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같이 상담 받자고 말하면
'그런 데 가기 싫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니까.
답답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에 있는데도 아빠에게
'애 임신하면 어떻게 하려고 자꾸 그러냐?'라고 물어보면서도,
나의 임신을 걱정할 정도로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지 뻔히 알면서도
엄마는 무엇을 했는지,
정말 최선을 다하기는 했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저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참가자분이 조언해주신 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저 혼자라도 일단 상담을 받아보려구요:)
조언 감사드려요.
그리고 애인을 사귀는 것에 대해서도.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저는 제 경험을 꼭 상대방에게 말해야 하고,
(관계를 시작하기 전이든, 그 중간이든)
그렇지 않으면 제가 무책임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보험을 들기 전에 질병 여부를 속이는 것이 옳지 못한 것처럼,
연애를 하는데 성폭행 생존자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은
상대방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생존자라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이며
상대방이 알아야만 하고
이해해줄 지 말 지 선택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거겠죠.
그러니까 나에게 이런 질병이 있는데,
네가 나를 계속 만날 건지 말 건지 선택해.
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하지만 또 다른 참가자분께서
그건 상대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내가 겪은 일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아주 좋은 말 같아요:)
맞는 말이에요.
맞는 말이에요.
겪기도 내가 겪었고
감당도 내가 하고 있고
앞으로도 내가 안고 살아갈 건데,
너는 듣는 것도 못 하니.
이런 마음 가짐.
물론 제가 지금 그것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
그래서 그것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정도라면
이야기할 필요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지금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가 실질적으로 해줘야 하는 일도 없어요.
경제적인 부분을 의존할 것도 아니니까.
다만 연인인 니가 나에게 해줘야 할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지지이고
내가 겪었던 일을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이야.
그리고 이해가 안 갈 때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내 인생을 나에게 맡기는 거야.
네가 나에게 뭘 해줄 필요는 없어.
다만 다른 연인들이 그런 것처럼
내가 힘들어할 때 안아줄 수 있으면 되고
고민할 때 들어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런 건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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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동안 조금 꺼려왔었는데
이제 조금 다시 연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어요.
깨져보지요, 뭐.
늘 같은 상태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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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려요.
다음 작은 말하기에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제가 사회를 보기로 했는데
조금 걱정이네요.
그래도 잘 준비해갈게요:-)
모두 한 달 동안 안녕하시고,
5월 작은 말하기에서 뵈요!
댓글(1)
힘내세요!! 생존자라는 말 조차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저는 살아야 한다는 주의 입니다. 두번의 이혼 아직도 저는 살아있습니다.